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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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지난 달 28일부터 나흘간 우리 헌법재판소 주최로 세계헌법재판회의가 열렸다. 세계헌법재판회의 3차 총회이기는 하나, 이 회의체가 정식 회의체로 출벌함 이후로는 처음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창립대회의 의미를 가진 큰 국제 행사였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어제와 오늘
약 100개국에서 각국의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 63명을 비롯해 300여명의 헌법재판 분야 최고위급 인사들이 모여 헌법재판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특히 뜻 깊은 것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기조발표에서 제안한 '아시아 인권재판소' 설립이 이 회의에서 채택한 선언문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유럽에 만들어진 유럽인권재판소처럼 아시아에 인권재판소가 만들어진다면 오랜 헌법재판의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그 중추적 사명을 부여받을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1988년 9월 창립된 이래 올해 상반기까지 정확히 26년 동안 26,158건의 사건을 접수받아 이 중에서 25,397건을 처리했다. 미제사건은 761건에 불과하다. 일년에 약 천 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한 셈이다. 대체로 열심히 일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이나 공권력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 것만 983건이다. 여기에 헌법불합치결정이나 한정위헌결정 같은 넓은 의미의 위헌결정까지 포함시키면 1,234건에 이른다. 대법원이 위헌법률심판권을 가졌던 1962년부터 1971년까지 약 10년 동안 단 한 건의 위헌결정을 내렸다거나,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 동안 헌법재판을 담당했던 헌법위원회가 ‘0’건의 위헌결정을 내렸다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사법적극주의의 기치 아래 적극적이고 과감한 위헌결정을 통해 군사정권 시절의 악법들을 일소하고 국민의 인권 신장을 위해 애써 왔다는 증거다. 이런 노력 덕분에 헌법재판소는 모 언론사가 실시하고 있는 대국민 신뢰도와 영향력 조사에서 10년 가까이 공공기관 중 1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국제적으로도 다른 나라들이 본받으려 애쓰는 헌법재판의 롤모델이 된 지 오래다. 이미 베트남, 터키, 태국, 몽골 등 여러 나라들이 우리 헌법재판소를 벤치마킹하고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우리의 헌법재판제도가 이들 나라 헌법재판제도의 큰 골격이 되고 있다.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나?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들 중에는 실로 우리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것들도 많다. 헌정사상 최초로 내린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결정에서, 노대통령의 기자 간담회 발언 등이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는 아니라고 하면서 기각결정을 내려 정치적 분쟁을 헌법재판을 통해 진정시켰다.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국론분열로 까지 치달았던 탄핵정국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인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결정도 정치적으로 크게 조명 받은 대사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수도 이전 시도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관습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성문헌법이 있는 나라에서 관습헌법이 사실상 위헌판결의 유일한 근거로 사용된 예가 없었기에 그 후 이 결정은 두고두고 헌법학자들의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에 있다. 국민적 이목이 또 한번 헌법재판소에 집중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나 정당해산심판과 같이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만 담당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민들의 실생활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들이다. 동성동본금혼 헌법불합치결정과 호주제 헌법불합치결정이 그 예들이다. 법률혼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동성동본 커플들에게 법적 부부의 지위를 찾아 준 것도, 시대에 맞지 않게 된 남성 우위의 불합리한 가부장적 호주제에 종말을 고한 것도 다 헌법재판소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들은 부지불식간에 우리 국민들의 실생활에 스며들어 국민들의 삶을 인권친화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온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내일
그러면 헌법재판소는 앞으로의 26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헌법재판에서 소신 있고 적극적인 결정들을 통해 국민 인권 보장의 최후보루이자 사회통합의 기폭제로서의 역할을 보다 더 충실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할 수행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임명권자나 외부의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는 재판관들의 소신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또한 ‘50대 남성 현직 판사’로 대변되는 헌법재판관들의 획일적 배경도 개선되어, 다양한 풀에서 헌법재판관들이 뽑힐 수 있게 되어야 한다. 평생 실정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주어진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에만 몰두했던 판사들은, 그 실정법 자체의 위헌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헌법재판에는 오히려 부적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들이 경주된다면, 또 다른 26년이 흐른 뒤에도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아시아 인권재판소’ 설립의 중추적 역할도 훌륭히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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