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제, 과연 바람직한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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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에 대법원장 산하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제3심인 상고심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대법원과 별도의 상고심 법원을 설치하는 방안을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상고법원이란 삼심제 하에서 상고심을 대법원이 관장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법원의 업무경감을 이유로 대법원 이외에 경미한 사건의 상고심을 처리하기 위해 둔 별도의 법원을 말한다. 대법원은 올 하반기까지 이 상고법원안을 확정하는 것을 목표로 법원 내외부의 의견을 수렴해 나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일 년에 약 4만 건의 사건이 폭주하는 우리 대법원
상고심 법원 설치 이야기가 나온 것에는 대법원에의 사건 폭주현상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대법원에는 일 년에 4만 건 가까운 사건들이 폭주한다. 13명인 대법관들은 그래서 일 년에 일인당 3천 건 정도의 사건들을 처리해야 하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상황은 대법원 스스로가 자초한 면이 크다. 오래 전부터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에서 법리 적용의 잘못만을 따지는 법률심의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증거 채택에 있어서의 채증법칙 위반 등을 이유로 사실 확정에까지 다시 관여함으로써, 소송 당사자들에게 대법원의 상고심에서 항소심 판결이 뒤집힐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이로 인해 대법원에 사건이 폭주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건 폭주는 대법원이 소수의 중요한 사건에 치중해 정책적 판단을 내리는 정책법원으로 기능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대법원에의 사건 폭주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대법원에의 사건 폭주현상으로 인한 정책법원형 상고심 기능 약화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도 여러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1959년에는 대법원에 일관법관을 배치해 사건 폭주를 해결하려 했으나 2년 만에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두는 고등법원 상고부제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1961년 8월 1일부터 실시된 이 고등법원 상고부제도 상고심이 여러 고등법원에 나누어져 있어서 법령해석의 통일을 기하기 어려운 점,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대법원의 판결을 받을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상의 국민의 권리 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2년만인 1963년 12월 13일에 폐지된다. 군사정권 하인 1981년에는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재판하는 사건들을 선별적으로 고를 수 있는 상고허가제가 도입되었으나 이 또한 헌법상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 1990년에 폐지되었다. 상고허가제가 폐지되자 대법원에의 사건 폭주현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에 대법원은 고육지책으로 1994년에 가서 형사사건 외에는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가 규정하고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심리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이유를 기재하지 않은 판결로 상고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불속행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면서 전체 대법원 사건의 60% 정도를 이 심리불속행으로 걸러내고 나머지 40%의 상대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치중해오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에 올라오는 전체 사건의 수가 약 4만 건에 육박하게 되자 심리불속행제도 하에서도 대법원의 업무 수행이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과연 상고법원제가 바람직한 대안인가
대법원과 따로이 상고법원을 둘 경우 두 법원이 처리할 사건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에 의견 수렴에 들어간 상고법원제에서 대법원은 아직 이 기준을 확정하지는 못하고 대략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민사와 가사 및 행정사건은 소송가액에 따라, 형사사건은 형량에 따라 구분하여 고액사건과 중형사건은 대법원이 맡고 경미한 사건은 상고법원이 맡는 방안과 고등법원이나 특허법원에서 상고되는 사건은 대법원이, 지방법원 항소부에서 상고되는 사건은 상고법원이 맡는 방안이 그것이다. 또한 상고법원에서 심판하게 된 사건이라 하더라도 명령·규칙 등의 위헌여부와 관련된 사건이나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는 결정이 내려진 경우 등에는 상고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예외적으로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고법원 판결 이후에 대법원 판결이 추가되는 ‘4심제’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을 벌써부터 받고 있다.
외국 중에도 앞서 대법원에의 사건 폭주현상을 경험한 나라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상고법원형이 아니라, 우리가 1980년대에 시행했던 상고허가제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갖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들 중 약 10% 정도인 100건 정도의 사건들만 골라서 심리하는 상고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도 민사사건에 대해서는 상고허가제를 통해 사건을 걸러내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이외에 상고심을 처리하는 상고법원을 따로 두는 나라는 별로 발견하기 힘들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번에 대법원이 제시한 상고법원제는 1960년대 초반에 우리가 시행했다가 약 2년 만에 폐지한 고등법원 상고부제와 흡사하다. ‘고등법원 상고부’ 대신에 ‘상고법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 때에 고등법원 상고부제 폐지의 이유가 되었던 문제점들, 즉 상고심이 대법원과 고등법원 상고부에 나누어져 있어서 법령 해석의 통일을 기하기 어렵다는 점,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대법원의 판결을 받을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상의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점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 상고법원 판사들의 임명방식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이들은 국회의 인사청문회나 제청 자문절차 없이 오직 대법원장이 임명하게 될 것이다. 최종심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의 선임에 국민이 간여하지 못하고 대법원장의 독단에 의해 임명이 이루어진다면, 그렇지 않아도 권한이 너무 막강해서 ‘제왕적 대법원장제’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법원장에게 중요한 권한만 하나 더 얹어주는 셈이 되지 않을까? 이래저래 상고법원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제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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