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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공덕의 시간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2월30일 18시27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메타정보

  • 38

본문

 

  유도명상 

  사야도의 아침 9시는 하루 일정의 시작으로 미얀마 신도들을 위한 시간이다. 한 시간 동안 미얀마 말로 유도명상을 주도한다. 유도명상이란 마치 최면술사가 특정한 행동이나 말로 피최면자를 최면상태로 이끌 듯 말을 통해 수행자들을 명상으로 이끌어 주는 명상의 기법이다. 이를테면 “마음에 실린 모든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활짝 마음을 열어보십시오. 마음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다만 알아차리십시오....” 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행자들의 명상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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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9시가 되면 담마홀 스피커가 작동한다. “붓당 사라낭 갓차미... 담망 사라낭 갓차미... 상강 사라낭 갓차미...” 삼귀의 선도창이 있고 미얀마 신도들의 청법 챤팅이 이어진다. 가락은 외국인 수행자의 귀에도 익숙해지고 날이 갈수록 이방인들도 찬팅의 매력에 빠진다. 이어서 ‘쉐우민 큰 사야도’라고 불리는 열반하신 꼬살라 사야도의 육성 등 미얀마의 고승들의 법문이 나올 때도 있지만 보통은 떼자니아 사야도의 낮고 굵직한 음성이 이어진다.

  유도명상의 콘텐츠는 즉흥적이어서 그때그때 다르다. 사야도의 문장들은 간헐적으로 이어지는데, 어느 날은 성글고, 어떤 날은 빠르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인터발이 몹시 길고, 한 동안 숨소리만 이어지는 날도 있다. 거친 숨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여과 없이 전해진다. 이런 분위기가 퍽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현지 신도들의 신심이 경건하게 전달된다.

  외국인 수행자들 대부분은 선방을 나가 경행을 한다. 들어도 어차피 무슨 소린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야도의 가쁜 숨소리 속에서 그의 비대한 사까야(몸)를 힘들어하는 인간적인 두카(괴로움)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얀마 말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하지만 분위기는 고스란히 전달된다. 9시 좌선시간, 그래서 귀는 늘 열어둔다. 미얀마어라서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분위기에 젖어 좌선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유도명상은 쉐우민 센터의 독특한 전통이다. (그러나 쉐우민 센터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미국의 명상학자 콘필드가 녹음한 유도명상을 한국말로 번역한 음원이 인터넷에 도는데 초보자 지도에 매우 유용하다.) 국내에서는 경주 마하보디 선원의 선원장을 지냈던 사사나 스님만이 이 방법을 전수받아 수행자들을 지도한다. 유도명상은 특히 명상의 초심자들에게 퍽 유용한 것 같다. 명상에 입문한 사람 여럿이 그렇게 말하는 걸 내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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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 테이블 

  쉐우민에 온 외국인 남자 수행자들은 A동과 B동 두 개의 건물에 묵는다. 똑 같이 지은 2층짜리 건물인데 처음 오는 사람들은 알 턱이 없지만 고참 수행자들은 B동 2층을 프리미엄급으로 꼽는다. 우선 건물 아래층은 화장실이나 세면장 등에 응달이 져서 모기들이 많이 서식한다. 모기 한 목숨도 손바닥으로 쳐서 처단할 수 없는 계율 덕에 이 문제는 보통 성가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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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2층을 선호하는 분위기인데 당초 B동보다는 A동이 선호도가 높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A동에는 방마다 전기 콘센트가 있어서 물이나 차를 방안에서 끓일 수 있기 때문이다. B동 2층이 프리미엄 요사채가 된 것은 순전히 말레이시아 화교 수행자들 덕분이다.

  어느 해 겨울 이들이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도록 보시금을 내어 순간온수기를 설치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A동에 묵는 수행자들이 샤워하러 B동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B동 2층은 프리미엄의 브랜드로 명성을 굳히게 됐다.(지금은 A동에도 순간온수기가 설치돼 있다.) 

  다른 요사채의 부러움을 사게 된 요소는 또 있다. 다나 테이블이 그것인데, 그 역시 말레이시아 화교 수행자들의 아이디어였던 듯하다. 복도에 놓인 철제 테이블에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은 것을 놓아두는 제도인데, 처음에는 그들 화교들이 쿠키나 과일 등 여러 가지 간식거리를 마련해 두었다. 오후불식계를 지켜야 하는 수행처지만 허기를 견디기 어렵거나, 지병이 있어서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면도기 크림에서 화장지, 치약, 칫솔까지 품목이 날로 확대되더니 떠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가는 물품들로 테이블은 늘 꽉 차게 되었다. 보시하는 물품들 뿐 아니라 전기주전자나 휴대폰 충전기 등 미처 챙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물품들을 공동으로 쓰겠다는 물건들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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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는 21세기를 ‘공유사회’라고 한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해 정보의 공유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주택의 남는 방을 나눠 쓰고 소정의 비용을 받는 에어비앤비 등 쉐어룸이나 차를 공용으로 쓰는 쉐어카가 등장하고 날로 확대되는 추세다. 사회적 재화 뿐 아니라 개인의 재화도 효율적 분배를 통한 공유가 이루어지는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쉐우민의 다나 테이블을 보면서 맑스가 이 시대에 다시 살아온다면 자신이 뿌렸던 비극의 씨앗, 지난 백년의 이데올로기 전쟁을 낳은 자신의 사상을 반성하고 이론을 수정하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상념에 젖어본다.

 

  친절한 툰툰 씨

  닫힌 사회인 수행처에서 외부로 통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무단이탈하거나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과 내통하거나. 쉐우민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 씩 새 사람이 오고 머물던 사람이 나간다. 집에 가는 사람은 보통 택시를 부른다. 한국 사람을 상대로 영업하는 나라시가 있는데, 여기에 툰툰 씨가 따라 온다. 툰툰 씨의 한국말은 유창하지는 않지만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된다. 한국에는 가본 적이 없고 독학으로 한국말을 익혔다는 점이 놀랍다. 집에 가면서 공항으로 직접 가는 경우도 있지만 낮 시간 양곤 시내 명소들을 돌고 쇼핑을 하고 밤 비행기를 타고 간다면 툰툰 씨의 안내가 적격이다. 우리 돈 4만5천 원 정도면 그렇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툰툰 씨는 그래서 쉐우민에 자주 들른다. 이런 사정을 아는 고참 수행자들은 툰툰 씨 활용법을 안다. 생필품이나 간식거리(물론 규칙위반이다)를 사다달라고 하기도 하고, 귀국 전 여행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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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툰툰 씨는 친절하다. 한국 사람들의 카운슬링에 성의껏 응하고 마진 없는 쇼핑 심부름을 기꺼이 한다. 수행자 한 분이 귀국 전 여행에 쓸 백팩을 사다 달랬더니 자신의 것을 가져와 빌려주었다.

  나는 귀국하는 날 아침부터 툰툰 씨와 하루를 보냈다. 양곤에서 70킬로미터 쯤 떨어진 바고의 명소들을 돌아봤다. 비싸고 맛있는 식사를 사주고 싶었는데, 배만 불리면 된다며 고집스레 볶음밥만 시켰다. 유적지들을 돌아볼 때마다 땡볕인데도 동행 안내를 고집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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