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59> 사별의 허적 공간에 뜬 사랑 시편들- 신덕현 유고 시집 「아내의 양말」을 읽으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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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현 씨는 내가 사는 이천 지역의 문학 모임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던 분이었다. 그의 시를 깊게 살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2019년 그의 아내 김경희 씨가 작고한 후, 타계한 아내를 그리는 시편들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타계한 후 2년 6개월 후, 그러니까 2022년 5월 신덕현씨마저 아내가 먼저 떠난 적멸을 찾아 갔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후, 이천 지역 문인들이 신덕현씨가 남긴 유작들을 수습해 유고시집 「아내의 양말」을 펴내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 원고를 접하게 되었다. 놀라웠다. 그의 시집 속 시편들 중 몇 편은 진한 감동이 되어 있었다.
신덕현의 시에는 아내와의 사별을 겪으며 그가 당면해야 했던 좌절과 슬픔이 구체적 사물로 노래되고 있다. 슬픔이 아니라 슬픔의 환기물들이 노래되고 있으며, 좌절이 아니라 좌절의 형태가 제시되고 있었다. 신덕현 씨는 그가 혼자서 부딪게 된 좌절과 슬픔을 감정으로 산화시키지 않고 끝까지 응시해서 실체를 찾아 그 뿌리까지를 제시해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일상에 쫒기던 아내가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논 양말짝, 그 양말짝을 비추는 햇살…, 아내가 쓰던 반짓고리, 단추, 바늘같은 사물들…). 시가 감정의 유출이 아니라 ‘사물의 발견’이며, ‘사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좋은 시인의 능력이기도 한 것이다. 타계한 신덕현의 유고시편 들 충 때로 감정의 진술이 눈에 띠기도 하지만, 그의 시에 보이는 아내 그리는 슬픔의 환기물들이 뿜어내는 사물의 견고 이미저리는 감동적이다.
시집의 시편들을 쓴 신덕현 시인은 2022년 5월 작고했고, 그의 아내 김경희 씨는 그 2년 전인 2019년 10월에 작고했다. 김경희 씨의 부음을 접하고 이천의료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을 때 신덕현씨는 늘 그렇듯 온유하고 담박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때, 그의 온유 담박이 닿아있었을 참담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신덕현은 2년 6개월 후 아내가 간 적멸을 찾아 떠났으며 아내 그리는 그리움의 시편들을 세상에 남겼다. 사랑이 절실하면 죽음의 문도 함께 손잡고 넘는다고 했던가? 나는 신덕현이 남긴 망부가(亡婦歌)를 감명깊게 읽었으며 60나이 부부의 진한 사랑을 부러움의 눈으로 목도하게 되었다,
신덕현 시인의 돌발적인 부음 소식을 접한 것은 그의 장례를 치루고도 한참을 지난 후였다. 시인의 부음을 내게 전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남긴 원고들을 접하면서 왜 그가 아내가 떠나고 없는 빈 세상을 혼자 살아낼 수 없었던가를 알 수 있었다. ‘斷腸之哀’(단장지애)란 말이 있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이르는 관용어로 쓰이는 말이지만 신덕현이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감내해야 했던 슬픔도 ‘斷腸之哀’(단장지애)의 그것이었음을 알겠다. 신덕현이 남기고 간 시는, 세상 떠난 아내를 현재의 시간에 현현(顯顯)시키려는 처절한 고투 속에서 찾아낸 ‘순정한 말’들의 집합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은 시적 수사로 좀 더 연마되어야 할 부분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신덕현이 남기고 간 시편들은 쉼 없이 사별한 아내를 불러내고 있으며 아직도 이승의 갈피 갈피에 남은 아내의 사물들을 찾아 헤맨다. 아내와 함께 만든 추억들을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워 보여주고 있다. 마치 만해 선사가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의 모순어법에서처럼 사별한 아내를 불러 생명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보여주고 있다. 신덕현은 아내를 불러내 그리움의 극한에 세우려는 힘든 노고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끝내는 아내가 적멸에 든 2년 6개월 만에 아내와의 동행 길에 나서게 된 셈이다.
신덕현의 망부가는 세밀하면서도 처연하다. 시 「아내의 양말」, 「놓쳐버린 말」 등 몇 편은 가히 가편이라 할만하다. 감정은 배제되어 있으며 죽음의 문제를 견고한 정신으로 형태화하고 있다. 사별 아내를 그리는 진한 사랑이 극한까지 천착되고 있다.
