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선거구구역표 헌법불합치결정과 선거구제 개혁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우리 헌법이 중요한 기본원리 중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는 대의제원리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국가의사나 국가정책을 결정하지 않고 대표를 뽑아 그 대표로 하여금 대신 국가의사나 국가정책을 의논해서 결정하게 하는 원리’로 정의된다. 대표를 통해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대표되는 대의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대표를 뽑는 ‘선거’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 중에 이 대의제원리가 우리 정치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몇 달 전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방패막이로 악용하는 국회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과연 자신의 의사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통해 제대로 대변되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급기야 일부 국민들의 입에서는 ‘국회 해산’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난 10월 30일에 헌법재판소는 최대선거구와 최소선거구의 인구편차가 3대 1에 이르는 공직선거법상의 선거구구역표에 대해 사실상의 위헌결정인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내년 12월 31일까지 이 선거구구역표 전체를 2대 1의 편차 이내로 조정하는 법 개정에 나설 것을 국회에 요구했다. 헌재에 의해 1995년에 4대 1, 2001년 3대 1에 이어 이제 2대 1이 합헌적인 선거구 획정의 최신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 결정에서 헌재가 위헌의 근거로 든 것은 평등선거원칙과 대의제원리였다. 헌법에도 규정된 ‘평등선거’란 재력 등 다른 능력에 상관없이 1인이 1표만을 행사해야 한다는 1인1표제와 함께, 그 1표의 가치가 같아야 한다는 1표1가제를 내용으로 포함한다. 인구수가 극히 불균형적인 선거구 분할은 이러한 1표1가제에 반해서 평등선거의 원칙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지역대표성을 비롯한 다른 어떤 현실적 고려 대상보다 ‘투표가치의 평등’을 우선시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헌재는 선거구간 인구편차로 인해, 인구가 적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 획득한 투표수보다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낙선’된 후보자가 획득한 투표수가 많은 경우가 발생한다면 이는 헌법상의 대의제원리에 반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의 소선거구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것이 비례대표제이다. 그런데 비례대표제 중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금의 전국구 비례대표제와 달리, 전국 단위가 아니라 ‘권역’으로 전국을 나누어서 그 ‘권역’의 득표율로 비례대표를 뽑는 방식을 말한다. 소선거구제의 갑작스런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은 기존 정치인들의 큰 반발로 현실적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1표1가제와 대의제원리 실현 때문에 지역대표성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았다면, 농어촌 권역에서 다수의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원수를 대폭 확충하고, 특히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약화된 지역대표성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 실현가능성도 있고 대의제원리의 회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대안이라 믿는다.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선거구구역표 헌법불합치결정의 의미
이제 240개가 넘는 소선거구의 인구편차를 내년 12월 31일까지 2대 1로 조정하는 것은 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되었지만, 차제에 대의제원리를 제대로 살리면서 선거에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선거구제로의 개혁도 충분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구 획정이야말로 ‘재선’이 지상목표인 국회의원들에게는 정치적 생명과 관련한 생사여탈권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우리 헌법 제41조 제3항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선거구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을 ‘법률’로 국회의원들이 하게 한 것은 어떻게 보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 될 수 있다. 선거구와 관련된 법을 만듦에 있어 국회의원들이 ‘국민’보다는 재선을 위한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의 개편에 국민들의 강한 압박이 국회에 가해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선거제도의 개편과 관련해 언론이나 정치권을 통해,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석패율제 도입 등 백가쟁명식 해법들이 난무하고 있다. 기존의 소선거구제란 하나의 소선거구에서 1명의 상대적 다수득표자를 대표로 뽑는 선출방식이다. 이런 소선거구제는 양대 정당제의 확립을 통해 안정된 정치상황을 확보할 수 있다거나 선거인과 의원간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당선인 이외의 자가 획득한 그 많은 표들이 다 사표(死票)가 된다는 치명적 약점을 가진다. 이 지점에서 선거를 통한 국민의 의사가 크게 왜곡될 수 있어 대의제원리가 위협받는다. 그리고 이번 헌재 결정에서 보듯이 소선거구제는 선거구 획정에 있어 다수당에 의한 게리멘더링의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으며,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인물보다는 지역 내에서만 명망가인 지방적 소인물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선거구가 좁다 보니 금품 살포나 매수 등 선거부패의 가능성도 크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에도 정책 입안에 있어 그 선거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지방적 편견을 가지기 쉽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46조 제2항에 배치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 선거구에서 2내지 4인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의 개혁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중선거구 하에서 지금의 지방의회 의원선거처럼 두 거대정당에서 한 지역구에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게 한다면 오히려 소선거구제보다 더 소수정당의 진출을 어렵게 하고 양대 정당제를 고착화시키는 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정당에서 한 명의 후보만 추천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선거판의 변화를 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제안한다
국민들도 선거구와 선거제도 개편의 논의과정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국민의 대표들 중 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선거구 개편을 주장하는지, 누가 진정 대의제 회복과 국민 이익을 위한 선거구 개편을 주장하는지를 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국회는 명심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법 개정 시한이 1년 2개월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년 12월 31일을 넘기면 현행 공직선거법상의 선거구구역표는 효력을 상실한다. 선거구 없는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