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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시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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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7월07일 18시15분
  • 최종수정 2016년07월07일 18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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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을 배려하지 않는 국가기관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높은 권위를 가진 국가기관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우리는 이러저러한 비용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소요되는 비용이 무시할 만큼 작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2.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수험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물론 교사에게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을 출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평가원은 하늘과 같은 존재다. 

 

평가원은 1년에 2차례의 수능모의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평가원이 출제하는 이 모의시험은 다른 그 어떤 수능모의시험보다도 중요하다. 고3학생은 물론 재수생들도 큰 관심을 갖는다. 평가원이 출제하는 수능모의평가는 사실상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치르는 시험이다. 지난 6월 2일에는 평가원 수능모의평가에 전국 2049개 고교와 413개 학원이 참여했다. 사실상 수험생 대부분이 시험을 치렀다. 학원에서 시험을 치를 수 없는 재수생은 어떻게 할까? 그런 학생은 모교로 찾아가 시험을 치른다. 평가원이 출제하는 모의시험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졸업생들에게 편의를 봐준다. 이렇듯 평가원이 출제하는 수능모의시험은 중요하다.

 

그런데 평가원이 출제하는 수능모의시험에는 해설이 없다. 달랑 정답지만 제공될 뿐이다. 

 

나는 시험이 끝난 후 나는 아이들에게 해설지가 없어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공부깨나 한단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불평한다.

 

“ 왜요? 왜 없는 거예요?” 

“ 평가원 모의고사는 원래 없는 거예요?”

“ 계속해서, 처음부터 없었던 거예요?”

 

왜 없을까? 다른 수능모의시험도 그런가? 그렇지 않다. 평가원 모의시험보다 더 자주 치러지는 교육청 연합의 수능모의시험에서는 학생들에게 정답지뿐만 아니라 해설지가 제공된다. 대형입시학원들이 출제하는 사설 수능모의시험도 마찬가지다. 

 

비용의 부담 때문은 절대 아니다. 해설지를 제공함으로써 추가되는 예산은 거의 무시할만한 수준이다. 아마도 시험에 필요한 전체 예산의 0.1%에도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문제에 대한 해설을 쓰는 것이 문제를 출제하는 교수와 교사들에게 부담되는 일도 아니다. 출제 경험이 있는 교사에게 물으니 약간 귀찮기는 하겠지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 한다. 

 

3.

 해설이 없으면 학생들은 불편하다. 

 

 해설지가 제공되지 않아도 학생들은 교사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모르는 모든 문제를 교사에게 질문하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매우 귀찮은 일이다. 교사가 정규수업 시간에 문제 해설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모든 교사들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도 아니다. 정규 수업은 정규 수업 나름의 수업 진도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마다 해설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문제 해설이 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들 과정은 적어도 며칠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시험문제에 대해 갖는 관심과 궁금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현저히 약화된다.

 

물론 해설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런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내용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

 

학생들의 불편함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은 공교롭게도 사교육 업체다. 나름 힘깨나 쓴다하는 대형입시학원들은 평가원 모의시험이 끝나자마자 재빠르게 해설집을 만들어 학원 수강생들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인근의 학교들에게 그 해설집을 보내준다. 광고효과 때문이다. 학원에서 제공한 해설지로 공부한 학생들이 학원에 조금이나마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4.

정부의 사교육 대책은 열성적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사교육 대책을 열심히 내놓고 있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못 내서 그렇지 그 노력만큼은 높이 사주어도 된다. 나로선 정부를 향해 이제는 사교육에 정신을 그만 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사교육보다 오히려 더 나쁜 효과를 내는 정책들이 사교육을 빌미로 시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교육의 감소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마당에 평가원이 수능모의평가 해설지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해설지가 없음으로 해서 상당수 학생들이 사교육이 제공하는 해설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사교육에 그만큼 더 친숙해지고 있다. 물론 해설지를 제공한다고 해서 사교육이 눈에 띠게 감소할 리는 없다. 이로 인한 사교육 감소효과는 무시해도 좋은 만큼 작다. 

 

그러나 그 대신 해설지 제공은 매우 쉬운 일이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작은 예산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복잡한 일도 아니다. 출제에 참여한 교수와 교사들이 문제를 출제하는 김에 해설까지 쓰면 해결되는 간단한 일이다. 

 

5.

평가원은 학생과 교사를 배려하는 국기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는 9월에도 평가원이 출제하는 또 한 차례의 수능모의시험이 있다. 이 시험에서는 학생들에게 해설지가 제공되었으면 좋겠다. 나아가 11월에 있는 수능 본 시험 때에도 평가원은 정답만이 아니란 해설을 발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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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7월07일 18시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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