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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사법화, 그리고 헌법재판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4월15일 20시0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29분

작성자

  •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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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정치의 사법화, 그리고 헌법재판소

 

  ‘정치의 사법화’라는 화두가 최근에 학계나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국회와 같은 국민 대표들이 모인 정치기관에서 정치적 쟁점들이 해결되지 않고 헌법재판소와 같은 사법기관이 이러한 역할을 대신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가 세계적 추세이기는 하다. 전 세계적으로 헌법에 입각한 통치를 강조하는 ‘입헌주의’나 ‘실질적 법치주의’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정치의 사법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너무 급격하게 또 극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들이 많다. 여러 정치적 쟁점들로 인해 정치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여야는 국회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 국민이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국정운영을 대신 맡긴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는 이제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여야간의 진지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기 보다는 법안의 국회 통과를 기다렸다가 법률이 공포·시행되기가 무섭게 이를 헌법재판소로 가져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회가 아니라 헌재가 정치적 사안의 해결기관이 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사법화’의 제1차적 책임은 분명 국회 스스로에게 있다. 국회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에게 부여된 핵심적 권한을 헌재에 떠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2차적 책임은 헌법재판소와 같은 사법부에게도 있다고 믿는다. 사법부는, 특히 헌재는 어떻게 해서든 국민 대표인 국회에게 그 해결을 맡겨놓는 것이 더 바람직한 정치적 분쟁에 너무 조급하게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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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정치의 사법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세 사건

  헌재에 의한 극단적인 ‘정치의 사법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세 사건을 꼽으라면 2004년 5월 노무현대통령 탄핵 기각결정, 같은 해 10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결정, 작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들 수 있다. 탄핵에 이어 정당해산에까지 헌재가 간여함으로써 이제 헌재는 헌법에 규정된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권한쟁의, 탄핵, 정당해산심판의 다섯 가지 권한을 모두 다 사용한 셈이 되었다. 물론 헌법에 규정된 권한을 헌재가 사용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리고 탄핵사건이나 정당해산사건의 경우 국회가 소추하고 행정부가 제소를 했는데 어떻게 헌재가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있느냐고 되물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헌재는 이들 사건에 제소요건을 엄격히 적용해 그 불충족을 이유로 얼마든지 ‘각하’할 수 있었고, 그래서 헌재 스스로가 정치적 분쟁의 중심에 서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의 경우 국회의 탄핵소추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위반한 바 있었고, 통합진보당 사건에서도 정부에 의한 정당해산심판 제소 결정시 대통령이 해외 순방중이라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해 나중에 전자결재가 이루어졌으므로 이를 이유로 각하결정을 내릴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사건의 경우는 더더욱 무모하다. 위헌결정의 실질적 근거로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든 것은 두고두고 헌법학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과 ‘정치적 문제의 원칙’

  이에 비해 오랜 사법적극주의의 역사를 간직한 미국 연방대법원은 일찍이 ‘정치적 문제의 원칙’(Political Question Doctrine)이라는 법리를 개발해 정치적 사건에의 개입을 사법부 스스로 자제하는 지혜를 발휘해 오고 있다. 선거구 획정에 있어서 의원정수 배분의 불균형이 문제가 된 1962년의 ‘베이커 대 칼’(Baker v. Carr)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정치적 문제의 원칙’의 적용을 가능케 하는 여섯 가지 요소들을 나열하였다. 첫째, 그러한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는 입법부나 행정부에서 다룬다고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한 경우, 둘째, 법원에 의해 발견되어지고 다루어질 수 있는 기준들이 결여된 경우, 셋째, 비사법적(非司法的) 자유재량에 의한 최초의 정책적 결정 없이는 판단이 내려질 수 없는 경우, 넷째, 입법부나 행정부에 대한 불경(不敬)을 범하지 않고서는 법원이 독립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 다섯째, 이미 내려진 정치적 결정에 대한 절대적 추종이 특히 필요한 경우, 여섯째,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여러 기관이 각기 다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앞에서 열거한 우리 헌재의 세 사건들을 여기에 적용하면 전부 ‘정치적 문제의 원칙’의 적용을 받아 각하될 수 있는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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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에게 요구되는 ‘절제의 지혜’

  ‘정치의 사법화’는 곧 ‘사법의 정치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차분하고 논리적인 법리적 분석에 근거한 ‘법리적 판단’보다는, 헌법재판관들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서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여기에 갖가지 이유들을 끌어다 붙이는 ‘정치적 판단’이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사건에 무모하게 뛰어들기 보다는 소수자·약자의 권리 보호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 ‘선거’로 뽑히지 않고 ‘임명’되는 헌법재판관들이야말로 다수의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인권 신장을 앞당기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인적 구성에 다양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헌법재판소에 의한 ‘정치의 사법화’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더 치명적일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헌재에게 ‘절제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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