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대화와 대타협을 위하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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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면한 현안을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노사 충돌을 피해야 한다. 희망컨대 단순히 충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안을 풀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노사관계 발전과 선진화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역사가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하였고 기회의 다른 이름이었으므로.
그러나 지금 우리 노사는 현안 쟁점을 둘러싸고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통상임금 범위,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공공부문 개혁, 경영상 해고를 비롯한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쟁점이 아니다. 이들 쟁점은 우리 노사관계 주체의, 그리고 국가의 문제해결 역량을 시험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럴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이지만, 그래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당면한 도전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노사관계 주체의 역량이 커나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현안 쟁점만이 문제가 아니다. 노동시장 내부는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과 간접고용, 전형적 고용관계와 비전형적 특수고용관계 등으로 파편화되고 분화되었다. 이들 중 대기업, 정규직, 전형근로 부문은 고용은 안정되고, 근로조건은 양호하며,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고, 노동조합을 통해 이익이 대변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비전형 근로자들은 고용은 불안하고, 근로조건은 열악하며, 사회안전망 실제 가입율도 낮고, 노동조합을 통해 이익은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노조 조직률은 정체되고 압도적 다수 노동자들은 보호의 틀 바깥에 체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 내부에서만 본다면 노동조합이 사회적 형평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에 의해 대변되고 보호받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더 확대하는데, 따라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데 일조를 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노사관계 아젠다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노사관계는 지나간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추억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지난 시대의 아젠다에 매몰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초기 노사관계는 조합원의 임금인상을 위한 단체교섭과 고용안정 그리고 노동법제의 민주화를 중심 아젠다로 삼아왔으며, 이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권위주의 시대가 낳은 사회적 불균형을 수정하는 균형자적 역할을 하였고 우리 사회도 이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이후 10여년을 경과하면서,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외환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사회적 아젠다의 중심은 급속하게 변화하였다. 즉 민주화에서 경제회복과 고용창출로 바뀐 것이다. 또한 계층, 지역, 이념, 세대 갈등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갈등이 압축적으로 분출하고, 사회적 비용이 커지면서 소통, 상생, 통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데도 노사관계는 이러한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대결구도가 명확한 아젠다에 지나치게 매몰되고 에너지를 소진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상황에 대응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대립적 노사관계가 경제 선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과 노동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약화를 초래하였고,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지만 어느덧 정책 우선순위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노사관계가 다시 시대와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있다. 다만 노사관계의 주체들이 가지 않을 뿐이다. 그 길은 노사정 대화 복원이다. 이 길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이 중요하다. 정책의 입안과 집행과정에서 대화를 중시해야 한다. 비록 그 과정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과적으로 정책의 효과와 품질을 높이는 길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간 중단되었던 노사정대화가 한국노총이 최근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재개된 것은 참으로 잘 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의 대화이고 불완전하다. 이 기회에 우리는 민주노총에게도 간절히 희망한다. 노사정 대화의 자리로 복귀하라고. 그리하여 노사정 대화의 길을 완성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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