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으로 근로자 생계를 보호할 수 있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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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산을 겪은 2017년의 최저임금 결정
최근 엄청난 진통을 겪은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6,470원으로 결정되었다.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는 노동계와 동결을 주장하는 경영계가 이번처럼 심각하게 충돌한 것은 예년에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한 근거는 현재의 최저임금을 월 임금으로 환산하면 1,260,270원(주당 8시간의 유급주휴에 대한 수당 포함)이 되는데 이로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경우 임금 및 소득 양극화가 상당히 심각하지만 이때까지 경제성장을 통한 양극화 해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이에 최저임금의 인상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여야 한다는 논의도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한 하나의 근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소득분포 악화
소득불평등의 악화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20 국가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대부분 1%대의 증가만을 기록하였다. 특히 G20 국가 중에서도 선진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2008년 이후 사실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구체적으로 2007년에서 2012년의 기간 동안 G20 선진국들 중 호주와 캐나다만이 각기 7.3%와 4.3%의 실질임금 상승을 경험하였을 뿐 다른 국가들은 실질임금 상승률이 2%대에 미달하였다. 한국은 같은 기간 중 실질임금이 0.8% 늘어났고,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은 실질임금이 도리어 감소하였다.
실질임금의 정체는 경제성장에 따른 생산성의 향상이 실질임금의 상승 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국민소득 중 근로자가 가지고 가는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피용자보수/(피용자보수+영업잉여))이 하락하게 된다.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은 다시 계층 간 임금 및 소득분배의 악화를 가져온다.
소득불평등의 확대와 근로빈곤의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으로 G20 국가들은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사회안전망을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2007년에서 2012년 사이 12개 국가에서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의 비율이 상승하였고, 실업급여와 더불어 빈곤계층에 대한 소득지원이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개선되고 있는 한국의 소득불평등
하지만 한국은 노동소득분배율이 2010년을 제외하고는 2010년대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노동소득분배율과 더불어 지니계수 등의 소득불평등지표가 개선되고 있다. 이러한 소득불평등의 개선은 최저임금의 상승 때문이기 보다는 보건 및 복지 분야의 일자리 창출과 조세 및 복지를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 등에 기인한 것이 명확하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 및 조세복지정책을 통해 소득불평등의 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등 임금정책은 일자리 감소라는 부정적 효과와 더불어 실업의 증가로 인한 소득불평등 확대가 우려된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부작용만 초래
최저임금 상승의 고용효과에 대해 대부분의 연구들은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을 줄인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으며, 가장 최근의 연구인 이정민(2015)에 의하면 최저임금이 1% 상승하면 고용은 주당 44시간 일자리를 기준으로 약 0.14%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최저임금의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기업이 업무효율화 등 생산성 증대로 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최저임금 상승률이 임금상승률보다 훨씬 높고, 임금이 최저임금에 의해 결정되는 근로자가 임금근로자의 18.2%(2016년)나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더 이상의 급격한 최저임금의 상승은 기업이 생산성 향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가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핵심과제 중 하나는 임금과 생산성이 일치하도록 임금을 조정하고, 성과와 직무에 바탕을 둔 임금시스템을 도입하며, 임금유연화를 통해 대기업‧정규직의 제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제2차 노동시장의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노동시장 구조개혁 노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임금은 생산성과 임금이 일치하도록 시장기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임금 및 소득불평등은 근로장려세제와 복지정책,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일자리창출은 일자리 질의 개선을 통해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생계비와 최저임금의 결정
현행 최저임금법 제4조, 제5조, 제8조에서는 근로자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네 가지 통계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생계비는 <표 1>과 같이 미혼단신노동자 실태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생계비 기초자료에 미혼단신근로자 생계비뿐만 아니라 가구생계비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현행 미혼단신노동자 실태생계비에서 가구생계비로 기준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고, 가구생계비로 기준을 변화하였을 때 어떤 가구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현행 제도의 유지를 주장한다.
특히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부양 자녀 또는 배우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저임금으로 가구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의 일부 공익위원들도 이러한 노동계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여 ‘다양한 가구 유형별 최저생계비와 가구 유형별 비중, 특히 가구원이 2인 이상이면서 최저임금 혹은 저임금근로자 1인 소득자만 존재하는 가구 등을 생계비 통계분석 내용에 포함시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익 의견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최저임금 근로자의 대부분은 청년이나 여성 및 고령자로 가구의 주 생계소득원이 아니다. 비록 이들은 최저임금을 받지만 다른 가구원도 돈을 벌기 때문에 최저임금 근로자라고 해서 반드시 빈곤가구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년 아르바이트 일자리이다. 실제로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저임금 근로자의 약 30%만이 빈곤가구에 속하여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저임금의 생계비 기준을 현행 미혼단신근로자에서 2인 가구로 확대하였을 때, 최저임금으로 생계가 가능한가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즉, 4인 또는 5인 가족의 경우에는 가족 중 한 명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고 해서 생계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의 결정에 가구생계비를 반영하자는 주장은 최저생계비 인상을 위한 편법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최저임금을 통해 가구의 생계를 보호하려는 시도는 실업의 증가와 같은 부작용만으로 초래할 것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작동하여야 하며, 근로빈곤과 같은 가구의 생계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현행 근로장려세제의 확대 개편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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