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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與)와 야(野)가 협력 가능한 교육과정 구조개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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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4월10일 20시2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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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與)와 야(野)가 협력 가능한 교육과정 구조개혁

 

  지난 블로그 글 <꿩 먹고 알 먹는 교육부문 구조개혁>에서 주장한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교육과정의 구조개혁이 그것이다. 물론 그 어려운 일을 임기가 채 3년도 남지 않은 박근혜정부가 시행하는 것은 너무 벅차다. 하지만 다음 정부를 위해 미리 여건을 마련해 두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다.

 

입시 때문에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물론 입시는 중요한 걸림돌이다. 하지만 그냥 중요한 걸림돌의 하나일 뿐이다. 입시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선진국에도 어떤 형태로든 입시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다양하고 풍부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려면 입시 제도의 개선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수능시험 등의 입시가 지금처럼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적지 않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지난 3월 고등학생들이 수능모의고사를 보았다. 상당수 학생들이 시험시간 내내 엎드려 잠을 잤다. 고 3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3학년 학생들이 더 많이 잤을 것이다. 수학 시간에 잠자는 학생이 특히 많았는데, 내가 감독한 3학년 학급의 경우 시험시간 절반이 지났을 때 쯤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은 고작 8명에 불과했다. 다른 과목은 수학보다 사정이 한결 낫 긴 하다. 하지만 그 상황이 현저히 다른 것은 아니다.  

 

시험시간에만 이럴까? 

 

우리나라 학교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수업이 망가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는 학생들이 급증하기 시작하고, 중학생이 되면 아예 수업에 관심을 끊어버리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향은 고등학교에서도 계속되어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3학년이 되면 학업에서 완전히 손을 놓은 학생들의 수가 최고조에 달한다. 고 3학년 학생들이 다른 학년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입시공부를 할 거란 생각은 상당부분 환상이다. 상당수 학생은 분명 그러하지만 다른 상당수 학생들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지난 3월 수능모의고사 때 내가 시험 감독을 했던 그 학급의 경우 70% 정도의 학생들에게 수학 시험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험이다. 그런데 시험 내내 엎드려 잔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어떻게 행동할까? 시험 때처럼 엎드려 조용히 잠을 잘까? 잠만 자면 차라리 다행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엎드려 자는 것에 대해 어떻게 다행이란 말을 하느냐고 욕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그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전부 떠들고 장난을 친다면 어찌 되겠는가? 시험 때 잠을 자는 학생들은 어쩌면 감독교사와 문제를 푸는 학생들에게 예의를 차려 준 것이다. 어쨌든 조용히 쥐죽은 듯 있어 주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예의를 모든 수업시간에 기대할 수는 없다. 자거나 떠들거나 결국 일반계 고등학교 수업은 갈수록 망가지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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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여 중학교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고등학교에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수업이 망가지는 현상이야말로 우리교육의 핵심문제이다. 그것은 사교육문제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그 밖의 다른 문제를 말하는 것은 사치스런 일이다. 

 

입시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물론 그런 면이 없잖아 있겠지만 이것은 입시의 관점에서도 뭔가 대단히 잘못된 현상이다. 공교육의 무능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입시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필요한 때다. 

 

사실 입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학교에 다양한 교육과정을 요구한다.

 

4년제 대학의 입시에서도 모든 학생이 수능시험 성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수능성적과 무관하게 진학이 가능한 정원이 2016학년 입시에서는 10만 명이 넘어선다. 또 모든 대학이 수능 4개 영역 전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상당수 대학은 일부 영역만을 반영한다. 

 

입시정원이 22만 명에 이르는 전문대학은 수능시험과 무관하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비율이 4년제 대학보다 훨씬 더 높다. 학교 내신 성적의 반영 양상도 상당히 다양하다. 수시모집에서 3학년 내신 성적을 전혀 반영하지 대학이 절반 정도나 된다. 절반에 가까운 학교가 2학년 또는 1~2학년 내신 성적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시모집에서 수능시험 4개 영역 중 2개 영역 이하를 반영하는 전문대학이 절반을 넘는다. 4개 영역 전부를 반영하는 전문대학은 소수다. 

  

교육과정의 다양성은 입시의 다양성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 입시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게 아니라 입시 만큼만이라도 다양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교육과정은 행인을 잡아다가 침대에 뉘어놓고는 키가 침대 길이보다 길면 잘라서 죽이고 짧으면 늘려서 죽였다고 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악당 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 부족해도 죽고, 남아도 죽고,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

 

결국 침대의 길이에 학생의 키를 맞추는 게 아니라 학생의 키에 침대의 길이를 맞추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도입만이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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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당시 주요 인물들의 교육공약에는, 사용하는 용어가 저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획일적인 교육과정의 개혁에 대한 내용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교육과정 구조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의외로 아주 넓은 것이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으로 바꾸겠습니다.” “학교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효과적으로 계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점진적으로 고교학점제를 정착시켜 학생들의 다양한 수월성이 키워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특성, 학력편차를 고려하여 과목을 선택 이수할 수 있어, 한 학교 공간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학습 선택권과 수월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학생 스스로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과목을 집중 선택하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를 학점제 하의 자율 진로탐색형 학교로 전환하겠습니다.” (안철수 의원) 

 

문재인과 안철수의 공약에는 모두 ‘학점제’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는 공약의 구체적 정책 형태이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려면 학생 개개인에게 선택권을 대폭 부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학점제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합의가 되어 있다면 대선 당시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가을학기제’보다는 이 정책을 시행하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임기 2년을 넘긴 시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이것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다음 정부를 위해 여건을 마련해주는 일 정도는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 정도도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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