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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3> 10가지 제언 ⑩융합 신기술 제품의 품목분류체계 미비는 또 다른 형태의 규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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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1월08일 16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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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신기술 제품이 개발되어 시장 출시에 나선다 하더라도 제품의 경쟁력보다는 제도적인 장애로 인해 시장 창출 자체가 어려워지거나 수요 창출이 기대만큼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 하나가 품목분류체계의 미비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혁신적인 신규 사업 모델이 기존의 산업 분류에 포함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포지티브 규제시스템 하에서는 시장에 진입하는 일이 어렵거나 합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산업단지에 입주가 가능한 업종을 포지티브 리스트로 규정한 경우에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첨단산업단지에 입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융합 신기술 제품의 신산업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품목분류체계의 미비는 또 다른 형태의 규제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3D프린팅산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3D프린팅산업은 한국표준산업분류상에 별도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 ‘적층가공’(AM : additive manufacturing)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3D프린팅산업은 절삭, 연마에 의해 제조하는 전통적인 ‘공작기계제조업’과는 전혀 다른 제조기술이 적용된다. 그러나 통계청의 한국표준산업분류에는 3D프린팅산업을 별도의 산업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어서, 관련 회사는 3D프린터와 무관한 ‘전자응용공작기계제조업(29221)’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분류는 ‘3D프린팅산업’이 아니라 ‘공작기계산업’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로 인한 폐해는 시장에서 직접적이다. 이를테면 정부조달(나라장터)시장의 ‘3D프린터 제조업체 등록’ 기준이 미비한 탓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바로 그것이다. 나라장터 조달품목분류상 3D프린터의 제조업체 등록기준인 ‘직접생산확인기준표’에 한국표준산업분류번호 ‘고무, 화학섬유 및 플라스틱 성형기 제조업(29292)’ 및 ‘컴퓨터 프린터 제조업(26323)’ 등 비금속 제조업체나 3D프린터와 관련 없는 컴퓨터 프린터 제조업체만 등록이 가능한 실정이다. 3D프린터 제조업체로 등록하지 못하고 레이저가공기로 제조 등록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해외에서 해당 제품을 수입하는 사업자에게 유리한 경쟁 구도가 설정되고 만 경우도 발생한다. 제조업체의 등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제조업체로 제한하여 진행되어야 할 정부조달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인 일반경쟁으로 추진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3D프린터를 실제 제작하고 있지 않은 업체가 오로지 가격경쟁력만을 앞세워 낙찰 받곤 하면, 정작 국내에서 3D프린터 기술 개발에 전념해 온 사업자는 불이익을 당하고 만다. 신산업의 특성 상 초기의 시장 창출 단계에서 정부조달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를 감안한다면 매우 심각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 정부는 2017년 4월 ‘3D프린팅산업 진흥 시행계획’을 확정하여 발표하고, 업계의 숙원이던 디지털적층성형기계(3D프린팅) 품목을 신설한 ‘한국표준산업분류’ 및 ‘관세・통계통합품목분류표’를 개정ㆍ시행하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개발되는 해당 산업의 종사자들로서는 초기 경쟁조건의 불리함을 감수해야만 했고, 그 사이에 산업의 경쟁 구도는 요동치기에 이르렀다. 

 

비단 3D프린팅산업의 경우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화재진압과 폭탄처리 등 고위험 소방작업용 로봇을 개발했어도 소방장비관리규칙(3조)에 소방관서가 보유 가능한 소방장비 유형 및 종류 규정에 로봇 항목이 없으면 장비를 확보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로봇을 개발한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초기 시장이 창출되지 않는다는 난관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또한 로봇 가운데서도 산업용 로봇과는 달리 서비스 로봇의 경우에는 HS코드 품목 분류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아서 세제 및 관세 혜택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즉 제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산업용 로봇의 경우 HS코드 8428.90-9000으로 분류되어 있어 WTO와 FTA 협정 세율 및 관세법 등의 감면제도가 적용되고 있으나, 서비스 로봇은 기타 기계류에 해당되는 HS코드 8479.89로 분류되어 있어서 통관에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현행 체계로는 관세 환급 및 각종 지원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 서비스 로봇은 가정용, 의료용, 오락용, 교육용, 소방용, 재해방지용, 복지용, 농업용, 군사용, 건설용, 경찰용 등과 같이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한 로봇으로 진화되고 있으며, 머지않은 장래에 휴먼노이드, 안드로이드 로봇, 개인서비스 로봇 등 차세대 로봇이 등장할 전망이라는 점에서 HS코드 품목분류체계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HS코드는 세계관세기구에서 제정하는 것이고 ‘HS국제협약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므로 비단 국내에서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어쨌든 품목분류체계의 미비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케이스 중의 하나다. 앞으로 국제적인 협의를 통해 산업용 로봇 수준의 HS코드 시스템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센서를 통해 화재 현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면 무선통신으로 이를 센서에 전달하는 USN(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 기반 화재감지기를 개발하고서도, 소방법에 ‘유선감지기’ 규정만 있고 무선관련 조항은 없다는 이유로 보급이 지연된 적도 있었다. 이 또한 포지티브 시스템 하에서 품목분류를 제한함에 따라 신기술 제품의 초기 시장 창출에 장애가 발생한 케이스로 지적된다.

