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서른네 번 째 이야기 중생들이 사는 세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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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되풀이되는가?
‘有情’, 또는 ‘衆生’, 살아있는 것들. 흙 속 벌레에서 하늘을 나는 새,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까지. 이 모든 존재들을 함께 일컫는 단어. 그 개념에서 온갖 복잡한 문제들이 파생돼 나온다. ‘삶’, 도대체 산다는 게 뭐냐? 어찌 살아야 잘 사는 거냐?
사람들은 스스로만이 이렇게 질문한다고 믿는다. 인간이 아닌 중생들은 그저 ‘살기만 한다’고 믿는다. 어떤 철학자는 인간의 이런 특성이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고도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그 불행을 선택하겠다고 선언했다. ‘행복한 돼지가 되기보단.’ 불교는 이 문제에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붓다의 해법 키워드는 ‘지혜’이다. 왜 중생은 六度를 윤회하는가?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12인연설의 시작은 無明, 즉 지혜 없음이다. 중생은 지혜의 정도에 따라 삼계를 옮겨 다니며 생사를 거듭한다. 지혜란 마음의 깨어남의 척도이다. 삶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지혜의 일이다.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것 자체를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중생 생사의 터전이 바로 삼계이다.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이다. ‘윤회’는 세상을 뜻하기도 하고 중생의 마음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또는 지금 우리가 갖는 마음의 상태가 욕계이다. 욕계는 여섯 곳으로 이뤄져있어서 6도(六度)라고 한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이다.
해탈의 원인이 되는 공덕이 없고 행복이 없는 곳, 또는 그런 마음 상태가 지옥이다. 인간보다 지혜 없는 마음 상태를 갖고, 네 발로 걷는 중생이 축생이다. 분별력은 있지만 마음에 욕심과 분노, 어리석음이 넘쳐흐르는 중생이 인간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는 통찰이다. 번뇌를 요약하면 108이요, 구체적으로는 8만4천이다. 천상에 사는 존재, 天神은 ‘빛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보다 고귀한 마음 상태를 갖지만 역시 윤회하는 존재이다. 천신의 일부를 제외한 중생들은 모두 욕계의 중생들이다. 식욕, 수면욕, 음욕이 있기 때문에 욕계라고 한다. (천신들 가운데도 욕계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있다. 천신들의 세계는 28곳인데 그 가운데 6곳이 욕계에 속한다.)
불교의 이런 복잡한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라는 최초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붓다의 가르침은 당연히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어떻게? 지혜를 얻고, 그 힘을 기르고 키워서. 지혜의 정도에 따라 그에 걸맞은 세상을 사는 존재가 중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욕계 중생을 넘어서는 존재, 색계와 무색계를 사는 중생들의 마음 상태는 어떨까?
색계, 사마디의 세계
명칭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색계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다. 상식에서 물질은 흔히 욕망과 연관된다. 그러나 색계는 물질에 대한 욕망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다. 오히려 욕계의 욕망을 떠난 세상이다. 색계의 중생들은 깊은 명상을 통해 얻어지는 사마디(선정)의 마음상태를 갖는다.
하지만 욕계의 중생들도 사마디의 마음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인도에서 파생된 종교들 대부분이 사마디의 경지를 설파하고 있다. 사마디는 마음을 고도로 집중하면 얻어지는 경지이다. 테라바다 부디즘의 사마디에 대한 이론은 매우 체계적이고 섬세하다.
사마디는 사마타(집중) 명상의 목적이다. 테라바다의 가장 중요한 논서인 비슈디마가(청정도론)은 8정도의 교리를 계정혜 3학으로 나누어 논파하는데, 定學 분야에 사마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다. 붓다고사는 “대상을 명상하기 때문에, 혹은 반대되는 것을 태우기 때문에 선정(사마디)이라고 한다”며 선정을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명상은 집중을, 반대되는 것이란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의 다섯 가지 장애(五蓋 nivarana)를 뜻한다. 이런 선정의 경지들은 사마타 수행으로 얻어진다. 사마타 수행은 대상을 한 가지 정해서 마음을 그 대상에 고착시킨다.(心一境, cittassa ekaggata) 그렇게 모든 정신적인 혼란을 제거한다. 장애들은 억압되고 마음이 그 대상에 완전히 몰입되면 선정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선정의 세계, 사마디의 세계가 바로 색계이다. 물질과는 멀어진 이 세계를 왜 ‘색계’라고 부르는가? 사마타 명상에서 대상을 보통 물질적인 것에서 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흙으로 동그란 형상(‘까시나’라고 불린다)을 만들어 마음을 그것에 집중하면 눈을 감아도, 길을 걸어도 동그란 형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사마타 명상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이렇게 형상을 보통 물질에서 취하기 때문에 ‘색계’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런 만큼 색계를 ‘물질의 세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중생의 수명에 대하여
천신은 우리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지만 해탈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중생일 뿐이다. 중생은 생사를 거듭하는 존재이다. 그들도 수명이 다하면 자신들의 업에 걸맞은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모든 중생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두려워한다. 오래 오래 사는 것은 중생들이 추구하는 복 가운데 하나이다. 천신은 인간보다 수승한 존재이니 복이 많고, 당연히 수명도 길다. 천신들은 사는 천상에 따라 수명이 정해져 있다. 천신들의 수명에 대한 아비담마 상하(아비담마 길라잡이)의 설명을 요약해보자.
욕계1천인 사대왕천들의 수명은 천상의 해로 500년이고 인간의 수명으로 계산하면 9백만년이다. 제석천의 수명은 그것의 4배이다. 야마천은 제석천의 4배, 도솔천은 야마천의 4배.....
욕계천은 이렇게 각 단계마다 4배씩 증가해서 6천인 타화자재천의 수명은 인간의 수명으로 계산해서 92억1천6백만년이다.
색계천신들의 수명은 이보다 훨씬 길다. 색계1천인 범중천의 천신은 3분의 1겁을 산다. 그렇게 색계 최고인 색구경천의 수명은 1만6천겁이다. 무색계 공무변처천의 천신들은 2만겁, 식무변처천 4만겁, 무소유처천 6만겁, 비상비비상처천의 천신들은 8만4천겁을 산다.
이런 설화적인 스토리는 세상에 따라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천신들의 시간은 인간세상에서보다 훨씬 천천히 간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열악한 중생들의 공간은 천신들의 세계보다 훨씬 좁다. 한 수행자가 선정에 들었다가 깨어보니 오랜 시간이 흘러 미륵의 세상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미륵세상의 중생들은 이 수행자보다 몸이 수 천 배 컸다. 그 새 공간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는 그런 설화가 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현대물리학 이론과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설화다. 은진미륵이나 법주사 미륵, 동해안 낙산사 미륵불상을 커다랗게 만드는 까닭도 이런 공간관 때문이다.
아무튼 열악한 존재들은 쏜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좁고 답답한 공간 속에서 구차한 삶을 살아야 한다. 반면 천신보다 열악한 존재들, 인간과 축생 등의 욕계 중생은 수명의 한계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즉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간세상의 많은 슬픔과 비탄이 이런 특징과 관련돼 있다. 병에 걸려서, 혹은 전쟁이나 사고 때문에 보통의 수명도 채우지 못하고 짧은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요절하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는 사람들의 비탄은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리 복된 삶을 누리더라도 고통스럽고 슬픈 존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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