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공동체 논의의 재음미 <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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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북방경협 구상을 계기로 동북아 지역협력 내지 동북아 지역공동체 논의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사드(THAAD) 문제로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북한 핵 문제로 유발된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구도에 대한 대증 수단으로 동북아 협력문제가 중요하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안보위기나 한중관계 개선책으로서의 동북아 협력정책은 다수국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협력정책이므로 장기적 시각에서 추진해야할 과제이기는 하나 지역의 안보 위기가 앞으로도 계속되고 경제가 정치에 구속되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그 위기를 사전에 조정할 수 있는 지역차원의 제도적 협력조직을 차제에 연구해 보자는 취지의 논의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공동체에 대한 논의는 냉전체제가 무너진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에서도 한때 활발히 전개되어 왔다. 그 당시의 관심사는 냉전체제 종식으로 국제협력의 기준이 이념적 결속에서 경제적 결속으로 전환된 만큼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국가들도 경제적 실리추구를 위한 경제공동체를 구축해 보자는데 있었다. 그 후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신 지역주의가 일반화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동북아 및 동아시아 차원의 경제통합에 관심이 집중되어 왔던 것이다.
그 결과 한·중·일 간에는 3자간 FTA를 위한 민간공동연구가 시작되었고 2013년에는 정부간 협상이 개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협상 개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3개국 간의 FTA 협상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이전에 시작된 한-일 FTA 협상도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특기할만한 성과 없이 중단된 상태이며, 중-일 FTA도 논의만 있을 뿐 공식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중·일 3개국 간에는 지난 20여 년 동안 분업구조의 보완성에 기초한 경제의 기능적 통합이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이 역외 국가들과 체결한 FTA 협상은 대부분 2-3년 사이에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간의 FTA협상이 아직까지 큰 진전을 못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3개국 간에는 경제적 이해 대립뿐만 아니라 경제외적 장애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디. 즉 타 지역과의 경제통합은 주로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추진될 수 있었으나 한·중·일 3개국 간의 경제통합에서는 경제적 변수 외에 정치, 안보, 역사 및 문화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일 FTA의 경우, 2004년 협상이 중단된 이후 몇 차례 협상 재개 논의가 있었으나 아직까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 협상중단을 가져온 농산물 문제 등 경제여건의 차이는 협상 초기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따라서 협상 재개는 경제외적인 부문에서 동기가 주어져야 하나 양국 간에는 과거사 문제, 영토문제와 같은 국민감정상의 상호 불신이 크게 작용한 결과 정부 차원에서는 이를 거슬러 가면서까지 큰 틀의 합의를 유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중관계도 경제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지난 20여 년간 쌓아온 한·중간의 경제협력관계가 사드문제 하나로 크게 타격을 받아야 할 만큼 취약한 협력관계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양국 간의 대립적 안보관계가 경제관계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북아지역은 최근 북한 핵문제와 한국의 사드배치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로 묶어지는 집단적 대립 상황으로 인해 21세기형 신 냉전이 유지되고 있는 지역이다.
이렇듯 안보상의 대립구조와 근대사에 얽힌 민족주의적 국민정서가 오늘날 지역공동체의 형성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 동북아 지역의 특수성이다. D. North의 용어를 빌린다면 동북아 경제통합에서는 비공식적 제약(informal constraints)이 공식적 규칙(formal rules) 못지않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아공동체 형성 문제는 단순히 역내 국가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만 조정함으로써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이 안고 있는 정치, 안보, 문화 및 역사적 특수성을 함께 고려할 때 그에 대한 통로 모색이 가능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고에서는 현실의 특정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미시적 관찰이 아니라 동북아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포괄할 수 있는 거시적, 학제적 시각에서 동북아 공동체 형성 문제를 관찰해 보고자 한다.
실제 지금까지 국내에서의 동북아 공동체 관련 연구는 경제통합뿐만 아니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분야에서의 공동체<문화공동체, 안보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진된 경제 이외의 공동체 논의는 그 나름대로 지역협력에 유의할만한 제안을 해 오고는 있으나 그 논의 자체가 담론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공동체의 참가범위 및 기대효과가 불확실한 등의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경제통합에 기초한 경제공동체의 형성은 FTA와 같은 구체적 접근 수단을 가질 수 있고 그 성과의 예측이 가능하며 관련 국가들 사이에 정책 목표의 수렴성이 비교적 높게 작용함으로써 다른 분야 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북아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세계체제의 중심으로 부상해 오고 있다. 동북아 공동체의 형성은 중심부의 기능 강화를 가져오고 이를 통해 세계질서의 변화가 유도될 수 있다. 그리고 동북아 공동체는 현재와 같은 담론적 주제가 아니라 성격과 형태는 달랐지만 역사적 실체로 작용했던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북아 공동체 논의는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이며, 현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문제라는 시각에서 전개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경제공동체를 사고의 출발점으로 상정하더라도 동북아 공동체 형성의 의의와 그 파급 영향에 대해서는 역사적, 세계적 차원으로 시야를 확대하고 그 관심 분야도 정치, 외교, 문화 등으로 넓혀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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