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문제의 배경 및 해법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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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중한 사교육비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 난제 중 하나다. 그 폐해는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 두루 편재해 있다. 이 때문에 그간 숱한 대책들이 강구되었지만 부작용만 유발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문제의 해결을 오히려 더 어렵게 한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무엇보다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그릇된 진단을 바탕으로 임기응변적 대증요법을 남발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략하게 그 논거와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자한다.
사교육 수요의 본질 및 배경
한국의 사교육 수요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 내재되어 있다. 성적이 우수하고 가정배경이 좋은 학생들일수록 사교육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는 사교육 수요가 남보다 앞서 가겠다는 동기에 의해 추동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선행 학습 성격의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개 가정환경이 어렵고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이 보충교육을 통해 성적 향상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다.
사교육 수요가 남보다 앞서 가기 위한 목적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 양상 및 이에 기인한 ‘불안의 미만(彌滿)’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의 기회구조가 매우 제한적이고 패자부활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풍토에서 대다수 학부모와 학생은 명문대 진학을 유일한 신분상승의 통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대학입시는 철저하게 상대평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 경우에 명문대 진학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자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성적을 얻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다. 비교적 학습여건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들이 일반고 학생들보다 사교육에 더 활발하게 참여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법이 되기 어려운 잘 가르치기 경쟁
그간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사교육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해법의 하나로 공교육의 교육력 강화를 제시하곤 했다. 학원에 비해 학교가 잘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사교육을 찾는 만큼 교사들이 좀 더 분발한다면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 수 있으리란 연유에서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교사들 간에 잘 가르치기 경쟁을 유도하는 것만으로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단선적이고 그릇된 판단에 기대어 설익은 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사교육 수요의 억제를 기대하며 도입했던 자사고나 입학사정관 제도가 오히려 사교육 수요를 조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단순히 학교가 학생들을 잘 가르치도록 하는 것만으로 사교육 수요를 줄이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교사들이 무기력에 빠진 채 학생들을 지도한 결과, 전체 학생의 절반 정도만 평균 70점 이상을 얻게 되었다고 하자.그런데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서 교사들이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친 결과, 대부분의 학생이 평균 70점 이상을 얻게 되었다면 사교육 수요가 감소할 수 있을까? 다른 조건이 불변인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성적만 좋아진다면 사교육 수요는 오히려 증가할 공산이 크다. 이 경우에 실력 부족을 절감하여 경쟁에 참여할 의지를 아예 상실한 학생들이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반면, 한층 치열해진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고득점 방안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사교육 수요를 잡기 위해 섣부르게 제도의 변개를 시도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써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한층 심화시키게 될 것인 바,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
외환위기와 초저출산 현상도 사교육 수요 증가에 일조
외환위기와 초저출산 현상도 사교육비 경감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음 직하다. 외환위기를 경험한 많은 학부모들은 적어도 자식은 자신들처럼 불안하게 살지 않도록 남다른 경쟁력을 갖추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살아왔다.이 때문에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과거 어느 세대보다 사교육 투자에 열성적이었고, 때로는 기러기 가족으로서의 신산한 삶도 기꺼이 감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초저출산 현상도 사교육에 대한 조기 참여와 지출 증대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통해 생존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가족주의는 자녀들의 사회적 성공과 출세를 중시하는 공리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게 되었다. 여기에 자녀를 하나 정도만 갖는 초저출산 현상이 결합되면서 자녀에 대한 ‘다걸기(all in)’ 식 투자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성패를 자신들의 인생의 성패와 직결시키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국 유아 대상 영어학원 가운데 학원비가 100만 원 이상인 곳이 지난 3년 동안에 2.8배 증가했다고 한다.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사교육에 대한 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감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대안의 제시 필요
앞서 밝혔듯이, 공교육 강화가 사교육 의존도 약화로 직결되기는 어려운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공교육이 지금처럼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학부모의 과도한 사교육 의존증이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교사들이 좀 더 열정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다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자녀의 미래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우선 학부모나 학생이 믿음을 갖고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대학들의 폭을 넓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돌이켜보면, 서울의 웬만한 대학보다 지방 거점대학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우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몰려들면서 사교육 수요가 크게 증가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학부모나 학생에게 선택의 범위를 넓혀줄 필요가 있다. 이는 계층 간․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에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한 줄 세우기 교육의 탈피 및 사회이동 통로의 다변화를 통해 제한적 기회구조의 확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지금처럼 명문대 진학만이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믿음이 강고하게 남아 있는 한, 사교육 수요의 감소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학생들이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꿈을 키우며 행복한 학교생활을 영위할 때 궁극적으로 응분의 삶의 기회도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배전의 관심과 노력을 쏟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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