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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굴종하는 교육감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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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9월22일 15시1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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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굴종하는 교육감들

  

 

 

1.

삼성은 사교육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과외수업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삼성드림클래스’ 방학 캠프를 2012년부터 운영해왔다.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은 교육청을 통해 모집한다. 삼성의 학생모집 요구에 한 명을 제외한 모든 교육감들이 협조해왔다. 김승환 전북교육감만이 거부했는데, 이로 인해 전북 학생들은 캠프에서 배제됐다.

  

이로 인해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모욕감을 느낄 정도의 신랄한 비판이었다.

  

“소외 계층 배울 기회 뺏은 전북 교육감” “가난한 아이들 교육 기회 빼앗은 사람이 교육감이라니” (조선일보.08.19~20.) 

“아이들 교육 기회 차버린 전북교육감” “ 광역 시•도 가운데 딱 한 곳, 전라북도만 또 거부했다” (중앙일보. 08.19)

  

그런데 김승환 교육감에 대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비판은 정당한가? 삼성의 요구를 거부한 김승환 교육감의 행위는 부당하고, 삼성의 요구를 수용한 다른 교육감들의 행위는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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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성드림클래스의 본질은 입시 사교육이다. 그것은 선발된 소수 학생에게 입시 사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해서 이러한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삼성드림클래스의 본질이 입시 사교육이란 점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인정하는 것이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중학생들을 방학 기간에 모아 대학생들이 일종의 과외 지도를 하는 캠프” “3주간 대학생들에게서 영어 수학을 배웠다”(중앙일보), “사교육 소외계층 중학생에게 방과 후 학습 기회를 제공”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중학생들 위주로 선발” (조선일보) 등의 표현에서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삼성의 드림클래스 사업은 공공성이 매우 약한 사업이다.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에게는 이익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공교육의 발전에 바람직한 영향을 주는 일은 아니다. 공교육 기관인 교육청이 학생모집을 대신해 줄 성질의 일은 아닌 것이다. 

  

사교육은 나쁜 것이니까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사교육을 과도하게 악마화(化)하고 있다. 그로인한 폐해가 적지 않다. 사교육보다 더 나쁜 것들이 사교육을 빌미로 합리화되고 있다. 정부와 사회의 관심과 에너지가 제대로 된 교육개혁에 투여되지 못하고 즉자적인 사교육 대책에 헛되어 소모되고 있다. 사교육의 지나친 악마화(化)는 공교육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교육은 그냥 골치 아픈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공교육기관이 사교육에 친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와 교육청과 학교는 사교육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며 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가난한 학생을 돕는 일이라 할지라도 국가공교육기관이 사교육의 편의를 봐주는 일을 직접 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 사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일은 삼성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교육기관인 학원들도 심심찮게 하는 일이다. 얼마 전 서울 동북부 지역의 S학원은 고3학생들에게 무료 논술수업을 제공했었다. S학원은 인근의 고등학교에 학생 추천을 요청했는데 실제로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이런 요청을 받았었다. 학원이 전교1등 학생을 학원의 장학생으로 해주는 일도 종종 있는 일이다. 이 때 학원은 대상 학생에게 그 증거가 되는 성적표를 요구하게 되는데 학교내신제도는 개별 과목의 석차만을 산출할 뿐 종합적인 전교 석차를 산출하지 않아 이런저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학원의 요구에 학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이런 학원의 요구에 학교가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원의 요구를 학교가 거부해야 마땅하다면 삼성의 요구 또한 교육청이 거부해야 마땅하다. 삼성이 제공하는 드림클래스와 학원이 제공하는 무료 수업은 그 본질이 똑 같기 때문이다. 본질은 자신들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사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혜택을 받는 학생들에게 이익일 수 있지만 공교육기관이 적극적으로 협조할 성질의 일은 아니다. 

  

무료 사교육의 수혜를 받는 그 학생들만을 생각하면 삼성과 학원의 요구에 교육청과 학교가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청과 학교는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비록 무능하고 못나 학부모의 불신을 받고 있을망정 교육청과 학교는 사교육과 거리를 두고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 

  

3.

게다가 삼성이 요구한 학생모집은 교육행정에 상당한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그것은 교육청의 공무원 몇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청 – 교육지원청 – 학교(교장- 부장교사- 담임교사)로 이어지는 교육행정 전체가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삼성드림클래스 방학캠프는 전국적으로 1800명이 참여하는 캠프지만 이로 인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교사는 수만 명 이상일 수 있다. 전북만 하더라도 어쩌면 수천 명의 교사들이 움직여야 했을 일이다. 각 학교의 학급 담임들은 어떤 학생이 삼성이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학생인지를 따져봐야 하고, 부합하는 학생에게 내용을 설명해야 하고, 지원하는 학생이 많으면 나름의 기준을 정해 학생을 선발해야 하고, 탈락한 학생을 위로해야 하고, 이러저러한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전북의 경우 할당된 학생이 100명이라 하지만 이로 인해 바빠지는 교육청공무원과 학교교사들은 수천 명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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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성의 요구에 대한 교육청의 대응은 단 하나, 거부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관한한 전북교육감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잘못한 교육감은 오히려 다른 지역의 교육감들이다. 조선과 중앙이 정작 신랄하게 비판했어야 할 교육감은 삼성에 협조한 교육감들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협조가 아니다. 그것은 공교육기관의 본질을 저버린 일종의 굴종 행위다. 그 진의가 어디에 있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결국 삼성에 굴종한 교육감들을 칭찬한 것이다. 

  

 삼성을 대신하여 학생모집을 대신해 준 교육감들은 이제라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잘못은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아닌 자신들에게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신들도 삼성의 요구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삼성드림클래스 학생모집은 교육청의 일이 아닌 삼성 자신의 일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이 사건으로 인해 일선 학교와 사교육계에 전달된 잘못된 메시지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조선과 중앙의 영향력으로 보건데 김승환 교육감을 비판하는 두 신문의 글을 읽은 교장과 교사들의 수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웬만하면 학원의 요구에 학교가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또 두 신문의 글을 읽은 사교육 종사자들 중에는 학원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학교에 과감히 요구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학교와 사교육계에 전달된 이 잘못된 메시지는 조선과 중앙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의 요구에 굴종한 교육감들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삼성의 요구에 굴종하는 것은 교육청과 학교를 사교육의 시종으로 만드는 길을 여는 것이다. 삼성의 요구를 받은 대부분의 교육감이 그 길을 여는데 일조했다.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었다.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한 통속이었다. 삼성과 두 언론의 힘이 막강하고, 사교육은 공교육보다 인기가 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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