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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폐지, 방향은 맞는데 대안이 문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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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01일 17시10분

작성자

  • 김경근
  •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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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안 자체가 한 방향으로 쉽게 정리되기 어려운 특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7월 22일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를 발표했는데, ‘찬성’ 51.0%, ‘반대’ 37.4%, ‘모름/무응답’ 11.6%로 나타났다.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에 찬성하는 비율이 과반수에 달했지만 존치를 바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긍정적

개인적으로 꽤 오랫동안 학교선택권 문제를 고민하고 성찰했다. 나는 2002년 김대중 정부가 전국 단위 모집 ‘자립형 사립고’(1기 자사고) 6개교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평준화 제도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에 도입되었다. 따라서 1인당 국민소득이 10,000달러에 가까워진 시점에서는 국민이 기대하는 교육의 질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평준화 제도도 일정 정도 보완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다. 

 

다만 우리 국민의 열화와 같은 교육열을 고려할 때 기존 평준화 제도에 큰 폭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실험이 되리라는 점도 분명했다. 특히 ‘자립형 사립고’가 학교교육의 다양화를 표방하며 출범했지만 학부모들의 성화를 이겨내지 못하면 입시학원과 유사한 학교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 때문에 ‘자립형 사립고’ 수를 계속 늘리기보다는 당분간 지정된 학교들이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돕는 데 주력할 것을 제안했었다. 

 

돌이켜 보면 이런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1기 자사고는 별다른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나름대로 평준화 제도 보완에 일조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1기 자사고가 별다른 논란을 야기하지 않았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어떤 식으로든 평준화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일정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둘째, 재정 형편이나 교육 역량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운영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지는 학교들이 지정됐던 측면이 있다. 

셋째, ‘자립형 사립고’가 상당히 제한적 범위 내에서 도입되었고 권역별로 골고루 분포했던 까닭에 교과 성적이 특출한 일부 학생들 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아 집단추종에 따른 과열 경쟁을 유발할 소지도 적었다.

 

 

이명박 정부의 자사고 대거 지정은 무리수 

이명박 정부 때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국에 ‘자율형 사립고’(2기 자사고) 100개교 지정을 추진하면서 교육생태계에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를 지정할 경우 이전에 ‘자립형 사립고’ 6개교를 도입할 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등학교가 수직적으로 서열화되어 실질적으로 평준화 제도가 형해화하는 결과를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자율형 사립고(이후 자사고)’는 일반고보다 등록금을 3배까지 받을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자사고 대거 지정은 학교 유형에 따라 학생들의 계층이 명징하게 갈리는 현상을 초래할 게 명약관화했다. 옆집 자녀가 어떤 고등학교에 다니는지 크게 의식하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걸 당연시했던 분위기가 일거에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귀족학교 양산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는 자사고 정원의 20%를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충원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나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의뢰로 자사고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선발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연구하면서 자사고로 전환하고자 하는 경향 각지 일반고 네댓 학교를 방문하여 전환 추진의 배경을 심도 있게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자사고 지정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직감하고 정책 추진을 주도하는 핵심 인사를 만나 자사고 지정의 최소화를 제언하기도 했다. 내 판단의 주된 근거는 이렇다. 

 

무엇보다 자사고 운영에 요구되는 법인전입금을 감당할 만한 재단이 많지 않았다. 자사고 도입의 핵심 취지인 교육의 다양화 구현에 관심을 가진 학교는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대다수 학교가 자사고 도입을 계기로 입시 명문고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이나 자사고로 전환하지 않았을 때 우수 학생을 죄다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변신을 도모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자사고 도입의 취지를 잘 살리면서 견실하게 운영될 수 있는 고등학교가 전국적으로 많아야 다섯 학교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자사고 100개교 지정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자사고 지정 요건을 완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은 서울에서 집중적으로 자사고 수를 늘렸다. 그 결과, 2010년에 26개교(자립형 사립고에서 전환된 7개교 포함), 2011년에는 25개교가 자사고로 지정됐는데, 이 가운데 서울 소재 학교가 27개교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지금도 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명박 정부가 자사고를 100개교나 지정하려 했는지 그저 의아할 따름이다.

