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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재정준칙에 허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0월11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0년10월10일 11시24분

작성자

  • 박형수
  •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객원교수,前 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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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재정준칙은 왜 필요한가?

 

‘재정준칙(fiscal rules)’이란 법률 등으로 지출규모,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총량적인 재정지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한함으로써 재정정책에 있어 재량의 여지를 줄이는 재정운용 방식을 말한다. 

EU의 재정준칙이 그 대표적 사례다. EU가 출범하면서 회원국들의 건전재정 유지와 재정정책의 공조를 위해 ‘마스트리히트 조약’(Treat of Maastricht)과 ‘안정 및 성장협약’(Stability and Growth Pact)에 재정적자는 GDP대비 3% 이하, 국가부채비율은 60% 이하로 유지할 것을 회원국의 의무로 하였다. 

 

그러면 왜 재정정책의 재량권을 축소해야 할까? 거시경제학에서는 경기침체기에 재정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하여 경기부양을 도모하되, 이로 인해 발생한 재정적자는 경기호황기에 재정을 긴축해 발생한 재정흑자로 상쇄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이론에서는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재정정책을 경기 대응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경제에서는 행정부와 정치권이 경기침체나 위기 시에는 재정확장을 한목소리로 외치지만, 경제가 회복된 후에는 늘어난 국가채무를 줄이는데 필요한 재정긴축을 꺼리는 이른바 ‘재정적자 편향(deficit bias)’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화되어 있다. 

 

결국 반쪽짜리 비대칭적인 경기대응 재정정책을 지속하다 보면 국가채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에 2003년 영국 재무성은 과거 오랜 기간 확장적 재정정책을 남발했음을 반성하면서 GDP갭률(실제 GDP와 잠재 GDP 간 차이를 잠재 GDP로 나눈 비율, 경제성장률 하락폭)이 마이너스 1% 또는 1.5%를 넘을 정도로 경기침체가 심각할 경우에만 재량적 재정정책을 실시할 것을 스스로 결정한 바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버블 붕괴 이후 1992년부터 2000년까지 9차례에 걸쳐 총 124조엔(해당기간 연평균 GDP의 24%)에 달하는 경기 부양책을 펼쳤는데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가채무비율만 65%에서 131%로 급증했다.   

 

이와 같은 재정적자 편향, 국가채무 편향적인 재정정책 운용의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재정준칙이다. 필요시 재정 확장과 복지 확대를 허용하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법적 장치인 재정준칙이야말로 정책적 재량과 재정건전성 간 균형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고대 그리스 최대의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이기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세이렌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돛대에 자기 몸을 묶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키르케의 경고로 세이렌의 위험을 미리 알고 있었던 오디세우스는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구속함으로써 선원들과 달리 밀랍으로 만든 귀마개를 하지 않고 매혹적인 노래를 듣고서도, 바다 요정에 홀려 바다에 빠져 죽지 않고 무사히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터키와 우리나라만 재정준칙이 없다. 지난 10월 7일, 한국경제학회의 ‘국가부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의 75%는 ‘국가채무 비율이 아직 OECD 평균의 절반 이하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93%는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금년 초, 한국재정학회에서 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재정전문가의 83%가 재정준칙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감사원도 ‘중장기 국가재정 운용 및 관리실태’ 감사보고서를 통해 재정준칙 도입을 검토할 것을 행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재정준칙 도입이 재정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된 것이다.

 

이번 발표된 도입안은 무늬만의 재정준칙인가?

 

지난 10월 초 드디어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재정준칙의 3대 구성요소인 법적 토대, 재정총량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적 제한, 실효성 확보장치 등 3가지 측면에서 이를 평가해 보자. 특히 OECD가 34개 회원국의 재정준칙에 대해 조사한 『2012 OECD survey of budget practices and procedures』 결과와 2016년 기획재정부가 재정준칙의 도입을 위해 추진했던 「재정건전화법(안)」과도 비교해 보자.  

 

< 재정준칙의 법적 토대 >

 

재정준칙을 보유한 32개 OECD 국가는 대부분 법률이나 국제협약을 통해 도입했지만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슬로박 등 9개 국가의 재정준칙은 법률보다 변경이 훨씬 까다로운 헌법에 기초하고 있다. 

