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의 그림자 : 그리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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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 재정위기의 재현
그리스는 2010년 이후 유로 채권단과 IMF로부터 두 차례의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국내외 경제여건의 악화로 최근 다시 재정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6월말 IMF자금 15억 유로의 상한 만기일이 지나 채무연체 상태에 빠져 있는데 더하여 6월부터 시작된 제3차 구제금융 협상이 지연되고 있어 7월과 8월 중에 만기 도래하는 유럽중앙은행(ECB) 자금 70억 유로의 상환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신규 구제금융 협상이 결렬되거나 1개월 이상 지연될 경우 그리스는 IMF와 ECB 자금 모두에 대해 채무불이행 상대에 빠지게 되고 상화전개에 따라서는 유로존 잔류마저 어려울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의 약화는 구조조정 의지 부족이라는 지적과 함께 경제적으로 그리스 국내외의 경기침체와 그로 인한 내수 및 수출 여건 악화 등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더해 긴축 반대를 공약한 좌파 정당의 집권, 유로 채권단 긴축 요구에 대해 국민투표를 통한 수용 반대 표결 같은 정치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의사결정은 그리스가 제출한 새로운 협상안에 대한 신뢰성 결여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7월 12일 ECB 재무장관 회의와 유로존 정상회의는 그리스안보다 훨씬 강한 구조개혁과 긴축을 요구하는 제안을 다시 제시하였고, 이 제안의 실현을 보장하기 위해 3일 내에(15일까지)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까지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의 구조개혁 실천 의지를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나 7월 12일 유로 정상회의에서 잠정 합의한 구제금융 조건은 500억 유로의 국유재산 매각, 연금 개혁 및 세수 확보를 위한 부가가치세법 개정 등을 담고 있다. 이 조건이 수용되면 향후 5년간 860억 유로의 자금을 지원하고 이 중 220억 유로는 8월 중에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중 국유재산 매각은 그리스가 반대해 왔던 사안이고 3일 내 관련 입법 국회통과 요구는 그리스의 자존심을 꺾는 치욕스런 결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이 조건을 그리스가 수용하지 않으면 유로 채권단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것(타의에 의한 그렉시트)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그렉시트가 결정되면 추가 구제금융은 물론이려니와 ECB로부터의 유동성 지원이 단절되므로 그리스는 재정자금의 고갈로 인한 디폴트선언에 더하여 은행잔고 부족으로 인한 은행 부도가 불가피하게 되고 그로인해 그리스 경제는 의외의 파탄에 직면할 수 있다.
2. 유로존 탈퇴의 가능성
따라서 그리스의 선택은 국민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채권단 요구를 수용하든가 아니면 유로존을 탈퇴하여 어렵지만 독자적으로 갱생의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72시간 내에 강도 높은 구조개혁안을 실천할 법령 제정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그리스의 경제 사정이나 정치 사회적 여건으로 보아 법률 개정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연금 개혁 및 부가가치세법 개정이 쉽지 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리스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유로존의 안정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지만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은 계속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는 최근 5년간 마이너스의 성장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2014년 일인당 국민소득은 2008년 대비 32%나 감소한 상태여서 내수 진작으로 인한 경기 회복은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실업률도 2011년 18%애서 2014년 27%로 늘어났고 청년실업률은 50%에 이르고 있어 긴축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재정수지 역시 최근 수년간 -10% 대를 유지하고 있어 2017년까지 재정수지를 GDP의 3.5%까지 올린다는 구조개혁 요구가 실현될 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그리스는 채권단의 요구를 실천할 여건도 녹녹치 않지만 거절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입장이다. 채권단 요구를 수용한다면 국가경제의 파탄은 피하면서 힘든 구조개혁 과정을 밟게 될 것이고 거절한다면 이제는 자의가 아닌 유로존 채권단의 요구에 의해 유로존을 떠나야 하는 비운의 EU회원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3. 유로존 탈퇴가 실현될 경우의 파장
