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87> 박남수 시인 생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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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80년을 지나고 있다. 우리가 겪어온 해방 80년의 세월 속엔 온갖 풍상들이 뒤섞여 있다. 특히, 1950년에 발발한 6. 25의 참상과, 그 속에서 ‘월남 시인’들이 겪어내야 했던 어려움의 세월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해방을 전후 한 시기로부터 6. 25 사변의 격랑 속에서 북의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거주지를 옮긴 시인들이 많았다. 이른바 ‘월남시인’. 북의 생활 근거지를 모두 버리고 낯선 곳, 남한으로 월남한 시인들이 낯설고 물 설은 남쪽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생활 터전을 마련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도 힘든 일이었다.
가령, 박남수 (1918~1994) 선생 같은 분은 1940년 『문장』지에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했고, 일본 중앙대학의 법문학부를 졸업한 어엿한 학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남한 사회에서 일정한 직장 없이 떠돌았다. 몇 개 대학의 시간강사를 전전했으며, 일반 회사의 사사(社史)등을 집필하면서 어렵게 생활을 이어 갔다.
“같은 피난민이지만 남쪽 사람들은 그냥 피난민이라고 불렀지만 월남 피난민은 삼팔따라지라고 불렀다. 거지라는 뜻이다”
박남수 선생이 김광림 선생에게 보낸 사신에 적은 말이었다고 한다. 박남수 선생의 이 말 속엔 북의 고향을 버리고 월남한 사람들이 남쪽 사회에서 받았던 냉담한 처우를 담고 있는 듯해서 가슴이 시려온다. 박남수 선생은 1951년 1. 4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 하였다. 시집 『갈매기 소묘』는 철저한 객관의 눈으로 존재의 위기를 표출해 낸 시집이다.
휘딱 / 물 면(面)을 때리고 / 가다듬으면 / 놀라운 / 푸름./ 갈매기는 / 파랗게 / 질려 / 파란 갈매기. / 면(面) 위에 /갈매기는 혼자 / 있었다.
-<갈매기 소묘. 5>
피난 시절, 그가 처했던 위난의 삶이 “파랗게 / 질려 / 파란 갈매기”로 표현되어 있다. 나는 박남수 선생에게서 <문장론>, <희곡론>등의 강의를 들었다. 한양대 강의실에서. 이따금 무교동 근처에 있던 경성방직 사무실엘 들르기도 했었다. 거기서 선생은 경성방직의 사사를 집필하고 계셨다. 시인의 호구지책이었을 것이다.
1975년 선생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시인이 모국어권을 떠난다는 건 유별난 의미를 지닌다. 시인은 언어로 느끼고 사유하는 사람이며, 언어로 존재를 밝혀 올리는 특이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모국어권을 떠나 미국 사회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려고 고국을 떠난 것이다.
1.
눈총의 난타를 맞으며 / 실의를 부끄러움으로 바꾸어지고 / 돌아오는 금의환향의 입구를
몰래 빠져나가는 좁은 출구에서 / 손 한번 흔들지 못하고 / 비틀거리며 비뚤어진 다리를 옮긴다// 인사는 못하고 떠나지만 / 통곡하며 갔다고 전하여다오
2.
언어를 캐던 하얀 손으로는 / 석탄도 소금도 캐기는 어렵지만 / 생활의 물결의 높낮이에, 어쩌다 / 솟아보는 머리를 쳐들고 / 새처럼 날아보았으면 /새처럼 날아보았으면 /그만 둘 직장도 없는 /정년퇴직의 나이를 꽃지게에 지고 간다
3.
웃지 말라, 꾸짖지도 말라 /쉽게 이야기하지 말라 /때리는 채찍은 장난이겠지만 /맞는 개구리의 배는 /생명과 이어지는 아픔 /한 사람의 깊은 아픔은 누구도 달래지 못한다 /안녕은 못하고 떠나지만 /잊지 않을 거라고 전하여다오
- <안녕 안녕>
고국을 떠나는 심경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웃지 말라, 꾸짖지도 말라 /쉽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그의 술회 속에 남한 사회의 배타성을 견디기 어려웠던 삶의 일상이 진하게 녹아 있다. “안녕은 못하고 떠나지만 /잊지 않을 거라고 전하여다오” 가슴 아픈 이별사이다.
박남수, 김종삼, 김규동, 전봉건, 김광림 시인 같은 분들은 모두 북에 고향을 둔 시인들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 현대시문학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쌓은 분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분들의 거의 대부분이 남한 사회에서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든든한 직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며,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는 것이다. 든든한 직장은 남쪽 사람들 차지였다. 빠르게 남한 사회의 풍토와 속성을 익힌 사람들은 시장거리 상인으로 나서서 재산을 쌓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언어로 자신을 살려내는 일이 유일한 자기 구현 방식이었던 월남 시인들은 잡지사나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힘든 삶을 살았다. 나는 이들 ‘월남시인’들이 작품 세계를 남한사회에의 정착 환경’과의 연관성을 토대로 규명한 논문을 한편 쯤 써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문학사회학’적 관점이 유용한 분석의 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박남수 시전집』(전2권.1998)은 내가 봉직하던 한양대학교 출판원에서 출간되었다. 박남수 선생 작고 후 재정 형편이 여의치 못해 출간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학교 당국에 의견을 내서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전집에는 선생이 평생동안 쓴 시 모두가 수록되어 있다. 박남수 선생은 1994년 미국 땅에서 별세하셨다. 고향을 버리고 남한으로 월남했다가 다시 고국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떠나 낯선 타국 땅에 몸을 묻은 박남수 선생이 광복 80년, ‘월남시인’들이 겼었던 비극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박남수 선생은 고국을 떠나서도 그의 모국어로 『서쪽, 그 실은 동쪽』(1992),『그리고 그 이후』(1993),『소로』(1994)등의 시집을 펴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나오는 시집들이다. 이제 선생의 넋은 훨훨 날아 고향 땅에 들르시리라. 광복 80년, 어서 통일이 되었으면…. 박남수 선생이 그립다.
<사진: 박남수 전집. 본인의 주선으로 한양대학교 출판원에서 간행되었다.>
< 사진: 박남수 선생과 현대시 동인들. 왼쪽부터 오세영. 이수익. 김종해. 박의상. 이승훈. 이유경. 이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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