 

지난 2016년 기획재정부가 제시했던 「재정건전화법(안)」은 제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에서 “이 법은 국가채무 및 재정수지의 관리 등 재정건전화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한다”고 규정해 기본법 내지 특별법적 성격을 갖도록 함으로써 일반 법률보다 구속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 도입방안은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재정준칙의 도입 근거만 마련하고, 가장 핵심요소인 수량적 한도는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법적 기반이 다른 OECD 국가나 2016년 방안보다 훨씬 취약하다. 시행시기도 2016년에는 ‘법률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려 했던 반면, 이번에는 5년 후인 2025년부터 적용하려 하고 있다. 재정에 대한 정치개입과 재정의 과도한 정치화를 방지하기 위해 헌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 법률보다 훨씬 구속력 있는 법적 근거로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 재정총량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적 제한 >

 

이번 도입방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 3%, 국가채무 60%로 재정총량에 대한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증가하고 향후 재정의 역할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여러 재정총량지표 중에서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를 선택한 것은 타당해 보인다. 재정준칙을 도입한 32개 OECD 국가를 보면 수지준칙이 29개국, 채무준칙이 24개국, 양자 모두 도입이 23개국이다. 재정준칙을 도입한 85개 IMF 회원국들도 가장 많은 재정준칙 형태가 단일 준칙은 채무준칙(63개국)이고, 2개 이상 함께 사용은 수지준칙과 채무 준칙(51개국)이다. 

 

그러나 ‘3%, 60%’라는 수치적 한도는 일견 EU의 재정준칙과 동일해 적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통합재정수지에는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흑자가 포함되어 있다. 정부도 사회보장성 기금수지 흑자는 장래의 연금·보험급여 지급에 대비하여 따로 적립하는 것이므로 당해 연도의 재정건전성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재정수지 산정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며 2003년부터 ‘관리재정수지’를 작성해 대표적인 재정지표로 사용해 오고 있다. 

 

통합재정수지가 흑자라고 하더라도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가 적자이면 지출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법적으로도 국민연금 흑자분을 일반재정에서 함부로 가져다가 사용할 수 없다. 사회보장성 기금의 흑자가 대체로 GDP대비 2% 정도이기 때문에 3%의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5%의 관리재정수지 적자에 해당하고, 결국 EU의 재정적자 상한 3%보다 크다. 이러한 이유로 2016년 방안에서는 재정적자 3%의 한도를 통합재정수지가 아니라 관리대상수지 기준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또 2016년 방안의 국가채무 한도는 45%였는데 불과 4년 만에 다시 발표된 이번 방안에서는 EU 재정준칙과 동일하게 60%로 올려 잡았다. EU국가의 인구고령화율이 2019년 20%에서 2060년 29%로 상승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에 15%에서 41%로 급증할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9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을 통해 현행 복지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더라도 고령인구가 많아지는 효과만으로 복지지출이 크게 증가해 2019년 38%에 불과한 국가채무비율이 2070년에는 186%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인구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증가 규모가 EU국가는 GDP의 2%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는 17%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인구고령화로 인한 재정악화에 대비해 가능한 국가채무비율을 낮게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우리 재정은 다른 OECD 국가와 달리 막대한 남북통일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1996년 스웨덴 정부는 향후 인구고령화 진전에 따른 연금재정 압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GDP의 2%에 달하는 재정흑자를 목표로 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한 바 있다. 

 

그러면 기획재정부는 왜 불과 4년 만에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한도를 3%와 45%에서 5%와 60%로 변경했을까? [그림 1]을 보면 1983년 이후 36년 동안 관리재정수지가 5%를 넘어 적자를 보였던 적은 없었으며, 통합재정수지가 3% 넘는 적자를 보였던 해도 단 한 차례 외환위기 직후 1998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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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부계획에 따르면 금년부터 2024년까지 5년 연속 적자상한을 초과할 전망이다. [그림 2]의 국가채무비율도 1995년 8%에서 2004년 20% 돌파, 2011년에 30% 돌파, 금년 2020년에 40%를 돌파한 후, 2024년에는 58%에 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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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앞으로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재정정책을 4년이나 더 지속해 국가재정을 더욱 악화시킨 연후에야 2025년부터 EU의 재정준칙이나 2016년 방안보다 훨씬 후퇴한 내용의 재정준칙을 가동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최근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국가재정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브레이크 없이 폭증하고 있는 재정지출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재정준칙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수많은 경제학자, 재정학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한편,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재정문제가 금년 초에 발생한 코로나19 때문이고 내년쯤 경제가 회복되기만 하면 재정적자가 줄어들 것이므로 재정준칙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재정준칙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는데 걸림돌이 된단다. 그러나 [그림 1][그림 2]에서 보듯이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2024년까지 우리 재정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구나 재정건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재정준칙 도입 주장은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이전인 2019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림 3]을 보면 문재인 정부 들어 시작된 복지확대 정책이 본격화하고 증세정책이 실종된 2019년부터 세금 등 재정수입은 정체된 가운데 재정지출이 크게 증가하는 소위 ‘악어의 입’ 현상이 시작되면서 재정적자가 급증하고 있다. 적자 규모가 2018년 11조원(GDP의 0.6%)에서 2019년에 54조원(2.8%)으로 커지더니, 금년 본예산에서 72조원(3.5%)으로 더 늘어났다. 코로나19의 발발로 추경이 4차례나 편성되면서 119조원(6.1%)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내년도 110조원(5.4%)을 포함해 2024년까지 5년 연속으로 재정적자가 100조원을 넘을(5.6~5.9%) 전망이다. 코로나19에 의한 일시적인 재정악화는 올해 GDP의 2.6%, 내년 1.9% 정도에 불과하고 2022년 이후 대규모 적자는 코로나19와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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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근 재정악화 문제의 본질은 ‘높은 복지수준’ ‘낮은 조세부담’ ‘작은 국가채무’의 3가지 정책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재정 트릴레마(trilemma)’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무책임하게 일본처럼 ‘작은 국가채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대한 보다 도전적인 한도 설정을 통해 3가지 재정정책 목표의 재균형을 도모할 필요가 더욱 절실해졌다.  

