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과 대학입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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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몇 년 대학입시 최고의 화두는 단연 학생부종합전형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시험성적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객관적인 시험성적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시험성적 이외의 것도 중요하다. 교사가 작성한 학교생활기록부의 다양한 기록이 그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데에는 교사의 주관적 판단이 필연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입학사정관이 그것을 해석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교사와 교수(입학사정관)의 주관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입시전형이다.
엄밀한 객관성을 중시해온 우리나라 입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그 위상을 급격히 높여가고 있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그것은 학부모와 학생이 고교(교사)와 대학(입학사정관)을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신뢰할 때만 가능한 입시제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보모와 학생이 교사와 입학사정관을 높은 수준에서 신뢰하고 있는가?
2.
한때 우리나라 학교에는 촌지가 극성을 부린 시절이 있었다. 많은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바쳐야할 촌지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촌지를 주는 사람만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다. 촌지를 주지 못하는 사람은 더 큰 고통을 겪어야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가 자신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전교조 교사들이 촌지거부운동을 펼쳤을 때 우리 국민이 보였던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생각해보면 촌지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촌지는 더 이상 우리교육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제 촌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학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촌지를 주지 못했다고 불안해하는 학부모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의 체험을 일반화하면 학교 사회에서 촌지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물론 이것은 지나친 일반화일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지역과 학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촌지가 더 이상 우리교육의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한때 스승의 날은 학부모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날이었다. 5월 15일 스승의 날 즈음이 되면 많은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줘야할 선물 때문에 마음의 부담을 느꼈다. 언론에서는 스승의 날 즈음에 학부모들이 느끼는 고통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했었다. 스승의 날을 없애야 한다거나 스승의 날을 학년 말인 2월로 옮겨야 한다거나 하는 다양한 주장들이 난무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언론은 스승의 날에 느끼는 학부모의 고통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나는 스승의 날 즈음해서 의식적으로 몇 개 신문을 샅샅이 살펴보았었다. 스승의 날 선물 얘기를 하는 기사나 칼럼을 찾아 내지 못했다. 왜 언론이 그런 얘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일까? 스승의 날에 교사에게 선물을 주는 관행이 현저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다시 나의 체험을 일반화한다면 스승의 날은 더 이상 학부모가 교사에게 선물 주는 날이 아니다.
그동안 학교 사회의 청렴도는 급격히 향상됐다. 만약 지금도 학교에 촌지가 판을 치고 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촌지를 주지 못하는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불안해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은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학교 사회의 청렴도는 현저히 더 높아져야 한다. 김영란법은 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학교는 청탁급지법 적용대상 기관으로 교직원 모두가 청렴한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물질이 아닌 마음으로 감사하는 문화정착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우리학교 출입구 앞에 세워진 안내문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후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동안 학부모들은 상담을 하러 담임교사를 만나러 학교에 올 때 음료수나 빵 등을 사오는 경우가 많았다. 김영란법의 제정으로 인해 이제 그러한 행위는 불법이다. 학부모는 이제 학교에 빈손으로 와야 한다.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도 교사에게 선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법의 취지에 의하면 교사에게 커피를 사주어도 안 된다고 한다. 내 주위의 교사들은 대체로 김영란법을 수용하는 편이다. 노골적인 반대나 비판은 거의 없다. 김영란법은 학교 사회의 청렴도를 현저히 높일 것이다.
내가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날은 11월 11일이다. 빼빼로 과자를 선물로 주고받는 빼빼로 데이라는 날이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학생회임원들이 찾아와 빼빼로 과자를 준다. 학생회에서 교사들을 위해 빼빼로 과자를 주는 이벤트를 마련했단다. 과자를 주면서 학생들이 한마디 덧붙인다. “선생님 이것은 김영란법에 안 걸리는 겁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학생회 지도교사가 김영란법 저촉 여부를 다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아내와 얘기하다 보니 다른 학교는 상황이 좀 달랐다. 아내의 학교는 김영란법에 어긋난다 하여 교사들이 학생들이 사온 빼빼로 과자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여기서 빼빼로 과자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김영랍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교사와 학생이 김영란법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학교 사회의 청렴도는 현저히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4.
그동안 우리의 입시는 객관성에만 너무 치우쳐 왔다. 그래서 객관식선다형 시험이 입시의 주류를 이뤄왔다. 그 결과 우리교육은 편협하고 왜소해졌다. 객관식선다형 시험이 지배하는 교육은 저차원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교육이 여기서 벗어나려면 교사의 주관적 판단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무서워 객관식선다형 시험만을 숭배하면 우리교육은 영원히 저차원성을 벗어날 수 없다. 학생부종합전형은 교사와 입학사정관의 주관적 판단이 작용하는 입시전형이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우리교육은 객관식선다형 시험으로 인한 저차원적 교육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려면 고교와 대학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돈과 권력의 힘에 의해 학교생활기록부가 좋게 작성되거나 해석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신뢰가 쌓여야 학생부종합전형이 존립할 수 있다. 그것은 학생부종합전형이 존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학생부종합전형의 존립에 필요한 그 최소한의 요건을 어느 정도는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김영란법이 뿌리를 내리면 그 요건은 보다 더 굳건해질 것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은 그 하나만으로도 크게 분노할만한 일이다. 철저하게 수사하고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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