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정치 유감(遺憾)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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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상소(持斧上疏),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문을 올린다는 것이다. 상소는 절대군주인 임금에게 감히 올리는 청원이다. 그런데 도끼를 옆에 놓고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린다는 것은 그릇된 상소문을 올렸거나 임금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면 옆에 있는 도끼로 자신의 목을 치라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올리는 상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 투쟁으로 잊혀 졌던 정치판의 단식투쟁이 다시 회자(膾炙)되고 있다. 우리 정치판에서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삭발이나 단식투쟁을 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로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인 단식 투쟁은 아무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투쟁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식 투쟁일 것이다.
1983년 전두환 정권의 엄혹한 정치현실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던 YS가 5.18민주화 투쟁 3주년을 맞이하여 직선제 개헌 등을 내걸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YS단식 투쟁당시 모든 경비를 대줄 테니 단식을 중단하고 잠시 해외에 나가 있어달라는 군부정권의 요구에 대해 YS는 자신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목숨을 걸고 감행한 단식 투쟁이었다. 당시 언론에는 YS단식투쟁은 보도하지도 못했었다. ‘최근의 관심사’ ‘현안’ ‘모 인사의 식사문제’ 이상한 암호 같은 기사만 보도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문은 바람을 타고 번져가 갔고 잠자고 있던 민주화 열기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DJ의 단식은 3당합당으로 평민당이 소수정당으로 전락하자 거대여당의 횡포에 항거하기 위해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내걸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결국 순차적인 지방자치제 실시 약속을 받아냈다.
YS나 DJ는 군사권력이나 거대여당에 대해 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 최후 수단으로 몸을 던지는 단식 투쟁에 나선 것이다. YS나 DJ의 단식으로 내건 대의명분은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고 몸을 던지는 처절한 투쟁으로 받아들여졌다. 현대판 지부상소(持斧上疏)였다
그런데 국회의석의 과반(過半)을 훨씬 넘는 정당으로 실질적인 국회권력을 장악한 정당의 대표가 단식투쟁에 돌입한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치지도자가 단식투쟁을 할 때는 도저히 넘기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최후 수단이어야 하고 단식에 돌입하며 내거는 명분이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단식 명분으로 “무능 폭력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라는 것을 내걸었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국민항쟁’ 이라는 구호에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능정권이라면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를 통해 정부를 견제하고 국회에서 국민항쟁을 하면 될 일인데 치열한 항쟁 대신 왜 단식을 하는가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단식 명분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 몰라도 이재명대표 단식기간에 검찰출석요구와 영장청구가 이루어졌다. 자신에 대한 영장청구가 들어오면 당당하게 나가서 조사를 받겠다던 공언이 무색하게 이대표는 민주당에 체포동의안 부결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방탄단식’이냐는 말이 나올 만도 하게 된 것이다. 이번 단식은 이 대표 지지자들의 결속은 가져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체포동의안 가결로 민주당은 당 단합 마저도 무산된 꼴이 되었다.
정치인이 단식을 풀 때는 단식을 시작할 때처럼 중단 명분과 이에 따른 충분한 설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치인은 공인이다. 특히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한 공직자이다. 이런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견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책을 통해 펼쳐져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정당한 정견을 힘에 눌려 도저히 알릴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정치인 단식은 책임 회피이고 이목을 끌기 위한 쇼잉(showing)에 불과한 것이다.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겉으로 드러내는 감성호소 대신 국회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대안을 찾는 성숙한 정치가 우리 정치에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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