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 꿈과 끼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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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본령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교육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치와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발하도록 진정성 있게 도와주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그간 우리 교육이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성적으로 한 줄 세우기에 매몰된 우리 교육
주지하듯이 우리 교육은 성적지상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교과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큰 틀에선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학부모의 관심이 온통 자녀의 성적에만 쏠려 있으니 학교로서도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하기 어려운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성적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학교풍토에서 성적은 곧 권력이다. 리더십과는 무관하게 성적이 좋은 학생이 학급 반장이나 학생회장을 꿰차는 경우가 흔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의 경우 어지간한 일탈 행동은 불문에 부쳐지기도 한다. 반면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다른 빼어난 재능이 있더라도 학교생활은 행복하기 어렵다. 승산이 희박한 성적 경쟁에 내몰려 아무런 보람이나 흥미도 느끼지 못한 채 졸업할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열심히 하도록 강요받고 그 성과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결정된다면 누군들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학생들의 낮은 행복도와 그 배경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어린이ㆍ청소년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2006년에 첫 조사가 실시된 이후 2015년에야 처음으로 최하위를 면하여 23개국 가운데 19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초중고생들의 행복지수가 이처럼 낮은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지만, 성적에 대한 중압감 및 자신의 꿈과 끼를 제대로 키우기 어려운 교육현실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4년 행복지수 분석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생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상황으로 ‘성적에 대한 압박이 심할 때’(23.3%), ‘학습부담이 너무 클 때’(20.8%), ‘친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16.7%) 등을 주로 지목했다. 반면 행복을 느끼는 경우로는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할 수 있을 때’(42.7%),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때’(27.1%), ‘성적이 좋을 때’(11.9%) 등이 지적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초중고생들은 성적에 대한 압박이나 과도한 학습부담에 시달릴 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반면,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 교육현실에서 성적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하면서 학교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대안학교에서도 기대하기 어렵고 홈스쿨링에서나 꿈꿀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학령기 청소년의 행복도가 높길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
자유학기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는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이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도입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대표적 교육정책이라 할 수 있다. 교육부는 자유학기제 기간만큼은 학생들이 시험의 중압감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찾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피력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극심한 후유증을 낳은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시대적 적합성과 타당성 측면에서 분명 진일보한 방향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개인적 판단이다.
하지만 이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착근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될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정책이든 학부모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않고는 연착륙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리 명분이나 취지가 좋아도 학부모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면 이내 수명을 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학기제를 통해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 안착할 수 있으려면 이 정책이 왜 자신의 자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학부모들이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정교하고 타당한 논리로 이 정책이 이 땅의 미래 세대에게 어떤 실제적 의미와 효용성을 갖는지 학부모들을 설득한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이 정책을 현 정부의 소박한 한시적 교육실험 정도로 치부하고 정권과 함께 수명을 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세계화시대에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의 중요성
미래 세대가 청소년기에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발견하여 그것을 지속적으로 계발하도록 돕는 것은 세계화시대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화시대는 냉전체제 종식에 따른 이념적 장벽의 해소, 정보통신기술 및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한 물리적 거리의 획기적 단축, 인위적 무역 장벽의 제거 등에 의해 추동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요인들에 의해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됨에 따라 가장 경쟁력 있는 하나의 최종 승자가 시장 전체를 지배하는 승자독식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특정 국가나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현상이다.
세계화시대에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경제주체를 제외하고는 언제든 쇠락의 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슈퍼마켓은 비교적 널찍한 매장과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지역에서 상당한 시장지배력을 과시했었다. 하지만 막강한 자본력과 가격경쟁력으로 무장한 대형 할인점, 홈쇼핑업체, 전자상거래업체 등이 등장하면서 지금은 그 존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업체들도 세계 유통업계의 공룡인 아마존이 우리나라에 곧 진출한다는 소식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또한 요즘은 낯선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인터넷으로 미리 맛집을 검색하여 특정 식당에서만 식사를 하곤 한다. 때문에 맛집에는 긴 줄을 지어 순번을 기다리는 번거로움을 불사하는 손님들이 넘쳐나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한데도 인근 다른 음식점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이 같은 엄혹한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화시대에 교육은 노력주의에 입각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한 말콤 글래드웰은 평범한 사람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전문가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한 바 있다. 반면 ‘스포츠 유전자(The Sports Gene)’의 저자인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1만 시간의 법칙은 환상에 불과하며 뛰어난 성취에는 남보다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유전자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시간을 투입하여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미시간주립대의 잭 햄브릭 교수 연구팀은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선천적 재능과 비교했을 때 노력이 가져다주는 보상은 그다지 크지 않음을 밝혀냈다. 이들에 따르면 학술 분야에서 노력이 실력을 결정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하고, 음악ㆍ스포츠ㆍ체스 등에서도 노력은 성취의 20∼25%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렇게 볼 때 세계화시대에 교육은 응당 이른 시기부터 미래 세대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꾸준하고 치열한 노력을 통해 자신의 끼와 재능을 최대한 계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엄혹한 승자독식 시대에 미래 세대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될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정책당국의 각성과 분발 필요
현 정부는 집권 4년차인 2016년에야 전면적으로 자유학기제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한 바 있다. 이 같은 정책당국의 행보는 절실함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굼뜨기 짝이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중학교 과정 중 1학기에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이 갈음되어선 실질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러한 정책당국의 안일한 행보가 혹여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적 노력이 갖는 시대적 적합성과 함의에 대한 이해나 확신의 부족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단순히 그간 유명무실했던 진로교육의 강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세계화시대에 교육이 성취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로서 미래 세대의 생존 및 삶의 질과 직결되어 있다. 세계화시대에는 어떤 분야에서든 일부 슈퍼스타를 제외하곤 몰락과 도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이전에는 하찮게 여겨지던 끼나 재능이나 할지라도 보기 드문 독특성이나 수월성만 담보된다면 세계화를 통해 크게 확대된 시장에서 새롭게 각광을 받게 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세계화시대에 교육은 사람들이 지닌 다양한 끼와 재능을 똑같이 가치 있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계발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근자에 우리 학부모들을 더욱 불안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자녀가 유수의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마저 여의치 않은 현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안온한 삶을 위한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던 명문대 졸업장이 그 효용성을 거의 상실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적을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우는 교육은 더 이상 시대적 적합성을 갖기 어렵고 낙오자와 패배자만 양산할 따름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고 교육패러다임의 획기적 전환을 통해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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