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 상장이 남긴 숙제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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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4일 삼성SDS가 상장한다. 솔직히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힌 느낌이다.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 사건은, 1996년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 사건을 언급할 때는 역시 삼성에버랜드라는 이름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과 함께, 삼성그룹의 어두운 과거를 상징하고 있다.
특히 삼성SDS 건은 경제개혁연대가 1999년과 2001년에 두 차례의 고소를 했는데, 각각 ‘지방검찰청 → 고등검찰청 → 대검찰청 → 헌법재판소’을 거치는 총 8번의 형사적 문제제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났으니, 나 개인적으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이 중대한 범죄혐의 사건에서 단 한 차례의 피의자 소환조사도 없이 서면조사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검찰이야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불신을 낳은 원흉이라 할 수 있다.
검찰의 벽에 막혀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가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에 떠밀려 삼성특검이 수사를 재개하였고 결국 이건희 회장 등을 배임 혐의로 기소하였으나, 재판 과정도 파란만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삼성SDS 건의 결과만을 본다면, ‘지방법원의 각하 판결(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 고등법원의 무죄 판결(회사의 손해가 아니라는 이유) →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유죄 취지) → 고등법원의 유죄확정 판결’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이다. 결국 BW 발행 후 딱 10년이 지난 2009년에서야 사법절차가 마무리되었는데, 발행 당시 등기이사였던 이건희 회장⋅이학수 부회장⋅김인주 사장 등은 징역형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모두 집행유예로 즉각 풀려났고, 특히 이건희 회장은 3개월만에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경영에 복귀했으니, 이 역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또 다시 시간은 흘러 BW 발행 15년만에 드디어 삼성SDS가 상장을 함으로써 그 BW를 인수한 이재용 부회장 남매와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은 초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다. 1999년 당시 장외에서 5만원 정도의 가격에 거래되던 주식을 단돈 7,150원에 인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헐값발행의 핵심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주식의 상장 공모가격이 19만원으로 결정되었으니, 인수가 대비 25배가 넘는 상장차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마이다스의 손’이 따로 없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모가 19만원도 너무 낮게 책정된 거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 장외거래가격은 30만원대를 호가하고 있고, 상당수 증권사들이 상장 이후의 주가를 30~50만원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주당 40만원으로 잡으면 이재용 부회장 3남매 합계 6조원, 이학수 부회장 1조원, 김인주 사장 5천억원 등 천문학적 액수의 한 재산을 챙기게 된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 남매는 이 돈으로 이건희 회장 사후의 상속세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삼성SDS 상장 이후의 주가는 아무도 모른다. 원래 장외시장은 거래물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장외가격을 적정주가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현재 30만원대의 장외가격은 삼성그룹의 승계구도와 관련한 기대, 즉 이재용 부회장 남매의 3세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장 이후에도 주가를 계속 띄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반영된 것인 만큼, 삼성SDS의 본질가치에 비해 상당부분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가 19만원은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라는데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무엇보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던 공모 열기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 10월 29~30일 삼성SDS의 공모가 산정을 위해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예측 결과를 보면, 1,075개 기관투자자들이 몰려 450조원 가량을 청약하였고(청약경쟁률 651대 1), 참여 기관투자자의 99.9%가 희망공모가(15만~19만원)의 상한인 19만원 이상을 써내거나 회사가 정하는 공모가격을 무조건 수용하면서 공모물량 전량을 받아가겠다고 신청했다. 11월 5~6일 일반투자자를 상대로 진행된 공모주 청약 역시 경쟁률 134대 1의 뜨거운 열기를 보였고, 1억원의 청약증거금을 납입해도 겨우 7주를 배정받을 뿐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공모가를 더 높였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더 높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가? 나로서는 집히는 바가 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말은 못하겠다. 독자들께서도 짐작해보시기 바란다.
한편, 기존주주 중에서는 삼성전기가 유일하게 구주매출의 형태로 공모물량 전량을 공급하는데, 삼성전기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 이번에 구주매출을 하지 않으면 향후 6개월간 매각하지 못하는 보호예수 의무가 걸려 있고, 또한 설비투자 등을 위한 긴급한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니냐는 논란이 분분하다. 더구나 현행 감독규정에 따르면, 애초 공모예정 주식수의 80~120% 범위에서 공모물량을 변경하는 것은 정정신고서 제출만으로도 가능하므로, 상장 절차에 차질을 주지 않으면서 구주매출 물량의 일부를 철회하여 매각차익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그래서 삼성전기의 일부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의 배임 혐의를 주장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삼성SDS 건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삼성SDS의 기존주주 중에서 이재용 부회장 남매⋅이학수 부회장⋅김인주 사장 등은 그 주식 취득과 관련된 범죄행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으면서도 버젓이 천문학적 액수의 수익을 챙기는 반면, 삼성전기는 합법적 주주이면서도 BW 발행 때도 손해를 보고 이번 상장 때도 손해를 자청하니, 세상사 참으로 울퉁불퉁하다.
삼성SDS 건은 법률적으로는 이미 끝난 사건이다. 그 결과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더 이상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과거 재벌총수의 형사사건 때처럼, 억지춘향 격으로 사회공헌 운운하는 압력을 가하기도 마뜩찮다. 돈으로 면죄부를 사게 하는 것은 퇴보다. 그러나 이런 불합리한 사건의 재발을 막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나아가 기업 관련 사안을 형사법원으로 끌고 가 배임죄 여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입은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민사 문제로 다룰 수 있도록 우리의 법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우리라고 못할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상법(회사법) 차원의 두 가지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이중(다중)대표소송제가 조속히 도입되어야 한다. 재벌 총수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제재 수단은 주주가 회사를 대신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이다. 문제는, 총수일가의 불법행위의 대부분이 삼성SDS와 같은 비상장회사에서 벌어지는데, 이들 비상장회사에는 소송을 청구할 외부주주가 없다는 데 있다. 그 해결 수단이 바로 이중(다중)대표소송제도다. 즉, 상장 모회사의 주주가 비상장 자(손자)회사의 이사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작년에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에 이미 관련 조항이 들어가 있다.
둘째, 우리나라의 손해배상제도는 행위 당시의 손해만을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사익을 추구하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즉 충실의무(duty of loyalty) 위반 사건에 대해서는 행위 당시의 손해액뿐만 아니라 그 이후 발생한 모든 부당이득을 반환하도록 하는 것이 손해배상의 일반적 원리로 되어 있다. 삼성SDS 사건을 비롯한 이른바 재벌 3세의 불법적 상속 사건들이 모두 충실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회사는 사유물이 아니다. 회사를 사유화하면서 얻은 부당이득은 모두 반환되어야 한다.
이상의 두 가지 민사적 제도가 갖추어져 있었다면, 즉 비상장회사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도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부당이득은 모두 반환하도록 한다면, 삼성에버랜드의 CB 및 삼성SDS의 BW 헐값발행 사건을 놓고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형사법원에서 다툴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애초에 헐값발행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숙제다. 특히 정부와 국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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