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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3> 10가지 제언 ③융합 특별법 제정보다 개별법 정비가 더 절실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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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1월13일 16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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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규제는 정책을 구현하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과 제도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정부의 속성상 법과 제도가 시대를 선도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패러다임이 변하는 국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하나의 거대한 트렌드로 진행될 때는 법과 제도가 이러한 추세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기술 및 산업 융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시장에서 융합 시대에 걸맞도록 제도 개선 요구가 잇따르자 정부도 이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융합 신산업의 육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2011년에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기존의 법체계상 기준, 규격, 요건 등이 없어서 기술개발은 물론이고, 융합 신제품을 개발하고서도 제조, 판매, 운행 등이 불가능했던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인・허가나 승인 등과 관련된 규제가 상당수 해소되어 신산업 분야의 시장 창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산업융합촉진법’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칸막이식 사고에 익숙해진 행태와 행정이 융합을 촉진하는 법 하나를 제정한다고 해서 쉽게 뒤바뀔 리가 없었던 것이다. 개별법 차원에서 발목이 잡히던 사례들이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했다고 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산업융합촉진법’과 같은 특별법 제정이 전혀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으나,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개별법 상에서 규제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세밀하게 발굴하여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병행해야 효과적이었다는 의미다. ‘산업융합촉진법’은 그야말로 융합기술을 통해 새롭게 전개되는 산업 패러다임에 걸맞도록 각종 법령의 규제개혁을 촉구하는 기본법일 뿐이었다. 

 

2013년에 제정된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ICT 특별법)’도 마찬가지다. ICT특별법은 최신 정보통신기술이 법과 규제 때문에 고사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기술사용에 임시 허가를 내주는 일종의 기술상용화 패스트 트랙 조항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역시 아직까지 이를 활용한 사례가 그리 많지는 않다.  

 

정보화를 주도했던 3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ICT 분야도 하나의 개별 기술에 의존하는 개별 산업이기 때문에 산업 진흥을 위해서나 규제를 위해서나 ICT 분야 고유의 제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ICT 기술을 기반으로 융합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형국에서는 정보통신산업만을 주인공으로 구분하여 진흥하거나 규제할 수는 없고, ICT 기술이 기술 및 산업 융합의 촉매 역할을 하는 만큼 규제도 그에 걸맞게 설정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ICT 분야가 반드시 주인공을 맡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 ICT 분야와 융합되어 생성되는 다른 산업의 영역을 위해 기꺼이 조연 역할을 자임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규제를 설정하는 정부당국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러한 인식 전환이 전제되지 않고서 기술 및 산업 융합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2011년 산업융합촉진법, 2013년 ICT특별법을 잇따라 제정했다고 한들, 그 성과는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못할 게 뻔했다는 의미다. 

 

더구나 산업융합촉진법이나 ICT특별법의 경우는 여타 개별법의 관련 조항을 무력화하거나 압도할 만큼 우위에 있는 슈퍼 특별법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입안된 단순 특별법일 뿐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각각의 개별법에 규정된 조항들은 그대로 존속해 있고, 적용되는 현실도 그대로인 채 변한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융합 시대를 맞아 법과 제도를 어떻게 재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무엇보다도 융합을 촉진하는 특별법의 제정 못지않게, 차제에 개별법을 대상으로 융합시대에 걸맞게 정비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산업융합특별법’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 'ICT 특별법‘을 관장하는 미래창조과학부뿐 아니라 모든 정부부처가 나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U-헬스의 경우에도 의료법, 의료기기법, 약사법, 국민건강보호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법률의 규제를 받게 되고, 드론 하나를 띄우는 데도 항공안전법, 항공사업법, 공항시설법 등 드론 운영 및 운행을 직접 규율하는 항공 관련 법, 군사시설보호법을 비롯한 국가안보 관련 법, 전파법, 위치정보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정부부처가 소관하는 다양한 법률이 적용된다. 결국 융합을 촉진하는 특별법 못지않게 개별법을 융합 시대에 걸맞게 정비하는 작업이 더 긴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7년 5월 말 현재 대한민국의 법률 1,373개 중에서 규제를 포함한 법률은 868개에 이른다. 이들 전부에 대해 일괄적으로 재검토하는 기회를 갖는 게 바람직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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