 

마지막으로 재정준칙의 준수 여부에 대한 판단이 용이하려면 무엇보다 기준이 단순해야 하는데도, 이번 방안에서는 복잡한 산식을 통해 하나의 지표가 한도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한도를 크게 하회하면 재정준칙을 모두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하자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제안을 하고 있다. 또 재정수지와 국가채무의 한도를 소진하지 않으면서 재정을 확장할 수 있는 꼼수(예를 들면 재정사업에 공기업이나 민간자금을 동원)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재정당국이 5년마다 국회 승인이 필요 없는 시행령 개정만으로 재정준칙의 수치한도를 조정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은 사실상 재정준칙을 도입하기는 하되 준수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재정총량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적 제한은 법률로 해야 하고, 나아가 국제기구들이 권고하고 있고 주요 선진국에 설치된 재정위원회와 같은 독립재정기구를 발족시켜 도입되는 재정준칙의 준수 여부에 대한 감독과 더불어 재정적자, 국가부채에 대한 전망·분석을 포함한 재정평가보고서의 정기적인 공표 임무를 맡겨야 할 것이다. 

 

< 실효성 확보장치 문제 >

 

대부분의 재정준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법정 한도를 초과한 재정운영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정준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EU는 재정준칙을 준수하지 못한 회원국에 대해 위반 규모에 비례해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주권국가에서는 정치적인 책임 이외의 사법적·금전적 제재를 하기 어렵다. 이에 사후적인 강제 시정조치를 통해 재정준칙의 실효성을 확보시켜주어야 한다. 

 

독일과 스위스의 경우 사전적으로만 통제하는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사후적인 부채제동장치(Debt Break)를 통해 탄력적인 경제상황에의 대응과 재정건전성 유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독일은 2009년 헌법 개정을 통해 신규 채무발행(재정적자) 한도를 GDP의 0.35%로 설정하였는데, 경기변동의 영향으로 재정적자 규모가 변하는 것을 감안해 주는 한편 자연재해·경제위기 등 비상상황 발생 시 연방의회의 과반 다수결 의결과 적정 기한 내의 구속성 있는 상환계획 제출을 조건으로 한도초과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법정 한도를 초과하는 채무증가를 사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통제계정을 설치하고, 초과된 채무를 모두 누적시켜 그 규모가 GDP의 1.5%를 상회하면 강제적으로 경기순환을 고려해 상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정준칙이 적용되기 시작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독일의 국가채무비율이 13%p나 낮아졌다. 

 

스위스도 2003년 헌법을 개정해 재정지출을 ‘경기변동을 감안한 재정수입의 한도  내’로 제한하는 수지준칙을 도입하였다. 예외적인 재정수요가 발생할 때에는 지출상한을 높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초과지출분은 반드시 다음 회계연도에 보전해야 한다. 스위스도 2019년까지 국가채무비율을 19%p나 낮출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6년 방안과 이번 도입방안 모두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심각한 국가적 재난이나 경제위기 등이 발생할 경우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하고 있으나, 사후관리를 통한 실효성 확보장치는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 

2016년 방안에서는 국가채무한도 초과 시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을 전액 원리금 상환에 사용하고 5회계연도 내에 한도 이하로 채무를 감축할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게 했고, 이번 도입방안에서도 한도 초과 시 다시 한도 이내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재정건전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의무화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 정도로는 재정준칙을 도입하고도 국가채무가 계속 늘어나는 문제를 절대 막을 수 없다. 우리도 독일이나 스위스 같은 강력한 사후적인 강제 시정조치를 의무화해 재정준칙의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재정준칙이 성공하려면?