신기술 융합 제품이 속속 등장할수록 이러한 사례를 들자면 비일비재하다. 옥내 배선에 있어서 분전반(cabinet panel, switchboard)은 선으로부터 각 분기 회로로 갈라지는 곳에 각 분기 회로마다 스위치를 설치해 놓은 복합 판넬로, 흔히 두꺼비집이라고 부른다. 이 분전반에 이 작은 기계를 설치하고 이를 스마트폰 앱과 연동시키면 지금 전기를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가 있다. 총량뿐 아니라 각 가전제품 별로도 전기사용량을 알 수 있고, 전기료 누진제가 적용되는 시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융합기술을 활용하여 전기료를 아낄 수 있고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계량기인 셈이다. 문제는 이 기계가 계량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이용한 전력량 계량기에 대한 기준이 아예 없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형식 승인 자체가 이런 형태의 제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품을 개발한 사업자는 그냥 모니터링용으로 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IoT 기술의 초보적 단계에서부터 개발자와 사업자는 보이지 않는 규제의 장벽에 맞닥뜨리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원격의료(U-healthcare) 분야도 마찬가지다. IT 기술 발달에 따라 관련 의료기기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허가단계에서 U-헬스케어 등 신기술 제품에 대한 별도의 품목분류체계는 미비하기만 하다(<그림 3-3> 참조). 새로운 품목분류 없이 기존 품목에 준하여 허가를 받을 경우 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수가 적용 시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기존 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하는 융합기술이다. 점차 많은 기업과 개발자들이 이런 융합 제품을 앞세워 사업의 활로를 찾고 있는데, 이러한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품목분류체계의 미비 때문이라면 문제다. 더구나 이러한 걸림돌이 일종의 ‘미필적 규제’로부터 비롯된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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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 품목분류체계에는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개념을 적용한다. 상호 간에 배타적이면서도, 전체를 포괄한다는 개념인데, 중복과 누락을 피할 수 있다는 특징과 장점이 있다.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도 서로 배타적인 요소들이 겹치지 않도록 구분해 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문제는 이러한 개념의 품목분류방식이 단일 기술, 단일 산업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유효하게 작동했지만, 융합 기술과 융합 산업이 활성화되는 시기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한국의 제도는 법규에 명시된 이외의 새로운 형태의 제품,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의 출현을 봉쇄하는 규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서 품목분류체계의 미비는 더욱 문제가 된다. 이제는 여러 개념의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결합해서 등장하는 혁신형 사업과 산업을 상호 배타적으로 구분한다는 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한 일이다. 오히려 혁신 카테고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새로운 기술과 산업, 사업의 등장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이제는 품목분류에 있어서도 공급자 관점의 접근이 아니라 시장중심적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요구인 것이다. 바야흐로 오랫동안 지배해 온 MECE 원칙의 사고와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품목분류체계의 유형화 시도가 불가피한 시점에 이르렀다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2016년 4월 26일 성장동력 부처 합동점검 T/F를 통해 지능정보산업, 나노산업, 융・복합 콘텐츠산업, 에너지신산업 등 표준산업분류에 포함되지 않은 신성장 분야에 대해 기존 산업분류와 연계한 ‘참고기준표’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동안 제조업을 중심으로 정책금융을 지원해 왔으나, 막상 신성장 분야에 정책금융을 제공하고자 해도 대출심사 기준이 없어 신산업의 정체 파악이 곤란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다행스러운 조치라 할 만하다. 

 

신산업 분야가 잇따라 출현할 터인데 그때마다 혁신 카테고리를 부가하고 공식적인 품목분류체계를 정비하기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다. 품목분류체계를 공식적으로 바꾸는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기술개발과 신산업 패러다임의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뒤늦은 품목체계 변경은 지체된 만큼 그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면에서 기존 산업분류와 연계한 ‘참고기준표’를 마련하겠다는 발상은 의의가 있다. 다만 그 운용에 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도록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고, 또한 분야 별로 관련 조치들이 속도감 있게 이루어져 시의적절해야 한다는 숙제도 안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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