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의 운명 (2)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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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와 환경에서 혁신학교가 오래 지속되고 널리 확산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혁신학교가 지금처럼 전체학교의 5% 남짓한 소수의 학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학교로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을 아주 어렵게 보고 있다. 혁신학교 앞에는 그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많은 장애물이 놓여있다. 그 장애물에는 입시도 포함되지만 꼭 입시만이 장애물은 아니다. 논술고사와 수능시험은 커다란 장애물인 경이 분명하지만 생각만큼 거대한 장애물은 아니다. 입시 이외에도 장애물은 많다. 짧은 지면에서는 다 얘기하기 어려운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
혁신학교 운동이 그 많은 장애물을 다 넘을 수는 없다. 지금처럼 전체 학교의 5%도 못되는 소수의 학교라면 몰라도 다수의 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그 장애물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혁신학교다운 혁신학교를 가리는 기준이 애매하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진짜 혁신학교다운 혁신학교는 혁신학교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얘기는 사실인 것 같다. 그러니까 혁신학교 자체가 전체학교의 일부에 불과하고, 진짜 혁신학교다운 혁신학교는 또 그 중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 일부에 불과한 혁신학교다운 혁신학교는 우리나라 학교가 나아가야 할 미래다.
문제는 지금의 학교 제도와 문화와 풍토 속에서는 이 소수의 성공한 혁신학교조차도 자신의 성공을 오랜 기간 지속시켜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의 혁신학교가 여러 가지 장애물을 넘어 빼어난 결실을 맺은 것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힘에 의해서이다. 그것은 강한 열정을 가진 교사들이 힘을 합쳐 일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혁신학교에 투입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혁신학교의 성공은 어떤 사람의 생각처럼 혁신학교에 일반학교보다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 정도의 경제적 지원을 하는 학교는 일반학교에도 적지 않다. 혁신학교의 성공의 진짜 중요한 원인은 ‘사람’을 모아놓은 데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을 강열하게 원하는 교사들이 한꺼번에 혁신학교라는 이름의 학교에 모일 수 있었기에 그들은 힘을 합쳐 엄청난 에너지를 학교에 투여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와 환경이라는 장애물을 넘어 상당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성공방식은 오래 지속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물며 새로 혁신학교에 지정될 더 많은 학교에서 그러한 현상이 지속될 거라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나는 가끔 혁신학교의 핵심적 성공요인이 ‘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매년 1조원 정도의 돈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를 성공한 혁신학교처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혁신학교를 만든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혁신학교운동은 수그러들고 꺼져갈 것이다. 혁신학교를 옹호하는 교육감이 대거 등장했다지만 그들도 이 흐름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혁신학교의 장애물인 제도와 환경과 풍토를 바꾸려는 노력도 지속되겠지만 제도와 환경과 풍토가 바뀌는 속도보다 수그러들고 꺼져가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성공의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지만 물론 나는 혁신학교 운동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하고, 나의 예상은 틀릴 수 있다. 제발 그러기를 바라지만 나는 나의 예상이 틀리지 않을 거란 확신을 지울 수가 없다.
혁신학교가 지속되고 확산되려면 혁신학교 앞에 놓인 수많은 장애물을 치우거나 장애물의 높이를 낮춰야 한다. 그래야 소수의 영웅적인 교사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평범한 교사들이 혁신학교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 이것은 진보진영이나 보수진영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지난한 작업이다. 혁신학교 앞에 놓은 장애물을 치우는 일은 우리의 교육과 학교를 모두 개혁하는 일과 사실상 동일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의 주류는 앞뒤 재지 않고 혁신학교를 비난하고 있다. 혁신학교의 성공은 진보진영 혼자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데 보수진영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신랄한 비판으로 혁신학교에 무거운 짐을 더하고 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굳이 한마디 하자면 나는 지금 혁신학교의 경우에 국한하여 말하고 있다. 진보가 앞뒤 재지 않고 보수의 정책을 비난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영논리에 의한 보수의 혁신학교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은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혁신학교에 대한 맹목적 옹호에 나서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혁신학교의 실패를 앞당기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진영논리에 의한 ‘맹목적 비난’과 마찬가지로 진영논리에 입각한 ‘맹목적 옹호’ 또한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혁신학교의 성공을 위해 날카롭게 따져봐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해 눈을 감게 만들어 혁신학교에 독이 될 것이다. 이렇게 혁신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진보와 보수의 진영싸움은 혁신학교운동의 실패를 앞당길 것이다.
더 많은 학교로 확산되고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란 의미에서, 혁신학교는 결국 실패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교조의 이념 공작소에 불과한 학교가 맞이해야 할 당연한 실패일까, 아니면 앞으로 우리 교육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소중한 교육실험의 안타까운 실패일까?
당신은 어느 쪽이라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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