가족 해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들 말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성인 남녀가 혼인을 하지않고 사는 비혼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KOSIS 국가통계지표에 의하면 2022년 절혼건수(絶婚件數)는 93,232건에 달한다고 한다. 같은 연도 결혼은 190,690쌍이 했는데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부부가 이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결혼 세태 속에서 신덕현 김경희 부부의 사별과 그리움은 부부애의 모본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신덕현은 젊은 시절, 초대 문화예술진흥원장, 이천 설봉신문사 대표를 역임하면서 지역문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 자신 창작시를 쓴 이천 지역문단의 핵심 멤버였다. 부인 김경희 씨는 젊은 시절 배구선수로도 활약했던 파워 우먼이었다. 이천지역 자원봉사 단체를 이끌며 사회 사업에 정진하였다. 내외 모두 1955년 생. 부인 김경희 씨가 타계한 것이 2019년 10월 26일, 부군 신덕현은 2022년 5월 6일 부인이 떠난 길을 따라 적멸에 들었다. 부인 떠난 지 2년 6개월만이었다.
신덕현은 사별한 아내와의 허적(虛寂) 속에 구체적 사물들을 불러낸다. 그가 불러내는 사물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인데, 아내의 일상에 지근거리에 놓여있던 것들이다. 이승의 남편은 자신이 홀로 남아있는 그리움의 공간 속으로 ‘아내의 사물들’을 호명해낸다. 신덕현이 세상에 남긴 60편 시를 따라 읽으며 사랑과 열정으로 점철된 부부애의 맥락을 찾아 보기로 한다.
새벽 길 나선 아내가
아무렇게 벗어 놓은 양말 두 짝
얼마나 허기진 길 밟았으면 저리 시릴까
봄볓이 아는지 그 발에 잦아들고
양말은 힘겨운 삶을 부려 놓는다.
-「아내의 양말」
떨어진 단추를 달았네
당신 손때가 묻은 반지고리 찾아
바늘에 실을 꿰었네
당신은 멀리 아주 멀리
그 강 너머에 있어
손이 참 예뻐
손끝이 아름다워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며
못건낸 말 때문에
영원히
놓쳐버린 말 때문에
영원히
놓쳐버린 말 때문에
또 동공이 젖었네
-「놓쳐버린 말」
위의 시편들의 「양말 두 짝」과 「단주」 「바늘」 「반짓고리」 등은 신덕현이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의 환기물이 되어있다. 아내가 바쁜 외출 때문에 벗어 놓고 나간 ‘양말 두 짝’은 시 속에 소환되어 오면서 ‘양말 두 짝’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삶과 이승의 거리를 직시하고 있으며, 바쁜 일상에 내몰리며 살았던 아내의 삶을 환기하는 구체적 지시물이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사별한 아내에 대해 최선으로 보듬어주지 못한 회한을 환기시킨다. 양말은 그냥 양말이라는 사물이 아니라 아내 그 자체가 되어있다. 양지녘 햇살 속의 양말을 보며 이렇게 노래한다. “얼마나 허기진 길 밟았으면 저리 시릴까/ 봄볕이 아는지 그 발에 잦아들고/ 양말은 힘겨운 삶을 부려 놓는다” ‘허기진 길을 밟으며 삶의 현실 속을 헤매다녔을 아내를 환기하고 있으며, 봄볕이 먼저 알아서 양말 속의 시린 발을 녹여주고 있다고 인식한다.
’단추‘가 떨어진 것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아내의 손을 빌려 떨어진 단추를 수선한다. 그러나, 아내와의 사별 공간에서 '단추'를 다는 일은 삶과 죽음의 먼 거리의 일이 된다. 이승의 남편은 도리없이 '반짓고리'에서 '바늘과 실'을 찾아낸다. 물론 '단추' '바늘'도 '실'도 '반짓고리'도 아내가 이승에 머물며 ’부부‘의 인연으로 든든히 맺어져 있을 때 아내 일상의 품목들이던 것들이다.
시인은 이승에서 아내의 품목을 이루던 것들을 소환한다. 이 아내 이미저리들은 홀로 남은 남편에게 호명되면서 비상한 빛을 발하게 된다. 그리움의 근웜으로 불리워진 아내의 품목들이 사별 공간의 허적 속에 선연한 빛으로 응집된다. 마치, 초저녘 하늘에 뜬 샛별같이.
신덕현 시집에는 도시화 이전의 고향 이천의 풍물들이 소환된다. 시인이 소환하고 있는 옛 고향 모습은 어떤 인위적 파멸로부터도 온전했던 기억들이다. 파멸의 현실 속에 함몰되어가는 자신을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이겠다.
