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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학생부 기록 합헌 결정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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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5월11일 20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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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사항은 모두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 처벌의 경중을 가리지 않는다. 서면사과와 같은 가벼운 처벌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지만 다소 엄한 처벌은 졸업 후 2년이 지나야 삭제된다. 그것을 졸업과 동시에 삭제하려면 학교폭력위원회의 결정을 거쳐야 한다. 이에 대한 모든 권한은 교육부에 있다. 법령에 명문화된 것은 아니다. 교육부의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지침’에 의한 것이다. 

 

교육부의 이러한 조치는 시행 당시부터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위헌소송까지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8일 민변이 A학생을 대리해 교육부의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지침 제7조 제3항’ 등에 대하여 2012년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안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한국일보. 2016.04.30. 기사 참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한국일보 기사는 다분히 부정적이다. 헌재 결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그 자체는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전원 일치 합헌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조치가 처음 시행된 2012년도부터 학교폭력으로 징벌 받은 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 자체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창작과비평(2014년 겨울호. 진보교육감 시대, 무엇을 해야 하나)에서 그런 취지의 말을 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징벌 내용을 학생부에 기록(했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서 삭제)하도록 한 방안조차도 학교규율체계 전체를 고려하여 살펴보면 그다지 심한 처벌이 아니다. 학생들이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면 그 학생의 행위는 무단지각이란 이름으로 학생부에 기록되는데 그것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늦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워서 지각하는 행위는 잘못된 행위이기는 하지만 학교폭력 가해 행위에 비하면 아무런 나쁜 행위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학생부는 이런 행위를 ‘무단’지각이란 이름으로 평생을 기록하는 것이다. 학교에 지각하는 학생은 대개의 경우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못 받는 아이들이 많은데 학생부는 이 학생들에게 평생 좋지 않은 낙인을 찍어온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학교폭력 가해로 인한 처벌 내용을 일정기간 기록하는 것은 오히려 온건한 처벌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학교폭력 대응 방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 대응방식은 많은 개선을 필요로 한다. 처음 한동안은 단점에 비해 장점이 컸던 방식도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시점에는 단점이 더 커진 것도 있다. 

 

2.

무엇보다 학교와 교사들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침대로라면 학교폭력과 관련해 학교에서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학교와 교사들의 보신주의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다른 원인이 더 크다. 가장 큰 원인은 교육부(교육청)가 교사들이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너무나 협소하게 해 놓은데 있다. 

 

우리는 흔히 학교폭력과 학교폭력이 아닌 사안을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극악한 학교폭력 사안과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려운 학생들 사이의 사소한 갈등 사이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냉탕과 온탕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목욕탕의 세계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중 어떤 것은 엄한 처벌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더 많은 것들은 대개 교사들의 교육적 지도로 충분한 것이다. 

 

엄한 처벌이 필요한 것과 교육적 지도로도 충분한 것을 가르는 절대적인 선은 없다.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객관화하여 문서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결국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는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일선 학교와 현장의 교사들이 그러한 자율성을 발휘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우리는 학교폭력이라 하면 상당히 악질적인 행위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힘이 센 놈이 약한 학생을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식의 학교폭력 같은 것 말이다. 이런 행위는 당연히 엄한 처벌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폭력 사안들 중에는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사이의 힘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해행위가 단발적인 것들도 적지 않다. 이런 사안에 대해선 일선 학교와 현장의 교사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얼마든지 교육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최소화한 교육부의 조치는 초기에는 상당한 정당성이 있었다. 학교폭력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의 안이한 대응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학교에서 은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서로 화해시키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학교의 잘못을 생각하면 학교와 교사의 자율성을 최소화한 교육부의 조치들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단점이 오히려 더 큰 것 같다. 이제는 교사 선에서 지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들까지도 학교폭력위원회로 회부되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단점에 주목할 때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학교와 교사에게 더 폭넓은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장의 교사들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없이 자율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그래도 된다. 첫째, 이제 그렇게 해도 학교와 교사들이 학교폭력 사안을 과거처럼 안이하게 다루거나 외면하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학교폭력은 반드시 근절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합의가 일선학교에 상당부분 뿌리를 내렸다. 과거로 퇴행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부작용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존재한다. 경찰서에는 이제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부서가 존재한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학생과 학부모는 얼마든지 경찰에 직접 신고할 수 있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면 경찰은 반드시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되어있다. 자칫 학교가 안이하게 행동해도 피해학생과 부모는 경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3.

학생부 기록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서면사과나 교내봉사와 같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은 기록하지 않도록 하거나 학생부 기록 여부를 학교폭력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등의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조치가 처음 도입된 2012년에는 처벌 내용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은 지금처럼 무서운 조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입시제도의 급격한 변화로 말미암아 사정이 달라졌다. 학생부종합(입학사정관제)이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입시상황에서 학교폭력으로 처벌받은 사실이 학생부에 기록되는 것은 사실상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원서를 넣어보았자 불합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학생과 부모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위원회에 상정되는 순간 그 어떤 처벌인가는 받게 될 텐데 아무리 작은 처벌을 받아도 그 사실이 무조건 학생부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조치는 몇 년 전과 동일한데 입시상황의 변화로 인해 그 조치의 가혹성이 현저히 커졌다.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학생부기록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막고 학교현장의 부담을 덜 수 있다.

 

4. 

학교폭력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식은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법령(학교폭력예방법,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을 개정해야겠지만 앞에서 얘기한 것을 비롯한 것들은 굳이 법령을 개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교육부의 지침만 바꾸어도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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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5월11일 20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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