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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모두 틀렸다 (2)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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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6월11일 19시5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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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모두 틀렸다 (2)

 

학교폭력을 없애려면 엉터리 학교규율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은 작은 잘못에는 작은 벌을 주고, 큰 잘못에는 큰 벌을 주는 당연한 상식을 학교규율체계의 원칙으로 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아주 큰 잘못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그 어떤 일탈 행위보다 엄하게 다루는 것이 당연하다. 학교폭력 행위에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것에 대해 비교육적 대응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학교규율체계 전반의 균형을 생각한다면 그런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였다고는 하지만 다른 일탈행위에 대한 처벌에 비하면 여전히 수위가 매우 낮은 편이다. 

학교폭력의 경우 꽤 강한 강도의 학교폭력을 저질러야 퇴학처분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의 경우 대부분 흡연을 3-5회 하면 퇴학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흡연을 5회 하면 퇴학시키는 것으로 규칙에 명문화되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학교는 대부분 3회 흡연이면 퇴학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3-5회의 흡연’과 ‘높은 강도의 학교폭력’이 어떻게 동일한 정도의 잘못된 행위인가? 

물론 다른 규율체계를 그냥 내버려두고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만을 높여 규율을 강화해선 안 된다. 한편으로는 학생의 자유의사에 맡겨도 될 부분은 과감히 학생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방향으로 규율을 완화해야 한다. 

이렇게 학교규율체계는 규제를 강화할 것은 강화하고 완화할 것은 완화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학교의 규율은 전체적으로는 좀 온화할 수도 있고 엄정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학교에 따라 시대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온화한 규율 속에서도 엄하게 대응해야 해야 할 일은 엄하게 대응하고, 엄한 규율 속에서도 온건하게 대응해야 할 일은 온건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엉터리 학교규율체계의 강력한 지지자는 주로 보수 세력이었다. 그것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보수진영의 태도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교육감 직선제 이후 등장한 진보교육감들이 적극 시행한 ‘학생인권조례’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엉터리 학교규율제계를 바로 잡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성질의 것이었다. 경기도와 서울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 중에서 대다수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세 가지는 두발규제, 강제보충수업(강제자율학습), 체벌에 관한 것이다. 머리길이를 학생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것, 강제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시키지 않는 것, 체벌을 하지 않는 것 등은 선진국의 학교에서는 너무나 상식적인 일들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특히 앞의 두 개 사항은 당시에 아무런 유예조치 없이 즉각적으로 시행해도 학교현장에 아무런 혼란이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학생들 공부를 이유로 학생인권조례를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학생인권조례의 내용들은 입시공부에도 전혀 해롭지 않을, 어쩌면 입시공부에도 이로울 수 있는 일이다. 

나는 한 때 어느 입시명문학원의 강사였다.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인해 교사임용을 받지 못해 학원에 취직했었다. 김대중 정부 때 특별법이 제정되어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교사가 된 후 나는 학교의 수많은 모습들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특히 내가 분노했던 것은 입시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걸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의 입시공부에도 해로운 행위들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들은 상당부분 고루한 인습, 시대착오적 편견, 사적인 이익 추구에서 비롯된 행위에 불과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두발규제였다. 머리카락이 공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일 것이다. 내가 알기론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머리카락을 어느 정도나마 기른 학생들은 수재 중의 수재가 모인다는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단속하는 일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두발단속 하는 일이 정규수업이나 학생인성지도보다 더 중요한 일로 여기지는 듯했다. 심지어는 두발단속 잘하는 교사가 수업과 인성교육 잘하는 교사보다 더 유능한 교사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학교가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잘못 설정되어 있었고, 교사의 유능함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왜곡되어 있었다. 나의 관점에서 두발자유화는 학생의 인권보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규수업과 인성교육이라는 학교 본연의 일에서 학교가 더 유능해지기 위해 시급히 필요한 일이었다. 두발 규제만큼이나 내가 분노했던 것은 강제보충수업이었다. 내 판단에 강제보충수업은 학생들의 입시공부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 혹시 내 판단이 잘못되었을지도 몰라 나는 내가 고3보충수업의 실무담당자였을 때 체계적인 조사까지 해보았다. 나름대로 객관성의 유지에 최선을 다한 나의 조사 결과는 모든 강제보충수업이 입시공부에 해롭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보충수업이 공부에 도움이 된 정도를 마이너스 5점에서 5점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조사를 했었는데 모든 강제보충수업의 평균 점수가 항상 마이너스가 나왔다. 원하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보충수업만이 평균점수가 플러스였다.

 

학생에게 적용되는 학교의 불필요한 규제들은 교육적으로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학교교육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 학생들이 학교를 싫어하게 만들고, 교사들을 고리타분하게 여기게 만들고, 교사들을 우습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관습이기에 끈질긴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엉터리 학교규율에 본격적인 메스를 댄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였다. 어떤 사람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으로 학교규율체계가 변하는 것에 불만을 갖겠지만, 나로서는 ‘학생인권조례’ 정도로는 힘이 약해서 학규규율체계를 충분히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불만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인권조례’의 취지를 발전시켜 국회에서 ‘학생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이명박 정부(교육부)와 보수진영은 어떤 행태를 보였는가. 그들은 침소봉대하여 학생인권조례를 비난하고 어떻게든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을 저지하려 했었다.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실제적 조치를 취한 것은 보수진영이었다. 그 조치들은 학교현장에서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진보진영은 학교폭력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입시교육이 존재하는 한 학교폭력을 줄일 수 없다는 등의 공리공론에서 빠져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중요한 원인인 엉터리 학교규율체제를 만들고 유지한 세력은 주로 보수진영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보수진영은 여전히 그 엉터리 학교규율체계의 골간을 계속 유지하려는 듯 행동하고 있다.

학교규율체계가 정상적이려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작은 잘못엔 작은 처벌을, 큰 잘못에 큰 처벌을 내려야 한다. 그러려면 학생인권조례의 취지와 정신은 학교규율에 대폭 반영되어야 한다. 마차가지로 학교폭력에 대해 엄하게 대응하려는 취지와 정신도 학교규율에 대폭 반영되어야 한다.

 

이글의 시작을 ‘진보와 보수는 모두 틀렸다’라는 말로 했지만, 보수와 진보는 모두 타당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양 진영은 왜 상대방의 타당한 점을 서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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