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도 못나간 문재인 정부 재벌정책, 이래도 되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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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문제는 기업 거버넌스와 경제력집중 문제로 대별할 수 있다. 기업 거버넌스 문제는 황제경영(皇帝經營)의 폐해와 계열사 간 내부거래나 계열사 간 인수합병 등을 이용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私益騙取)로 발생한다. 이에 반해, 경제력집중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이 경제 전반의 가용자원 상당부분을 실질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사회의 게이트키퍼(gatekeeper)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재벌중심 제조업체제에서 중간재 부문 경쟁실종이 경제위기의 본질
경제력집중은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경제 권력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의 해소 없이는 다원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民主主義)도 시장경제(市場經濟)도 작동할 수 없다. 또한 이런 경제 권력의 존재가 황제경영이나 사익편취에 대한 정책적 교정(矯正)을 어렵게 만든다. 경제력집중에 대한 우려는 미국에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금권트러스트(Money Trust)의 해체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거쳐, 미국 재벌의 해체로 구체화되었다.
경제력집중의 폐해는 산업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첫째는 거대 기업집단의 도산이 경제위기로 전이되는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둘째로는 경제력집중은 결국 ‘시장의 경쟁’을 말살하게 되어 경제와 사회의 혁신과 역동성을 앗아간다.
사실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제조업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재벌중심의 제조업체제에서 중간재 부문의 경쟁이 실종됨으로 인해 제조업의 고도화가 단절된 것이 그 위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재벌체제 하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 및 단가 후려치기는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심화로 이어지고, 인적자본보다 원가 경쟁력에 기대는 재벌대기업이 조기퇴직을 강요하고, 조기 퇴직자들은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자영업에서 실패 후에 노인 빈곤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와 산업의 역동성 상실은 취약한 재벌의 도산과 경제위기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경제위기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살아남는 재벌 중심으로 경제력집중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사실 1997년 경제위기의 경험이 이런 추론을 뒷받침한다. ‘경제력집중 심화→경제위기 발생→사회양극화와 경제력집중의 더욱 심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한국은 이른바 중남미형 사이클에 빠질 수 있다.
대선공약, ‘황제경영 방지 법적 기반 구축’, ‘투명한 지배구조 체제 구축’
재벌문제에 대한 심각성은 이미 대선(大選)에서 정치 의제화로 분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재벌개혁을 공약했는데, 황제경영 방지를 위한 법적 기반 구축과 재벌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 방지 및 투명한 지배구조 체제 구축을 두 개의 축으로 삼았다.
황제경영 방지를 위한 법적 기반 구축을 위해서, 다중대표소송제·다중장부 열람권 도입 및 대표소송제도 개선, 전자투표·서면투표 도입, 집중투표제 또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의무화,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과 사면권 제한을 약속했다. 또 재벌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 방지 및 투명한 지배구조 체제 구축을 위해서,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자회사·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 강화, 계열공익법인·자사주·우회출자 등을 악용한 지배력 강화 차단, 기존 순환출자 단계적 해소 등을 공약했다. 아울러, 일감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등에 대한 규제 및 처벌 강화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및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스템 도입을 약속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약속한 재벌정책 실행에 취임 초부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집권 2년차에는 입법을 통한 개혁을 주창했고, 금융그룹감독법의 법제화를 2018년 말까지 약속했다. 이에 따라 2018년 7월에 금산(金産)복합그룹에 대한 모범규준을 시범운영했다. 그러나 금융그룹 감독법 법제화는 아직 추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전자투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포함한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도 국회 계류 중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오히려 재벌개혁을 포기한다는 선언과 다름없다는 점이다. 이 개정안은 재벌의 경제력집중 해소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사익편취를 위한 일감몰아주기 근절과도 거리가 멀다. 2018년에 공정위가 스스로 발표한 내부거래, 공익법인, 지주회사 실태확인에서 보고된 문제점들조차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인 개정안이다.
재벌개혁 포기선언과 다름없는 공정거래법 전부개정 안(案)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지주회사 지정제도와 출자단계 개선이 빠져 있고, 자·손자회사 의무지분율 상향과 기존순환출자 규제도 신규 지정 그룹에만 적용하고 있다. 또한 사익편취 대상 상장기업의 범위 확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규제회피 가능성과 대한항공 사례에서 불거진 부당성 요건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날로 늘어나고 있는 해외계열사를 이용한 일감몰아주기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서 빠져있다. 금융보험사 의결권 한도 ‘5% 제한’도 포기하고 있으며,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세습에 악용되는데도 대책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자체도 재벌개혁에 실효성이 높은 방안은 아니었으나, 이 공약마저도 입법의 어려움을 핑계로 사실 상 포기한 상태이다.
그런데 의지만 있다면, 대통령의 권한으로 시작할 수 있는 개혁 방안도 많이 있다. 인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사익편취를 위한 일감몰아주기는 소수주주 다수결 (Majority of Minority) 제도를 거래소 상장규칙에 도입함으로써 실효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철저히 적용함으로써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 또한 보험업법 감독규정의 개정으로 금융통합감독법 입법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해 수요독점 규제를 실행함으로써 단가후려치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도 있다.
현 정부, 2018년 지방선거 이후 오히려 친(親)재벌 정책 추진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지방선거 이후로 오히려 친(親)재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제정을 통해 은산분리(銀産分離)원칙을 허물었고, 차세대 재벌세습에 악용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참여정부 말인 2007년에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사실상 폐지와 지주회사의 출자단계 규제 완화로 인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급증한 바 있다. 참여정부의 역주행을 반복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 재벌정책의 기조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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