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사교육에 백기를 들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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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 정책을 발표했다. 역시 주된 목표는 사교육비 절감에 있는 것 같다. 지난 2월 교육부의 대통령 업무 보고 때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사교육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어 사교육 부담을 대폭 경감해야 한다"는 말이나, 황유여 교육부장관이 정책을 발표하며 했던 “과도한 사교육 시장 ……” 등의 말을 보면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의 1차적 목표가 사육비 절감에 있음이 분명하다.
성공할까? 제발 성공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절대평가는 상대평가에 비해 훨씬 더 교육적이고 인간적인 평가이다. 더 교육적인 평가제도를 통해 사교육비 절감까지 이룰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꿩 먹고 알 먹는 일이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사교육비 절감을 이룰 수 있다니, 이전의 교육부장관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가 성공한다면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우리나라 역대 교육부장관 중 최고의 장관으로 칭송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교육은 물론 황우여 장관에게도 경사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얻는 것은 적지만 잃는 것은 많을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하려면 논거를 충분히 제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미 언론에 적지 않은 논거들이 언급된 상황에서 이 글을 그러한 논거들로 채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여기서는 좀 다른 차원의 얘기를 해보기로 하자.
우리 현실에서 사교육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사교육비 절감을 우리 교육의 최고 목표인 듯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어떻게든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정부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단기간에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마땅한 대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가 아무런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으면 언론과 국민이 정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정책들이 대부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뿐더러 종종 심각한 비교육적 결과를 낳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정부가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제대로 된 교육개혁에 투여해야 할 국가의 힘과 자원과 관심을 점점 더 소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정부가 사교육의 수렁에 빠져 바보처럼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사교육 그 자체보다도 더 큰 문제로만 보인다. 그래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사교육에 백기를 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가 사교육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린 모습은 노무현 정부에서 만든 국가 미래전략 연구서인 ‘비전 2030 - 함께 가는 희망한국’에 잘 나타나 있다. 2030년을 내다보고 만들었다는 ‘비전 2030’이 제시한 가장 중요한 교육정책(비전)은 무엇이었을까? ‘방과후 학교’의 활성화였다. ‘비전 2030’에서 방과후 학교가 언급된 횟수는 무려 11번인데 다른 것에 비해 그 횟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방과후 학교라는 게 뭔가? 중•고등학교의 경우엔 사실상 보충수업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 교육의 희망을 보충수업의 확대에서 찾았단 얘기다.
그런데 보충수업의 활성화가 우리 교육의 희망이라면 도대체 우리가 교육에 대해 걱정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전교생을 강제로 보충수업에 내모는 중•고등학교가 수없이 많다. 지방으로 갈수록 더 많지만 서울의 경우에도 아직 적잖이 존재한다. 보충수업의 확대가 우리교육의 희망라면 우리에게 그 희망은 벌써부터 도래해 있었다.
왜 노무현 정부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내용을 우리교육의 최고 목표로 제시했는가?
그들의 머릿속이 사교육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사교육, 사교육, 죽을 놈의 사교육…, 어떻게 없애지?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결국 도달한 것이 방과후 보충수업의 활성화인 것이다. 이렇듯 교육에 관한한 노무현 정부의 비전은 빈약하다 못해 천박했다. 사교육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린 결과다.
이명박 정부는 어떠했는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이명박 정부가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방과 후의 보충수업이었다. 방과후 보충수업이 교육부의 중요한 정책이 되다보니 학교에서는 종종 비교육적 방법까지 동원됐다. 내신성적 향상을 목표로 한 내신대비반이 등장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학교시험의 출제자가 방과후 ‘내신대비’ 보충수업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교사는 보충수업을 아무리 형편없이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학교성적을 올려줄 수 있다. 그런데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교사가 방과후에 따로 학생을 모아 내신성적을 올려주는 수업을 하는 것은 과연 사교육보다 더 바람직한 교육일까?
급기야는 학생부에 학생들의 보충수업 사실을 기록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입학사정관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을 아직 갖고 있다.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부의 보충수업 기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분명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 순간 학생들은 아무리 싫어도 보충수업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보충수업을 받는 순간 학생부의 그 기록은 대학입시에서 아무런 변별력도 갖지 못하는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결국 남는 것은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억지로라도 보충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기 위해서 교사들이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을 없애기 위해 사교육보다 더 흉측한 괴물을 학교에 끌어들이려 했다. 그래서 사교육비 절감에 성공했는가? 알다시피 결과는 매우 미미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이명박 정부 역시 사교육의 수렁에 빠져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내세웠던 사교육비 절감 공약을 방과후 보충수업의 확대를 통해 실현하겠다는 헛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보충수업 외에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사교육 대책은 여럿이다. 물론 대부분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현명하게도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박근혜 정부가 ‘수능 영어 절대평가’라는 사교육비 절감 대책을 내놓았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영역별로 등급만 제공하는) 수능등급제를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취지는 좋았지만 1년 만에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AB형 수준별 수능시험도 취지는 좋았지만 실패가 확정되었다. 수능영어시험을 대체하기 위해 추진했던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NEAT)은 아예 실행도 못 해보고 막을 내렸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수능 영어 절대평가’는 어떨까?
사교육이 큰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국가의 힘과 자원을 헛되이 탕진할 바에는 차라리 사교육에 백기를 드는 것이 나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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