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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의 문학산책 <39> 고정관념을 버리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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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3월18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3년02월24일 13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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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갔던 길에 북국사엘 들렀었다. 좋은 절은 언제나 마음을 다사롭게 해준다. 경내에 조그만 점포가 문을 열고 있었다. 불경과 목탁과 염주, 그런 것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한 편 구석에 먼지를 쓴 채 놓인 조그만 쇳덩이, ‘풍경’(風磬)도 있었다. 산사의 대웅전 처마 끝에 걸려 ‘뎅그렁 뎅그렁’ 은은한 쇳소리를 울려주는 것, 산사의 고요함에 깊이를 더하고, 적막함에 운치를 실어주는 그것이 ‘풍경’이다. 그것을 사서 여행 백에 넣었다.

 

‘풍경’은 속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의 쇳조각이 바람에 흔들려 ‘뎅그렁 뎅그렁’ 소리를 내게 되어 있다. ‘요령’이 손으로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풍경’은 바람에 물고기를 맡겨 흔들리는 물고기가 종을 울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바람이 울리는 종소리인 셈이다. 산사에서 은은히 들리는 풍경소리는 항상 심오한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곤 한다. ‘풍경’은 절간의 수도자나 수행자들의 나태함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매달아 둔다고 한다. 즉,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으니 수행자들도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여행길에서 사온 조그만 쇠붙이, ‘풍경’이 내 집의 처마에 달리고, 이따금 ‘뎅그렁 뎅그렁’ 은은한 쇳소리를 들려주게 되면서 산사의 고요와 적막이 내 집에까지 옮겨져 온 것 같았다. 삶의 의미가 한결 투명해지고 귀도 눈도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 같았다.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워서 ‘풍경’ 소리를 헤이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풍경’은 새벽 여명 속에서도, 청명한 가을 햇살 아래서도 이따금 ‘뎅그렁’ 소리를 내서 몸과 마음을 청신하게 해준다.

 

처마 끝에 매달린 것은 조그만 ‘풍경’ 하나이지만, 그것을 처마 끝에 달게 되면서 느끼는 마음의 여유와 멋스러움은 삶의 구석구석 까지 퍼져 갈 수 있다. ‘풍경’은 산사의 처마 밑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을 깨뜰고 맑고 밝은 눈과 귀로 세상을 볼 때 전혀 새롭고 신비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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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3월18일 16시30분
  • 최종수정 2023년02월24일 13시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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