 

 

일반고 황폐화 문제의 본질

자사고 대거 지정은 일반고 황폐화를 초래한 주범으로 비판을 받는데, 다른 지역은 몰라도 서울에서는 상당히 타당한 측면이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자사고 비율은 학교 수 기준 1.8%, 학생 수 기준 2.7%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자사고 비율이 학교 수 기준 7%, 학생 수 기준 9%에 달한다. 이렇게 서울에서 10% 가까운 학생이 자사고에 다니게 됨으로써 일반고에는 심대한 타격이 가해진다. 

 

수업이란 걸 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30명 학생 가운데 서너 명만 질문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면 그럭저럭 의욕을 갖고 수업을 진행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학생 두세 명이 빠져나가면 남은 학생은 물론 교사도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 심정이 될 공산이 크다. 이것이 바로 현재 거론되는 일반고 황폐화 문제의 본질이다. 수업시간에 태반이 엎드려 자는 현실에서 그나마 교사 얘기에 의미 있게 반응을 보이던 학생들 상당수가 자사고로 빠져나가면서 일반고에서는 수업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초래됐다.

 

현행 자사고의 문제점

자사고 지정이 이루어진 후에 거의 매년 자사고로 평가를 나갔다. 평가를 마치고 자사고의 미래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낄 때가 많았다. 자사고에서 대입 성과가 아닌 미래 지향적 교육에 관심을 가진 학교 경영자나 교사를 별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기대나 열망이 학교 경영자나 교사의 관심에 오롯이 투사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다. 뭔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를 도모할라치면 대다수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졸업한 뒤에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고 한다. 지금의 서열화된 대학체계나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새로운 고교체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우리 교육이 변화할 여지는 거의 없다는 게 나의 냉철한 판단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루어진 자사고 대거 지정은 설익은 교육정책이 어떻게 두고두고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지금의 자사고는 일반고와 차별화되는 미래 지향적 교육프로그램을 거의 제시하지 못한 채 대부분 입시 준비에 매몰되어 있다. 많은 자사고가 일반고보다 3배 가까이 많은 등록금을 내는 학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유사한 여건의 자사고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 진학 성과를 내느라 진력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획일화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똑같이 우수하고 학업에 대한 열정이 있더라도 가정배경이 좋은 학생은 3배의 등록금을 치르고 자사고라는 양호한 교육환경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반면, 가정배경이 좋지 않은 학생은 일반고라는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악전고투해야 할 가능성이 큰 게 현재의 고교체제이다. 이러한 경쟁은 공정하지 않거니와 인적자원개발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연전에 자사고 효과를 연구하면서 가정배경이 좋은 학생들 비율이 높은 학교에 다닐 때 기대되는 학업에서의 이점이 학생 자신의 가정배경이 좋을수록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자사고가 일정 비율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받아들이더라도 자사고 제도 자체는 계층 간 교육격차를 심화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사고, 대안 마련해가며 폐지해야

일부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재의 자사고는 존치의 명분이 상당히 약하다. 일각에서는 자사고가 폐지되면 강남 8학군이 부활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지만 기우라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유수 대학이 정시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면 모를까, 입시에서 수시 비율이 70%를 훌쩍 넘는 상황에서는 강남 8학군의 이점이 별로 없다. 실제로 강남 8학군 소재 자사고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는 건 사실이지만 평균적으로 수시보다 정시 합격자 비율이 2배 이상 높고 재수 비율도 50%를 넘는다. 강남 8학군 자사고 학생의 경우 태반이 사교육에 의존해 대학 진학에 성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처럼 자사고 폐지의 명분은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격차 해소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거니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의 함양에도 이점을 갖지 못한 게 현재의 자사고이다. 그럼에도 재지정 평가를 통해 자사고 한두 개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일조차 지난하기만 하다. 자사고 폐지 이후의 대안이 마땅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일반고가 자동으로 살아날 리 만무하지만, 자사고가 존치되는 한 일반고 살리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자신의 자녀를 좋은 교육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아마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도 대부분 이런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일반고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고 있는 학부모로선 당장 일반고를 자사고의 대안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자사고 폐지가 일반고 살리기로 직결되는 것은 아닌 까닭에 교육 당국은 치밀하고 현실성 있는 일반고 살리기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후 교육의 다양성 제고를 통해 입시에서도 자사고 시절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얻은 일부 고등학교의 사례를 심도 있게 분석해 대안을 찾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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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01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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