완행
버스가 차부를 떠나고
신작로 돌멩이가 튀어 오르면
비포장길 울대가 덜컹거렸다
차장 아가씬 연신 오라이 오라이
등 굽은 노인 꾸러미 한 켠에 놓이고
버스는 힘차게 기치미를 넘었다
가도가도 서울 길은 멀어
곤지암 경안 신장 천호동
광나루에 다달은 늦은 걸음
비로서 다리를 폈었다
건널목을 지난 기적소리 흩어지던 곳
음메 음메 와글대던 쇠전거리
새 차부가 꽈리를 틀고
전라도 광주든 울산이나 부산이든
빠른 걸음 떠나는 경기 차부
이천터미널
*. 이천버스 터미널이 경기차부라 불리며 구 세무서 로타리 근처에 있었다. 서울 가는 버스가 완행과 급행과 직행으로 구분되던 때. . 아무 곳에서나 손을 들면 섰던 완행버스가 서울 가는데 너댓 시간 걸리던 시절 신작로에 가로수는 먼지 속에 서 있었다.
-「경기지부, 이천터미널」
아내와의 사별을 긍정할 수 없는 시인은 개발되어 변모가 일신되어버린 지역 풍광을 버리고 과거의 풍광을 세세히 노래한다. 시인은 유년시절부터 그의 생장지인 이천지역의 옛 모습을 되살려내고 있다. “완행/ 버스가 차부를 떠나고/ 신작로 돌멩이가 튀어 오르면/ 비포장길 울대가 덜컹거렸다” 아내와의 별리로 슬픔의 궁극에 놓인 지금은 모든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별리의 불운에 직면하기 전 그가 성장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거느리게 되기 전 '경기지부, 이천터미널'은 그가 이천 밖의 현실과 직면하기 전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출발지이고 도착지였다. 버스가 떠나 비포장 길을 달리기 시작하면 뽀얀 먼자 일던 곳이었고 항상 마음의 안식처였다. 이천을 떠나 광나루까지 지척으로 열려 있지만, 신덕현이 노래하는 그때 거리 감각은 아득하고도 먼 곳이었다.
“가도가도 서울 길은 멀어/ 곤지암 경안 신장 천호동/ 광나루에 다달은 늦은 걸음
비로서 다리를 폈었다
건널목을 지난 기적소리 흩어지던 곳/ 음메 음메 와글대던 쇠전거리”
지금은 1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시인의 유년시절엔 ’곤지암 경안 신장 천호동‘을 굽이굽이 거쳐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뿐더러 이천 시내를 거쳐가는 협궤열차가 달렸고 쇠전거리엔 움메움메 소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었다. 신덕현은 아스팔트가 깔리고 고속도로가 열린,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선 현대도시가 아닌 옛 고을의 안온 속에 안기기를 염원하고 있다.
신덕현은 2022년 5월 6일 부인이 떠난 길을 따라 적멸에 들었다. 부인 떠난지 2년 6개월만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온 나라가 병마에 시달리던 때였다. 아내와의 사별로 겪는 심적 스트레스는 잠재되어있는 미세한 기저질환의 소인도 치명적일 수 있는 것, 병원 진단명은 급성 폐암이었다. 신덕현이 남긴 그리움의 시편들을 몇 편 더 보기로 한다.
내가 너를 보고 웃는 것은
내가 너로인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길모퉁이 오롯한 꽃송이
새로운 떨림도
네가 내 가까이 있는 까닭이다
눈부신 초록
유월이
새악시처럼 옷을 벗어
푸르디 푸른 속살을 보여줬느니
내가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
너 또한 살아 있음을
일러주려니
-「네곁, 가까이에 서서」
머물 곳도 갈 곳도 없는
그녀가 걷고 있다
긴 팔 옷을 껴입고
가을 아침을 가로지른다
여름보다 더 바랜 보따리는
여전히 두 뭉치
씻겨주고픈 얼굴은 잉카인 같고
감아야 할 머리는 틀어 올렸다.
-「적멸」
지극한 망부(亡婦)의 시편이다. “내가 너를 보고 웃는 것은/ 내가 너로하여 살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너의 전 존재, 미세한 흔들림까지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라고 시인은 토로하고 있다. ’나‘를 떠난 ’그‘가 혼자서 떠난 영원한 별리(別離)의 일은 측은지심으로 깊은 상흔이 되어 있다. 머물 곳도 갈 곳도 없는/ 그녀가 걷고 있다// 긴 팔 옷을 껴입고/ 가을 아침을 가로지른다// 여름보다 더 바랜 보따리는/ 여전히 두 뭉치//. 씻겨주고픈 얼굴은 잉카인 같고/ 감아야 할 머리는 틀어 올렸다“.
*. 부기: 50여 년이나 지나서 고향에 터 잡고 돌아온 내게 이천은 낯선 곳이고 타향이나 다름없었다. 신덕현 시인과 부인 김경희 여사는 고향과의 길트기가 필요한 내게 수시로 소중한 안내인이 되어주었다. 내가 원할 때마다 흔연히 도움을 베풀어주었다. 신덕현의 시를 다시 읽으며 이들 내외의 망극한 사랑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이들 내외가 피안에서 다시 만나 따뜻한 양지의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을 믿는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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