 

재정준칙은 개별 국가가 처한 재정 상황, 역사적 배경, 정치적 환경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서로 다른 구속력을 가지고 도입되고 운용되기 때문에 재정규율 확립, 재정수지 개선 등의 성과 측면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재정준칙이 성공하려면 우선 저명한 재정준칙 전문가인 윌렘 뷰이터(Willem Buiter, 영란은행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역임)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10계명을 지켜야 한다.

① 재정준칙은 단순해야 하며, 준수 여부가 쉽게 점검될 수 있어야 한다.

② 재정준칙은 정부의 지급능력(solvency)을 유지해야 한다.

③ 재정준칙의 적용대상은 국가 전체의 재정수지이다.

④ 재정준칙은 정부규모에 대하여 중립적이어야 한다.

⑤ 재정준칙은 재정의 자동안정화 장치가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⑥ 재정준칙은 장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⑦ 재정준칙은 경제구조와 초기조건의 차이를 허용해야 한다.

⑧ 재정준칙은 개별국가뿐만 아니라 국가연합체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⑨ 재정준칙은 믿을 수 있어야 한다.

⑩ 재정준칙은 공평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재정준칙 성공조건은 재정운용의 양대 축인 경기안정화 기능과 재정건전성이 유지·강화되도록 재정준칙을 엄격하면서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게 설계하고, 또 재정준칙이 잘 준수되도록 예산편성 절차, 입법부와의 역할 분담, 재정당국의 위상 및 권한, 예산집행의 감시 및 통제, 재정통계 등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 

 

정책담당자가 목표달성을 위해 동원하는 ‘creative accounting’(분식회계)이라 불리는 각종 꼼수와 편법이 사용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장치를 만들어 둘 필요도 있다. 결국 제도, 통계, 정책결정과정 등 재정운용 전반의 투명성이 제고되어야 재정준칙이 잘 정착되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재정준칙 그 자체보다 준칙을 준수하려는 재정당국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초, ‘양입제출(量入制出)’이라는 다소 법적기반이 약한 재정준칙을 도입하여 엄격히 운용해 본 경험이 있다. 당시 재정당국은 만성적인 재정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재정 운영의 근간이 되는 「예산회계법」에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국채의 발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세입범위 내에서 세출을 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자발적으로 마련했다. 

그리고 1984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13년 동안이나 일반회계 적자보전용 국채 발행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국가재정을 운용했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비율이 1984년 19.5%에서 1996년 11.1%까지 낮아지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외환위기 발발로 1998년에 예산회계법의 조항이 존속하고 있었음에도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국회의 의결을 얻은 금액의 범위 안에서 국채 또는 차입금으로써 충당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에 근거해 적자국채 9.7조 원을 발행하면서 양입제출의 재정준칙을 깨뜨렸다. 이후 매년 일반회계 적자보전용 국채 발행이 계속되는 등 양입제출의 준칙은 복원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비록 재정준칙이 법적 근거를 갖춰 도입되고 강력한 정책의지로 상당기간 성공적으로 준수되었다 하더라도, 예외적 상황에서의 유연한 적용과 이후 사후적인 강제 시정조치라는 안전장치가 충분하지 못하면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알려준 우리 재정의 소중한 역사다. 

 

지금 우리에겐 선진국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재정준칙을 우리나라도 도입했다는 것에 만족하거나, 잘 준수되더라도 재정건전성 회복이라는 성과를 낳을 수 없는 무늬만의 준칙을 시험하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다음 위기가 오기 전에 재정건전성을 조기에 회복시켜 놓아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양호한 국가신인도 유지, 중장기적인 재정 안정, 부채 상환 부담의 다음 세대 이전 방지 등을 위해 국가채무를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한 지난 10~20년 동안 성장동력 약화, 소득분배 악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및 대‧중소기업 간 격차 고착화, 사회갈등 심화 등 구조적인 경제‧사회문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찾지도 못한 가운데 저출산‧고령화의 인구문제가 본격화되고 국가재정 건전성만 훼손되어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인 개혁으로 새로운 혁신성장과 사회통합을 이뤄내기 위해서도 유연하고 튼튼한 국가재정이 필수적이다. 제대로 된 재정준칙의 도입을 지금, 여기, 우리가 저력을 한데 모아 도모해야 할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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