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노동시장개혁에 성공하려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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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정부의 국정 추동력은 약화되었다. 이제 야당의 협력 없이는 새로운 입법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새로운 입법은커녕 야당은 여대야소 시절에 입법한 법률까지 수정하고자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시장개혁을 계속 추진할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 개혁은 지난한 과제이다. 대통령이 노동시장개혁의 필요성을 변함없이 주장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국민은 과연 그 필요성에 공감할까? 지난해 「9.15 대타협」으로 노동시장개혁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국민 사이에 확산되었으나, 금년 1월 19일 한국노총의 대타협 파기 및 노사정위원회 불참 선언으로 개혁의 동력은 실종되고 그 성공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냉소적이고 국민은 무관심해진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여당이 자초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부·여당은 「9.15 대타협」 이후 합의 내용을 벗어난 무리한 입법을 추진하였다. 여당은 대타협 바로 다음 날 5대 노동개혁 입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상법, 기간제법, 파견제법)을 발의하였고, 이 가운데에 기간제법과 파견제법 개정은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대해온 것이었다. 노동계의 반대 때문에 「9.15 대타협」은 이들 두 가지 법과 관련해서 구체적 개정 내용을 담을 수 없었고, 향후 이를 개정해나가기 위한 과제와 절차 등을 적시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한편 정부도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대해온 두 가지 지침(취업규칙 변경 및 저성과자 통상해고 관련)의 제정을 서둘렀다. 특히 통상해고 관련 지침은 그 구체적인 내용 여부를 떠나 노동자에게 해고의 공포를 불러왔고, 노동개혁 내용 가운데 이른바 killer contents의 핵심이었다. 이 지침은 민주노총이 노동개혁을 ‘더 쉬운 해고’를 위한 것이라 규정하는 주된 근거가 되었고, 이를 근거로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개혁을 거부하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노동계의 강력한 저항과 야당의 반대에 직면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금년 1월 13일 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4법의 조속한 개정을 당부하는 방향으로 한발 물러섰으나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직후인 19일에 한국노총은 대타협 파기 선언을 하였고, 22일에는 정부가 해고 및 취업규칙 관련 새로운 지침을 시행하였다.
이제 총선 후 정치적 여건이 더 나빠진 상황에서 정부는 노동시장개혁을 추진하고자 한다. 노동시장 개혁 그 자체는 시대적 당위성을 지니고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후진적인 노동시장으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어려울 뿐 아니라,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사람」을 성장 동력으로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시장개혁은 일자리와 성장을 위한 이 시대의 국가프런티어 개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왜곡된 노동시장 구조는 고용불안과 임금 차별로 고통 받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동시장개혁은 노동시장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노동시장 개혁은 박근혜 정부의 과제가 아니라 시대의 책무이다. 왜냐하면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음 정부가 맡아서 추진할 수밖에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노동시장 개혁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 목표를 분명히 하고, 노동계와 국민의 공감을 획득해야 한다. 노동시장개혁은 노동자들이 불안해하는 ‘더 쉬운 해고’를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시장개혁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위한 것임을 명확하게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의 내용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전략은 「9.15 대타협」에 이르기까지의 대화와 타협 방식을 복원시키고, 이를 위해 한국노총이 대화에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파견제법 개정을 분리해서 다루는 것이다. 즉 개혁의 1단계로 노사정 사이에 매우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관련 규정을 바꾸는 것이다. 이와 함께 노사정 사이에 큰 이견이 없는 고용보험법과 산재보상법을 포함하여 노동3법을 동시에 개정하면 1단계 개혁으로 손색이 없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노사정 대화가 복원되고,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3법이 개정된다면 지금의 상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은 전략적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노동시장 개혁이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기간제한 연장,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파견 업종 제한 완화 등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정규직 임금체계를 보다 탄력화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뛰어넘어 ‘동일노동 공정임금’(비정규직에게 고용 및 복지 측면에서의 불이익을 임금으로 보상)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도 선언적이 아니라 실근로시간을 효과적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실근로시간은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제도를 선진화해야 한다.
한국노총의 대화 복귀와 함께 1단계 개혁을 시행하면서 이상과 같은 2단계 개혁에 관한 구체적인 시간계획에 합의하고 대화를 지속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대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타협 전략을 포기하는 것이다. 만약 노동개혁이 절박한 시대적 과제이고, 그리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다면 애초부터 노사정 대타협 방식을 택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우리보다 노사정 대화의 문화와 관행이 정착되어 있고, 타협에 유리한 노사 조직 체계를 지니고 있는 독일의 경우에도 노동시장 개혁은 대타협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하르츠위원회를 만들어 개혁을 주도한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의 노동시장 개혁 전략과 관련하여 “독일도 노동시장 개혁이전에 한국의 노사정위원회 같은 단체를 통해 합의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당성 있는 정부가 중심이 돼 노동시장 개혁에 나서야 한다”라는 조언을 주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개혁안을 만들어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실현가능하지도 않다. 독일의 하르츠위원회와 같은 노동시장개혁 안을 만드는 전문가위원회를 출범하여 국가적 관점에서 개혁의 방향과 개혁안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다. 이 위원회에는 노사 중립적인 신망 있는 공익 전문가를 중심으로 하되 노사의 입장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참여시켜야 한다. 다만 현재 노사 조직의 대표자로서 조직의 이해를 충실하게 대변하고 조직의 결의에 따라 합의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아니어야 빠른 시간 안에 개혁안에 대한 공감대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우리 시대의 과제이자 책무인 노동시장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공 여부는 노동시장 개혁의 당위성에 달려있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개혁의 성공은 합리적 목표와 추진전략을 설정하여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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