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49> 열정과 긍지 속에 눈 시리던 시간들-「현대시동인」을 말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7월29일 16시40분
  • 최종수정 2023년07월13일 11시24분

작성자

메타정보

  • 2

본문

시동인(詩同人)이란 “동일한 시적 지향에 합의한 구성원들이 창작한 작품의 발표지면을 공유”하는 시인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대시동인」은 한국현대시사에 드물게 보이는 본격 시동인인 셈이다. 해방 직후 시단에 등단한 김춘수 같은 경우 일본어를 일상어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말 구사가 아주 어려웠다는 얘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현대시동인」들은 대부분 1940년을 전후한 때에 태어났기 때문에 온전히 우리말, 우리글의 세례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고 한국어로 사유하고 감각하면서 새로운 언어로 시를 쓴 사람들이었다.

 

지내놓고 보면 그것이 역사였구나 하는 깨달음에 닿는 일들이 있다. 열심히 살았던 날들, 시를 생각하느라 하이얗게 지새웠던 날들, 자랑과 긍지로 묶인 글벗들과 같은 지향의 배를 타고 기우뚱거리던 그 격정과 환희의 시간들이 신선한 감개 속에 다가선다. 그 때, 20대의 풋풋한 신념이 광활한 상상 속에 눈 시린 시를 부르던 「현대시동인」들 중 어느새 몇몇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나머지 동인들도 나이 80을 훌쩍 넘기면서 육신의 쇄락을 견디고 있다.

 

한국시단을 살펴보면 대개 10년을 단위로 시인들이 집중적으로 등장해 한국시를 풍요롭게 일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1940년을 전후한 시대에 출생한 순수 한글세대의 목마른 시인들이 시적 상상력과 감성의 지평을 활짝 활짝 열어젖혀 보여주는 시를 썼었다. 일테면 그때 그 시기도 한국시의 작은 르네상스였다고나 할까. 그때, 다양한 개성과 지향을 추구하는 많은 시인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현대시동인」은 그런 시인들 중에서 시의 미학적 가치를 지향하는 준재들을 멤버로 하여 이뤄져 있었다.

 

「현대시동인」들의 정신적 지주는 박남수 선생이었다. 현대시동인의 초기 멤버들 중 허만하, 김규태, 황운헌, 김영태, 이유경 등이 박남수가 문학부문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었던 『사상계』와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한 시인들이었고, 주문돈, 정진규, 이수익, 박의상, 이해녕 등은 박남수가 심사위원을 맡았던 신춘문예 출신들이었다. 그리고 이승훈은 박남수가 시간강사로 출강하던 한양대 강의실이 인연이 되었다. 김종해, 마종하와 오탁번, 오세영과 이건청 등은 박남수를 정신적 스승으로 결집을 이룬 기존 동인들의 권유로, 한 배를 타게 되었었다.

 

박남수는 이미지와 언어의 절제를 지향하는 시로 한국시사에 강한 개성을 남긴 시인이었다. 그런 모더니스트 박남수와의 인연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시인들의 집합체인 「현대시동인」들의 시작 경향이 언어 중심, 이미지 중심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960년대는 4.19와 5.16 등을 거치면서 현실의 문제들이 전면에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다. 개체적 자유의 문제가 크게 제기되었고, 좌절의 상처 역시 깊이 박힌 채 무의식 속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다. 시인들 역시 이런 현실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대시동인」들은 현실 참여를 내세우는 시들이 이념으로 구호화 되고 시의 언어가 일종의 수단이 되어가기도 하는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현상들 위에 시의 미학에 기초한 시를 바로 세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었다.

 

“이 이상의 좌절과 고뇌는 우리들의 내면에 미묘한 딜레마를 형성해 놓았으며, 시적 상상력마저 마비시켜 놓았다. 그래서 우리의 시는 현실에서 얻은 이 내면의 딜레마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현실을 개조하는데 직접 참여하지 않으려는 대신, 현실이 야기하는 모순을 시로 극복하려 함으로써 현실에 도전할 것이다.……우리는 시작에 있어서의 엄격한 역사의식을 전제로 하여 이 시대의 증인이 되고자 한다……. ”

 

『현대시』 10집에 실린 ‘현대시 까르테’에서 현실의 문제를 시의 미학으로 극복할 것을 다짐해 보이고 있다. 시를 수단으로 현실과 싸우기보다는 현실의 진정한 근원인 내면의 표출을 통해 현실에 도전하려 한 것이다. 「현대시동인」들의 시적 지향은 내면 의식, 무의식 세계를 가감없이 이미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난해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어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면도 있었다. 「현대시동인」들의 시에 대한 비판과 비난도 상당한 모습으로 터져 나왔는데 하나는 ‘사기시’,‘가짜시’라는 비난이 일었고, 또 다른 면은 ‘당신들이 말하는 현실 도전과 역사의식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 제기는 주로 참여를 표방한 쪽 시인, 비평가들 쪽에서 제기 되었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이유경은 시는 상상의 세계이며 이미지의 세계이며 인간 본질을 가르치는 이데아의 세계이며 「현대시동인」들이 말하는 역사의식의 시란 이런 본질을 바탕으로 비합리적인 현실을 새로운 관계 속에서 발견함으로써 바른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맞받고 있다. 이승훈 역시 ‘사기시’ 운운의 비평들이 지니는 저질 농단에 대해 시인들은 상황과 사물과 추상과 관념과 투쟁해야 하는 사람이며 그런 점에서 시인은 방법적 모험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맞받았다.

