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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팔로우어십(good followership)이 절실한 때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1월28일 22시0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01분

작성자

  • 이달곤
  • 前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前행정안전부 장관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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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굳 팔로우어십(good followership)이 절실한 때다.
우리사회는 문제를 위로부터 풀려는 습성이 있다. 이 집단인식은 집권화된 권력과 금력구조에다 수직적 유교문화에서 긴 세월 살아온 경험 때문에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아직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청와대의 내부관리와 기능에 대해서도 꼭 같은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기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만능은 아니다. 청와대의 불통과 난조를 리더십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제도를 정교하게 교정하고, 창조적인 관리방식을 도입하는 보완의 지혜를 짜내는 것이 필요한 때다.
 
십상시 비유는 심하다. 
  불통과 문고리 권력의 역할을 중국의 환관에 빗대어서 언급하는 것은 과장이 되어도 너무 과장된 것이다. 중국역사에서 환관시대는 3번에 걸쳐서 극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세기 동한(東漢), 9세기 당(唐), 그리고 15-17세기  명(明) 대가 바로 환관의 발호로 황제와 신하가 격리되고, 백성이 수탈당한 시대였다. 명왕조 14대 황제 주익균의 경우, 26년간이나 신하를 맞대고 조례를 하지 않았다는데,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고사이다. 물론 아직도 일부 종교에서는 맨 위에 모시는 분은 상징이고, 실제 모든 일은 몇 사람이 전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참여적 거번넌스가 중심 사조가 된 한국에서 십상시(十常侍) 운운하는 것은 사디즘(sadism)을  넘어선 허무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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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팔로워 없이는 수행되지 못해.
   리더와 팔로워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른 하나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팔로워십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리더십도 소용없다. 청와대의 문제는 이 고리에서 좀 풀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적되고 있는 일방적 수직적 리더십을 교정해 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용이하지 않다면, 팔로워의 역할을 변화시킴으로써, 보다 소통이 원활하고 열린 정책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팔로워는 단순한 부하(subordinates)와는 다른 것이다. 청와대에는 단순 명령하달용 부하는 필요 없다. 청와대는 내각과 대통령, 국민과 대통령의 중간고리이기 때문에 쌍방향 의견조정이 핵심이고 나아가 대통령의 인격을 확장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다. 지시하는 데로 따르는 단순한 부하는 현대사회의 어떤 조직에서도 무용지물이다. 청와대의 인사부서에서는 부하근성의 직원을 없애야 한다. 실제, 직원 수가 좀 많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청와대에서 좋은 팔로워는 어떤 것일까? 좋은 팔로워십(good followership)은, 첫째, 개인적 위험을 안고서라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것, 둘째, 리더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 셋째, 사회변화를 읽어서 타이밍을 맞추어 대통령이 효과적이고 윤리적으로 국정을 주도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권력 높은 곳엔 집단사고(groupthink)가 항상 일렁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팔로워를 아첨과 아부의 물결을 거슬러 가는 인물이다.
 
비서실장과 총리가 양대 핵심 팔로워
 청와대는 민감한 공간이다. 기밀주의 분위기가 항상 공개적인 토론을 어렵게 하고, 대통령의 권력 고도가 높고 높기 때문에 몇 사람 이외는 의사개진이 어려운 것이 실정이다. 거기에 의전과 경호가 딸리면 물리적 접근도 어려워진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두 인물이 우리 제도상 비서실장과 총리이다.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비서실장의 팔로워십이고 동시에 다른 비서관에 대한 그의 리더십이다. 권력에 짓눌린 충직한 집행자형 인사로는 어렵다. 청와대 안뿐만 아니고 내각의 총리와 각부 장관과 기관장, 언론과 이해관계 집단 그리고 국민대중의 변하는 기미(機微)를 무뚝뚝하게 리더에게 전달하는 심지 강한 인물이 좋다. 국민과 언론의 동향은 물론, 비서실과 내각에 존재하는 이견에 대해서도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반대 의견을 주창하기만 하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은 실장으로서 부족하다. 권력자 앞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워서 다른 비서와 달리 돋보이려는 편향성을 가진 자들이 많기 마련이다. 이때의 실장의 취합 리더십은 적기에 번뜩  빛나야 하고, 대통령에게 자신의 총합 판단을 전달하는 팔로워십은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실장은 비서실 통제를 아이젠하워 대통령처럼 군대식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케네디 대통령처럼 자유로운 수평적 학당형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현 대통령께 유효한 보좌라면, 비서실의 의견 수렴은 학당형으로,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군대 조직형으로 하는 지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각의 장차관들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길목으로는 연결되어 있으나, 그들끼리는 인간적으로 단절되어 있고 각자도생적(各者圖生的) 생리가 지배한다. 게다가 정부의 부처란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게 설계되고 운영된다. 때문에 임명 이전에 잘 알지 못하는 장차관들이 임명 이후 일하면서 서로 긴밀하게 의논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이 문제는 푸는 결절이 총리직이다. 총리는 누구에게도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내각 구성원들과 자주 만나고, 언론에 빈번하게 나서고, 국민들에게 실상대로 보고하고, 그리고 그 상세한 사항을 대통령에게 일주일에 두 번만 보고한다면 그는 좋은 팔로워이고 리더가 될 것이다. 현대 자유자본주의 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부총리직제를 둔 것도 대통령이 이러한 기능을 강화해달라는 뜻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자기살림 차리는 총리를 좋아할 리 없다. 총리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밖으로 확장시키는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비서실과 내각이라는 정부의 상층부가 대통령과 혼연일체가 되어서 공유된 리더십(shared leadership)을 창출할 수 있다. 리더십은 공유하면 강해진다. 강한 리더십만이 경제를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좋은 리더십이 물론 핵심이지만 좋은 팔로워십이 필수적이다.  
 총리도 현 시국 아래서는 공유된 리더십의 구성요소로서 기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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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제도 개선은 팔로워의 몫
대통령에게 미시관리(micro public management)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보통 팔로워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미시적이고 기술적인 것까지 청와대로 가지고 온다. 특히 관료주의에 절은 사람들이 심하다. 대통령은 바쁘고 어렵게 지낸다. 거기에다 익숙하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나 미시적인 방법론까지 들고 오면 그는 정말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상하좌우 360도 리더십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팔로워는 리더가 어려울 때,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항상 아래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만기친람, 꼬치꼬치 기술적인 문제를 따진다면, “저가 이미 이렇게 해결하였습니다.”라고 보고할 수 있는 속도가 필요한 것이다. 흔히 위에서 만기친람 하는 것은 아래를 못 믿어서 하는 일이다. 리더가 고민하기 이전에 세세한 문제를 이미 고려하고 처리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좋은 팔로워가 된다. 밑에서 위를 리드하는 팔로워의 리더십이 분명 절실한 것이다. 자기책임의 범위를 분명히 하고, 방향에 관련된 꺼리만 청와대에 가지고 와야 한다. 그리고는 그 이하는 비서실과 장차관이 책임져야 한다. 책임정치도 결국은 공유된 책임인 것이다. 정권은 결국 가담한 정무직이 같이 책임지는 것이다. 나중에 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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