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금방 이루어 질 것이란 기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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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초 독일의 통일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통일에 관심이 있던 학자들로 구성된 방문단이었다. 그들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갔는데 유독 한반도에 통일이 언제 올 것인가에 대한 논의만큼은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동독의 낮은 생활수준이 동독 주민들로 하여금 통일을 선택하게 한 점을 강조하면서 그 당시 동독보다 더 극심한 빈곤을 겪고 있던 북한은 곧 붕괴될 것이고 따라서 한반도에 통일이 조만간 올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한 학자가 있었다. 나도 경제학자인 만큼 통일에서 경제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데는 같은 생각이나 그 이유 하나만으로 통일이 곧 이루어진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어 반론을 제기했다. 토론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그 학자가 내기를 걸어옴으로써 토론을 종결지었다. 그 시점으로부터 5년 내에 한반도에 통일이 이루어지면 내가 한 달치 월급을 그에게 주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내가 그의 월금을 받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이었다. 내가 보기엔 너무 쉬운 내기여서 내가 역제안을 했다. 내가 관용을 베풀어 5년이 아니라 10년을 기준점으로 하자고. 그로부터 5년,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한반도에 통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통일이 곧 오리라고 강력히 주장하던 그 학자에게 한 달치 월급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학자들의 판단을 내기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너무 모든 문제를 경제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우를 범하는 일 같아서.
그런 내기가 있은지 5년이 지난 1996년 나는 연세대학교에서 통일연구원을 만들어 통일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 당시 이미 많은 대학에 통일연구소가 존재해 있었고 정부의 통일부가 비록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약간의 지원을 하고 있고 그 연구소의 책임자들이 일 년에 한번 학술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활동을 검토해 본 결과 그들의 연구활동이 대부분 정치, 외교, 안보의 영역에 국한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통일문제는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연세대학교의 통일연구원을 다학제적 연구기관으로 구성하였다. 그 당시 통일연구원의 활동에 참여한 학자들은 그러한 접근에 크게 찬동하였으며 외부에서도 연세대의 통일연구원의 접근법에 큰 관심과 격려를 표해 왔다. 그런데 그들 모두 북한주민의 생활이 그토록 처참한데 어떻게 북한체제가 유지되는지 의아심을 가졌고 결국 경제적 요인만으로 북한 사회를 보아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갖게 되었다.
연세대 통일연구원이 몇 가지 큰 연구과제를 수행했었는데 그 중 하나는 MBC의 부탁을 받아 한반도 통일문제를 전망해 보는 작업이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 학자들(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의견을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조사하는 작업이었다. 그 연구에서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한반도에 통일이 언제쯤 가능 할 것인가였다. 재미있는 것은 연구가 이루어진 1990년 후반에서도 10년 이내에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 학자들은 극소수였고, 50% 이상이 2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당시로부터 25년은 2022년 정도를 의미할터 이니 아직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만일 지금 다시 한반도 문제에 관심있는 학자들에게 같은 조사를 시행한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아마도 지난번 조사 결과에 비해서는 조금 빠른 통일 시점이 예측될 수 있지만 대다수는 한반도의 통일을 아직은 먼 시점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2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아니 있을 것이다.
도대체 한반도의 통일은 왜 이렇게 먼 훗날의 일이 되어 가는가?
하바드의 유명한 역사학자였으며 주일미국대사를 역임한 라이샤워 교수는 독일통일 훨씬 전에 이런 예언을 한 적이 있다. 즉 독일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너무도 첨예한 반면에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그 다지 첨예하지 않아 한반도의 통일이 독일통일에 비해 쉽게 빨리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다. 왜 그랬을가? 외교와 국제정치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내 생각에는 독일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너무도 첨예해서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일어나는 동독을 포함한 동구권의 변화를 서방의 이해 당사자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독일의 통일을 허락하고 서구의 안정화를 꾀한 것이 아닐까?. 반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도 결코 첨예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지금은 한반도 분단의 현상유지가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독일 통일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한반도 통일에서 외부적 조건보다 내부적 여건과 노력이 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독일과 한반도가 비록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다고 해서 통일도 외세에 의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외부적 여건을 활용한 내부적 통일 노력이 독일의 통일을 가능케 했고,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그 또한 내부적 여건과 노력이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서 독일의 경우를 논할 필요는 없다. 단 한 가지를 언급한다면 서독은 정당과 정권을 초월한 대동독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하여 통일을 이루었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통일이 이루어지려면 외부적 여건이 성숙되고 내부의 노력이 적절해야 할 터인데 우리의 경우 아직 두 여건이 모두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닐까? 여기서 외부적 여건은 차치하고 내부적 여건을 우선 보기로 하자. 통일이 늦어지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권력층이 그들의 생존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통일은 몰락을 의미한다. 이는 동독으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이 교훈은 북한권력층의 생존의지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런데 북한은 세계에서 제일 강한 경찰국가이다. 아무리 배고프고 추워도 주민들이 시위를 하거나 반란을 꾀할 수 없다. 물론 탈북은 있다. 그러나 중국의 존재는 탈북조차 북한 정권에 위협이 되지 않게 한다. 이명박 정부 말에 마치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암시와 함께 소위 통중봉북(通中封北)이란 말이 나돌았다. 지금 생각해 볼 때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주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보다 핵을 구축하는 북한과 어떻게 통일을 도모할 수 있을가? 우리에게 통일을 위한 선택지는 많지 않다. 통일을 조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서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북한의 안보위협에 완벽히 대응하며,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대한 불필요한 적개심을 갖지 않게 하며, 같은 민족으로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속하며, 북한이 가진 중요한 인적자원을 성장시키며, 그들의 인권이 보호되게 하며 북한이 원할 경우 북한의 경제체제의 변화를 도울 수 있는 사업을 전개하는 일이 통일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 통일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독일통일을 이끌었던 콜 수상 자신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얼마 전까지도 통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니 한반도의 통일도 그렇게 아무도 몰래 빨리 올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빨리 올 수도 있는 여건을 만든 독일의 경우를 배워야 한다. 독일은 통일을 언급하지 않았고 또 통일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보게 한 것이 서독의 전략이고 태도였다. 우리는 통일을 너무 많이 이야기 해 왔다.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뿐이었고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등이 증폭되어 왔다. 통일을 바란다면 이제 남한 내부부터 바뀌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괜찮다 통일은 아직 먼 곳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준비할 시간도 많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착실히 준비해 가자.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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