 

결국, 이런 문제에 대한 대립은 시를 60년대 한국시의 중요 이슈 중의 하나인 ‘순수’와 ‘참여’논쟁 속으로 가져갔고, 시는 무엇이고 현실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이 성찰할 수밖에 없게 하는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었다. 그리고, 60 여 년을 훌쩍 넘긴 오늘의 시점에서 이념지향의 시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 「현대시동인」 대부분이 아직도 활발하게 시작에 전념하면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시의 정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선 자리는 언제나 바른 자리이며, 그것을 수단으로 격하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 밝혀진 셈이라고나 할까?   

 

동인시지 『현대시』는 한국시인협회 회원들을 중심 필자로 한 일종의 준동인지 성격의 지면으로 출발하였다. 1962년 6월 25일자로 발행된 『현대시』 1집 목차를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시에 김광림, 김요섭, 김종삼, 박태진, 신동집, 이 중, 임진수, 주문돈 외에 ‘이 중, 임진수, 전봉건’의 좌담, 박태진의 평론, 전봉건의 김광림 시집평. 1집의 필진들이 모두 시의 언어미학을 바탕으로 서정의 현대화를 지향하고 있는 시인들이었다.

 

그 후 유치환, 김종삼, 허만하, 김하림, 민웅식, 조지훈, 장만영, 김수영, 황운헌, 박양균, 한성기, 장호, 박두진, 박목월, 박남수, 김춘수, 김윤성, 이수익, 정진규 등이 필진으로 참여하면서 든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현대시』 6집에는 박목월, 김종삼, 신동집, 민웅식, 허만하, 주문돈, 김영태, 이수익, 정진규, 이승훈, 황운헌, 이유경의 이름이 보이는데, 말하자면 한국시인협회 기관지 겸 준동인지 성격으로 간행되던 잡지를 본격 시동인지로 자리 잡아가는 준비단계로 변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테면 한국시인협회의 중심 멤버들이 참여해 동인지가 나아 가야할 방향을 설정하고 기초를 다진 다음 당시의 신예시인들 중심의 동인들에게 넘겨준 셈이었다.

 

「현대시동인」 구성원들의 상호 유대감은 남다른 데가 있었던 것 같다. 동인 구성원들이 긴밀한 유대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멤버들이 정선되어 있었다는 데서 오는 상호 균형, 혹은 일종의 호승심같은 것도 있었지 않나 싶다. 허만하, 김규태, 이유경, 주문돈, 정진규, 박의상, 김종해, 마종하 등은 각자 전문분야에서 우뚝한 자기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이다.  또한, 오세영, 오탁번, 이건청, 이승훈 등은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후에 대학의 시학교수가 되었다. 동인 모두가 시적 성취에서는 물론 살아가는 일에서도 나름대로의 성취를 이룬 셈이다. 조선일보사 뒤 유성다방, 아리스 다방 등을 전전하면서 친교를 두텁게 이었으며 어떤 땐 동인들의 집 순례를 하면서 유대를 이어갔었다.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참신한 음성들이 마주치는 자리였었다.

 

그리고, 동인지 『현대시』 간행은 26집으로 끝났지만, 「현대시동인」은 그때 운명처럼 이어진 인연을 소중하게 보듬어 안으면서 40여 년이 넘도록 무언의 결속을 이어오고 있다. 일테면 「현대시동인상」을 제정해 등단 5년 미만의 신인들을 선정, 격려하기로 했던 일도 동인들의 결속의 힘으로 한국시에 고마움을 표하고, 한국시의 바른 방향을 선도하자는 뜻을 담고 있었다. 1995년에 제1회 수상자를 냈던 「현대시동인상」은 아마 가장 공정한 심사로 평가될만한 문학상이었으리라. 대상 작품을 선정하고, 그렇게 선정된 작품들을 미리 마련된 자료를 통해 충분히 읽고 진심을 다해 선정에 임했었다. 매년 동인 모두가 30만원씩 비용을 갹출하여 상패를 만들고 시상식 후 후배 시인들에게 푸짐한 술자리를 마련했었다. 수상자의 시집을 문학세계사가 간행해주었으며, 『현대시학』은 동인들 각자의 소상한 심사평과 수상시인 작품론을 게재해 격려해주었다. 10회 수상자 선정을 끝으로 마무리했지만 그 수상자들이 모두 한국시의 활발한 동력으로 활약하고 있음을 볼 때 든든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지금, 동인 대부분이 노년에서도 시업을 펼쳐 보이고 있다. 동인들 모두 늘, 건승 건강해서 밝은 자리에서 오래 마주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ifsPOST>

 

2
  • 기사입력 2023년07월29일 16시40분
  • 최종수정 2023년07월13일 11시24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