만약 제3차 구제금융 협상안이 부결되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결정된다면 그리스에 대한 유로존의 공적 지원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EU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는 한 EU의 지역개발 기금, 사회보장정책 지원, 농업구조개선 자금 등은 기대할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 현재 그리스의 재정 위기를 완화시키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IMF의 추가 지원을 요구할 수 있으나 선행된 자금의 상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유로존 회원국의 협조가 없는 한 추가 지원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그렉시트의 실현은 단기적으로 그리스 경제의 대혼란을 가져오고 채권국가에도 채권회수 불능으로 인한 피해를 야기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독자적인 통화금융 정책과 자성적 자구노력을 통해 경제 회생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상의 정책 코스트를 고려하면 자력 갱생의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4. 유럽통합의 관점에서 본 유로존 탈퇴의 의미
그리스의 재정위기와 유로존 탈퇴 문제는 역내 회원국과 유럽통합론자 들에게는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유럽 공동체 내에서 시도된 환율동맹의 좌절 경험에서 볼 때 그리스의 탈퇴는 예방적 교훈보다 동맹의 취약점을 노출시키고 또다른 탈퇴의 명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럽통합의 그림자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1971년 국제적으로 변동환율제가 확산되자 유럽공동체 회원국 통화간의 환율변동폭을 제한하가 위해 공동플로트제도를 도입한바 있다. 그러나 72년 변동폭 축소에 부담을 느낀 영국이 탈퇴하고 이어서 이탈리아가 그리고 76년에는 프랑스가 탈퇴함으로써 이 제도는 EC의 통화협력제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979년 유럽통화제도(EMS)가 도입된 후 역내 고정환율의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 영국과 이틸리아 등이 탈퇴하면서 이 제도 또한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환율동맹의 경험에서 볼 때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화동맹에 부담을 느끼는 여타 회원국의 연쇄 탈퇴의 명분이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유로존의 기능이 이완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
1992년 마스트리트 조약에 의해 설립된 현재의 유럽통화동맹은 가맹국간에는 단일통화 ‘유로’를 도입하여 환율변동의 소지를 없애고 비기맹 EU국가들에 대해서는 소폭의 변동으로 환율을 안정시키고자하는 제도이다. 단일통화 ‘유로’에 대한 통화정책의 권한은 모두 유럽중앙은행(ECB)에 위임되어 있다. 이번 그리스 사태는 강세통화국 독일과 약세통화국 그리스를 하나의 단일통화권으로 묶어 동일한 통화정책을 쓰는데서 문제가 파생된 것이다.
5. 그리스의 구제를 통한 유럽 통합정신의 구현
현실적으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최선의 답이 아니라면 유로존에서는 그리스의 잔존을 통해 유로존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한다. 그러한 접근 방법이 전후 유럽통합의 기본 사상이다. 전후 유럽 국가들이 전쟁의 참상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의 유럽을 만들기 위해 1952년 석탄철강공동체(ECSC)와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발족시켰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독일과 프랑스가 이러한 공동체를 창설하게 된 배경에는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외상 로베르 슈만의 “ 통합을 통한 민족국가의 공존” 사상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합 시상의 계승을 통해 EEC는 점차 유럽 공동체(EC),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해 올 수 있었으며, 가맹국 수도 당초의 6개국에서 현재의 28개국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이러한 유럽공동체는 지난 60년 동안 비록 느리지만 꾸준히 확대, 심화의 길을 밟아 왔으며, 가입한 국가의 탈퇴나 조약에 명시된 통합체 기능이 후퇴하는 사례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유럽통합의 정신과 60년의 통합과정을 돌이켜 볼 때 그리스를 둘러싼 현재의 갈등 특히 독일과 프랑스간의 견해차, 남유럽과 북유럽 국가 간의 시각차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조정안은 현재 유로존의 운영방침과 결부시켜 볼 때 유로존 채권단의 규범준수 요구를 그리스가 수용하고 수용하고 그리스의 현실과 채무국의 의무를 최대한 촉구하는 선에서 구제금융의 타협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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