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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의 내부거래, 왜 문제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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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5월28일 19시2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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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의 내부거래, 왜 문제인가

 

재벌기업들의 상품·용역 내부거래 실태

2014년의 40개 재벌(자산 5조원 이상)은 평균 35.5개(최대 80개, 최소 9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  이 기업들은 필요한 상품·용역을 상당 부분 계열사에서 구매한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39개 재벌의 2013년 총매출액 중 12.6%(160.5조원)가 계열사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총매출액에서 수출과 모자관계 거래를 뺀 ‘국내’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면, 내부매출 비중이 23.5%(152.8조원)에 달한다.

 

특히 재벌 비상장사들의 계열사 의존도가 높다.  이들의 내부매출 비중(총매출액의 24.3%, 국내매출액의 36.6%)은 재벌 상장사들(총매출액의 7.7%, 국내매출액의 16.3%)의 3배 혹은 2배가 넘는다.  비상장사들의 내부거래 비중은 재벌(36.6%)이 비재벌(총수없는) 8개 집단(25.9%)보다 10%p 이상 높다.

 

대체로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들이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인 10대 재벌의 비상장사들은 내부거래 비중이 40%를 넘는다.  총수2세 지분과 내부거래 비중의 관계도 비슷하다.

 

내부거래 규모는 석유정제, 자동차, 화학 등 수직계열화 업종에서 크지만, 내부거래 비중은 서비스업에서 높다.  과학·기술서비스, 사업시설관리, 정보서비스, SI·컴퓨터프로그래밍, 사업지원서비스, 부동산업, 폐기물운반·처리 등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50%를 넘는다.  내부거래 2조원 이상의 업종 중에서는 SI・컴퓨터프로그래밍(60%), 인력공급・보안(55%), 부동산임대・관리(54%), 광고대행・지주회사(44%), 물류(37%) 순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총수일가 지분이 20% 이상이고 내부거래 비중이 30% 이상인 회사들은 SI, 휴양시설, 공사업, 광고대행, 도매・상품중개 등을 영위하고 있다.  이들은 다수 계열사와 거래하는데, 60개 이상의 계열사에 판매하는 업체들도 있다.  공정위가 20개 재벌회사(광고, SI, 물류)를 조사한 결과, 2010년 총매출액의 71%가 내부거래이며, 내부거래 금액의 88%가 수의계약이다.

 

기업집단의 지배주주는 계열사들의 부나 이익을 사적 이익으로 빼돌릴 수 있다.  계열사들이 총수일가 소유 회사로 일감 몰아주기 등의 지원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상술한 내부거래 양상과 특징은 내부거래의 상당부분이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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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내부거래’ 규모는 공정위 통계치보다 크다

공정위의 내부거래 통계는 공정거래법 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회사들 간의 거래에 대한 것이다.  법상 계열사가 아닌 ‘관계사’들과의 거래까지 포괄한 ‘사실상의 내부거래’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우선, 공정거래법 상의 “독립경영 인정기준”(총수측 회사와 친족측 회사 간 상호보유지분이 일정 비율 미만, 임원겸임・채무보증・자금대차 없음)을 충족해 기업집단에서 분리된 친족 재벌기업이 지난 10년간 약 3백 개에 이른다.  총수와 친족은 계열 분리를 했더라도 여전히 서로 친족이다.  이들은 호혜적으로 상대방의 상품・용역을 사주는 ‘상호거래’(reciprocal dealing)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거래가 상당 규모로 이뤄지고 있으며, 친족 거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회사들도 있다.

 

공정거래법은 총수일가(총수,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및 4촌 이내 인척)가 지배하는 회사를 계열사로 간주한다.  총수의 ‘먼 친족’이 지배하는 회사는 계열사가 아니다.  재벌기업의 퇴직 임직원, 총수일가의 친구 등이 경영하는 회사도 상당히 많다.  이들 회사는 대개 재벌 계열사들과의 거래에 의존해 사업을 영위한다.

 

재벌기업들과 이런 ‘관계사’들 간의 거래는 법에서 시장(비계열)거래로 취급되지만, 사실상 내부거래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 실태와 양상을 알 수 있는 조사・통계자료는 전무한 실정이다.

 

 

부당 내부거래의 본질

기업은 필요 자원을 시장에서 조달할 수도 있고 내부거래를 통해 확보할 수도 있다.  이 선택은 전적으로 경제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고, 시장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경제적 효율성과 무관하거나 괴리된 내부거래는 부당한 것이다.  이런 내부거래에는 거의 언제나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동기, 인맥, 연고 등 능력주의・효율성과는 ‘무관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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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 내부거래의 귀결

시장거래는 공급자의 이윤추구 동기에 따른 전문화, 비용최소화 등의 장점이 있지만, 특정 고객의 특별 용도를 위한 ‘관계 전속적 투자’(relation-specific investment)가 요구되는 거래는 시장에서 하기 어렵다.  이런 맞춤 투자가 수반되는 거래를 외부업체와 하게 되면, 쌍방이 서로 상대방에게 ‘묶이게’(lock-in) 되어 심각한 거래상 어려움(거래단절 위협, 신속・효율적인 조정 곤란 등)이 발생한다.  거래의 내부화가 필요하고 효율적이다.

 

재벌기업들은 이런 내부거래를 통해 다양한 효율성을 실현해왔다.  하지만 비효율적이거나 부당한 내부거래도 빈번히 행하고 있다.  이 문제는 특히 핵심 사업영역 외의 지원・보조업무(SI・컴퓨터프로그래밍, 물류, 광고대행, 소모성자재, 부동산관리, 건설, 급식, 레저, 보안 등)에서 두드러진다.

 

이 상품・용역들은 대부분 ‘관계 전속적 투자’가 요구되는 분야가 아니다.  능히 시장거래가 가능하나, 대다수 재벌들이 이 지원・보조적 상품・용역들을 계열사에서 조달하고 있다.  재벌기업들의 이런 내부거래가 사적 이익이 될 수는 있지만, 진정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경제 차원에서 효율적인 것인지 의심스럽다.

 

재벌기업들의 상품・용역 수요는 독립・중소・벤처기업들에게 다양한 사업기회가 되지만, 재벌 관련자들이 기회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계열사나 관계사는 쉽게 일감을 확보하고 돈을 벌 수 있지만, 외부업체들은 고객을 잃고 결국 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다.  여러 재벌들이 각기 이렇게 상품·용역 거래를 내부화・계열화하면, 시장은 더욱 축소되고 ‘파편화’되며, 사업자간 경쟁은 사라지고, 외부업체들의 사업과 성장의 기회는 소멸된다.  이로 인해 외부업체들은 적정 사업규모를 달성하기 어려워 경쟁력을 갖출 수 없고, 이는 다시 다른 재벌들의 거래 내부화를 촉진한다.

 

독립・중소・벤처기업들은 재벌 대기업들처럼 필요 자원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다.  이들은 대기업들보다 훨씬 더 시장거래에 의존해야 한다.  이들에게 효율적이고 공정한 시장은 경제적 기회와 이익을 지켜주는 핵심 장치다.  재벌들의 부당 내부거래로 인한 시장의 축소와 기능 저하는 중소・벤처기업 등 경제적 약자들의 사업상 장애와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이렇게 시장이 제대로 형성・작동・발전하지 못하는 경제에서 중소・벤처기업의 활성화, 고성장 기업의 출현 등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균등한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열린 시장’을 조성한다는 시각에서, 재벌기업들의 ‘사실상의 내부거래’를 대상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제대로 규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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