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박대통령이 국회법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느닷없이 국회를 싸잡아 비난하고 배신의 정치를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고 하였을 때 모든 국민은 당혹감을 금치 못하였다. 더구나 그 당사자가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그만큼 그 충격파는 컸고 또 우여곡절 끝에 결국 2주 만에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내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정치사에 또 하나의 비극으로 기록되면서 향후 우리나라의 정치발전과정에서 큰 과제를 던져주게 되었다.
우선 첫째, 이번 사건은 그 단초가 된 국회법개정안을 둘러싸고 삼권분립의 의미와 민주주의라는 것을 다시한번 성찰하게 한다. 몽테스큐에 의해 그 아이디어가 제기되고 미국이 독립하면서 제도적으로 도입한 삼권분립은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을 이룬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주의는 특정 위정자가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 그 핵심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과연 입법부가 행정부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여 삼권분립을 훼손한 것인지, 아니면 입법부의 고유권한인지는 헌법학자들 간에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는 입법 사법 행정 삼부 중에서 행정 우위의 정치구조를 유지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행정관료들이 비교적 우수한 집단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입법부인 국회가 매 4년마다 선거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전문성이 약하여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오는 불가피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미국에서처럼 입법부의 전문성이 축적이 되고 협상과 타협을 통한 여야 간의 정쟁의 소지가 줄어들면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이 강화되고 사법부는 법해석을 통하여 입법부와 행정부를 조정함으로써 정상적인 삼권분립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통령의 격노로 발단된 사단은 길게 보면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일어나는 행정부에서 입법부로의 권력이동이라는 현상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특정인을 ‘배신의 정치’로 낙인을 찍어 국민의 심판을 요구했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 행위였는지는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다. 국회의 원내대표는 각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여당대표로서 입법부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입법부의 핵심직책으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입법부의 주요 보직자에게 행정부를 대표하는 국무회의에서 질책, 비판하는 것이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을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다. 대통령은 개정안에 동의할 수 없으면 법에 보장된 거부권을 행사하면 되는 것이고 국회는 재의에 붙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가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지 않고 대통령의 도덕적 판단에 의해 특정인의 정치생명과 인격살인까지 하면서 그것도 국정을 논하는 국무회의에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우리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둘째,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직책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당의 원내대표는 무엇보다 국정의 다른 한 축인 야당의 원내대표와 의사일정을 비롯하여 입법안을 협의 아닌 합의를 통하여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국정을 원만하게 끌고 가야 하는 책무가 있다. 한편 여당의 원내대표는 집권당으로서 정부의 국정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입법을 통하여 뒷받침해야 할 책무도 있다. 여기에 여당 원내대표 역할의 양면성이 있고 고도의 정치력을 요하는 이유가 있다. 마치 양 쪽에서 잡아당기는 말을 양 팔로 끌려가지 않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곡예사의 역할과 흡사하다. 이번 국민연금개정법과 대통령으로부터 지탄받은 국회법 개정안의 동시 타결은 이러한 여당 원내대표의 어려움과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국회선진화법이란 환경 하에서 야당과 합의를 하지 않고는 어떤 법안도 사실상 통과시키기는 더욱 어려운 환경이다. 이러한 여당 원내대표의 고민과 어려움을 이해하기는커녕 배신이라고 국무회의석상에서 질타하는 모습은 아무리 국정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대통령이라도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의 원내대표로서 집권당의 국정목표를 잘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국무회의석상이 아닌 여당의 당청회의에서 거론 조정되었어야 하는 사안에 불과하다.
셋째,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이번에 결국 사퇴하게 된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로서의 역할을 살펴보기로 하자. 혹자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일개 국회의원의 신분이면 몰라도 원내대표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새누리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의원이 새누리당의 지평을 확대시켰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을 것이다. 즉 그는 원내대표 연설을 통하여 새누리당은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 받는 서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고 하였다. 그동안 박대통령이 선거 때 경제민주화, 복지 그리고 국민대통합을 공약하고서도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다시 우(右)클릭하면서 종래의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던 박대통령의 정치적 브랜드가 많이 훼손된 것을 유 원내대표가 추슬러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정치의 세력분포를 경제 안보 모두 보수인 우파, 경제-진보 안보-보수인 중도, 경제 안보 모두 진보인 좌파로 분류된다고 보면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좌표는 경제-진보 안보-보수의 중도에 둠으로써 많은 중도 세력을 새누리당으로 끌어들여 새누리당의 정치적 지평을 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박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세월호, 청와대 십상시 분란, 메르스를 거치면서 많이 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만은 오히려 야당에 비해 큰 폭으로 지지도를 유지하는 동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지향하는 유 원내대표를 새누리당이 내치면서 중도지지 세력이 대거 떨어져 나갈 것이 예상된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한 중도세력이 유의원에게 여권 대선후보지지 1위로 급부상시키는 지지세력으로 결집되고 있는 것이 여론조사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총선과 대선까지 많은 시간과 변수가 있겠지만 만약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번에 유 의원을 내친 것이 그 결정적 단초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마지막 네 번째로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가권력의 지배구조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현재와 같은 대통령중심제를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지배구조를 모색해야할지 이번 사태가 그 숙제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사임하면서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적 가치를 지켜야만 하고 그것을 현재의 권력구조로써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이번 사건이 던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