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육학자가 바라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11월24일 16시0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8시05분

작성자

  • 김경근
  •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메타정보

  • 36

본문

교육학자가 바라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정부가 서둘러 확정 고시를 마침으로써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돌이키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집필진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미래는 여전히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국정화가 추진될 것이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교육학자로서 몇 가지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실패한 교육정책의 특징을 떠올리게 하는 정황들     

이전에 우리 교육정책이 실패로 귀결되는 사례가 잦은 이유를 간략하게 논의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성과에 대한 조급증과 정치 논리의 개입을 언급했었다.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나 설득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거나 정치적 고려에서 추동되었던 정책들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이런 문제점이 명징하게 노정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실은 해석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 해석은 누구든 혼자서 독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원천적으로 틀어막는 문제점이 있다. 보수 성향에 가까운 역대 국사편찬위원장들이 국정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이념을 떠나 절대다수 역사학자들이 국정화에 반기를 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황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자 정부 여당은 국정 교과서 대신 ‘올바른’ 교과서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국사학자의 90%가 좌파라는 홍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스스로 신뢰감만 떨어뜨리고 있는 듯하다. 

내년 12월까지 국정 교과서의 집필을 마쳐 대통령 임기 내에 일선 학교에 보급하겠다고 일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부 이견이 있긴 하지만 1년의 집필 기간만으로 완성도 높은 교과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더욱이 명망 있는 대가의 집필진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까닭에 빠듯한 집필 기간은 부실한 집필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굳이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며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여 ‘올바른’ 역사 교육을 실시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고품질 교과서를 집필하는 데 필요한 적정 숙성 기간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일을 서두른다면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다른 저의가 개입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화는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월 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정화에 반대한 응답자는 53%로 찬성한 응답자 36%에 비해 17%p가 더 높았다. 확정 고시 1주일 전에 비해 찬성 비율은 동일하나 반대는 오히려 5%p가 더 높아졌다. 11월 6일 발표된 내용 가운데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점은 초중고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의 여론은 더 부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초중고 학부모 중에서는 찬성 28%, 반대 62%로 반대가 찬성을 압도했다. 일반적으로 학부모는 자녀의 교육문제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이처럼 학부모의 반대 여론이 비등하다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국정화에 대한 국민 여론이 상당히 부정적이고 반대 흐름이 시간이 흐를수록 공고해지고 있는 배경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가 떠오른다. 먼저 보수 성향에 가까운 다수의 전직 국사편찬위원장들마저 국정화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것이 여론의 향배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이들은 대부분 현행 국사 교과서에 좌편향이라 할 만한 내용이 거의 없거나 그런 내용이 일부 남아 있더라도 검정제의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을 밝힌 바 있다. 다음으로 일부 독재국가나 후진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우리의 국격이나 사회의 성숙도에 걸맞지 않은 제도라는 점에 국민들이 일정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던 베트남이 유엔의 시정 권고를 받아들여 올 4월부터 검정제로 돌아선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교과서의 영향력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환상      

명분이 약하고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화를 통해 실리라도 충분히 챙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또한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는 미래 세대에게 국정 교과서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국정화 추진 주체가 생각하는 만큼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현재의 20대는 이전의 어느 20대에 비해서도 훨씬 더 보수적이고 북한체제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런데 이들은 국정화 찬성 집단에 의해 좌편향으로 매도되고 있는 검정 교과서로 국사를 배운 세대다. 아울러 이들은 정보화시대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통로를 통해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균형 잡힌 관점을 형성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11월 4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검정 교과서 세대인 대학 1학년생 200명을 상대로 그들이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요소를 물었을 때 ‘교과서’를 지목한 비율은 36.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한국사 과목 교사’(23.5%), ‘서적, TV프로그램, SNS 등’(23.5%), ‘가족이나 친구 및 선배’(9%)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입시가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 및 교수학습 전반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미래 세대의 지식형성 과정이나 통로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다각화되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가 발행 주체의 기대만큼 의도했던 교육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는 학교가 가진 이완결합체제(loosely coupled system)로서의 속성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한 미국 심리학자 Karl Weick에 따르면 학교의 경우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과업이나 활동 간 연계가 상당히 느슨하다. 또한 학교에서 교육과정과 교수방법은 매우 일반적 수준에서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실제로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교육내용이나 교수방법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가진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이나 교재가 바뀌어도 교육결과는 거의 달라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학교라는 조직이 지닌 이런 속성은 교사의 자율성이나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는 역사 교과서가 보급될 경우 그 활용도가 생각만큼 높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사회통합과 창의교육에 역행할 개연성      

정부 여당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명분으로 현행 검정 교과서가 미래 세대에게 그릇된 국가관과 역사인식을 심어주고 있음을 강변하고 있다. 이는 국정 교과서를 통해 정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미래 세대의 정신세계를 계도하기 위한 사회화를 시도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기실 일찍이 프랑스 사회학자 Emile Durkheim은 학교교육이 수행해야 할 핵심적 기능 가운데 하나로 보편사회화를 제시한 바 있다. 즉 학교교육은 해당 사회의 공통적 감성과 신념을 미래 세대에게 내면화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는 이를 통해 사회통합을 도모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역사 교육을 사회통합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화의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에 역사학계가 선선히 동의할지에 대해선 무척 회의적이다. 설령 국정 역사 교과서가 나중에 사회통합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게 되더라도 무리하게 국정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당장 치르는 대가가 너무 큰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정치권은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고 있고 국론은 심각하게 분열되었다. 합리적인 중재안을 내놓는 것 자체가 저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온갖 정치공학적 득실 계산이 난무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한 후유증이 꽤 깊고 오래갈 것으로 예견되는 대목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교육현장에 끼칠 폐해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초중등 교육단계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국가나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함양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과거와 현재의 간단없는 대화를 통해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에 역사 교육의 본령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경우에 과거 사실에 대한 단일 관점에 의존하는 국정 교과서는 역사를 성찰과 해석이 아닌 암기와 주입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에서 사고력이나 창의력의 신장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일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보완장치에 대한 고민 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명분이 약하다. 다른 것은 모두 차치하고 국정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교육적 목적 외에 다른 노림수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실리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교육정책이다. 이는 국정 역사 교과서가 정권과 운명을 함께할 시한부 교과서가 될 개연성이 농후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유턴을 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국정화를 추진하려면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집필된 두세 종의 검정 교과서를 함께 허용하여 국정 교과서와 선의의 경쟁을 벌일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보완장치라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교과서 발행이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행될 수 있도록 일정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만일 이런 보완장치마저 없다면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비정상의 정상화’란 구호가 요란하던 시대에 정상을 비정상으로 되돌렸던 대표적 사례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공산이 크다.   

36
  • 기사입력 2015년11월24일 16시0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8시05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