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정치에서 인공지능 정치인까지: 디지털 민주주의 전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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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가 화두가 되면서, 메타버스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활발하다.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거운동 미디어를 메타버스를 활용했다.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경로로 시민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경선 당시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이낙연, 박용진 의원이, 국민의힘에서는 원희룡 의원이 메타버스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메타버스의 사용자가 그렇게 많지 않아 실질적인 선거운동의 효과가 크지 않음에도 메타버스 선거운동을 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청년층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각 당에서 대선후보가 확정된 이후 민주당은 메타버스를 음을 빌려 ‘매주 타는 민생버스’를 매타버스라 부르며 이재명 대선후보가 매주 지방을 순회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온라인의 메타버스의 이미지와 오프라인의 실질적 선거 운동을 결합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 중 메타버스만 선거운동에 활용되지 않는다. 국민의힘 당은 윤석열 대선 후보를 본뜬 A.I. 윤석열을 만들어 홍보를 하고 있다. A.I. 윤석열은 ‘위키윤’으로 부르기도 한다. 민주당도 이에 가세하여 인공지능 이재명을 선보였다. 인공지능 이재명의 별칭은 ‘명탐정 이재명’이다. 명탐정 이재명과 위키윤은 일종의 버츄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이다.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 위키윤 그리고 명탐정 이재명의 관계는 이종사촌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선거운동의 디지털 전환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디지털 전환은 선거운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와 민주주의에도 디지털 전환이 진행될 것이다. 모든 기술발달은 양지와 음지를 가지는데 디지털 기술도 다르지 않다. 메타버스에서 정치인의 버츄얼 인플루언서까지, 인공지능 정치인에서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까지, 민주주의는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 이들을 하나씩 진단해 기회를 강화하고 위협을 약화할 여지를 탐색하겠다.
메타버스 선거운동: 자유로운 소통 vs. 아바타 해킹
최근 정치인이 메타버스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디지털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해야 하며, 청년층과의 소통을 위해서다. 그런데 현재의 메타버스는 진정한 의미의 메타버스는 아니다. 가상현실 기기나 증강현실 기기를 이용한 실감형 메타버스가 일반화된다면, 메타버스내 선거운동과 정치 활동은 더욱 대중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가 되면 메타버스 내의 아바타의 얼굴은 아바타의 주인과 동일하게 될 것이며, 미세한 눈 짓과 미소도 아바타가 따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정치인과 시민은 밀접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선거 운동 비용을 줄여서 비용효율적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아바타는 나이, 인종 및 성별을 초월할 수 있다. 메타버스 공간 내에서 나이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본인의 외모를 바탕으로 나이를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90대의 노인이 30~40대의 청년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인종 및 성별 또한 마찬가지다. 나이, 인종 및 성별로 인한 선입감이 사라진 메타버스 공간 내에서는 보다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물리적 거리가 무시됨에 따라 지방자치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메타버스는 자유로운 소통의 아고라(광장)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메타버스가 양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메타버스 공간은 제3자가 아바타의 주인의 의뢰나 해킹을 통해 아바타 주인을 대행할 수 있다. 아바타 해킹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보안 기술이 발달하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특정인의 외모를 닮은 아바타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 디지털 공간 속에서 디지털 성형과 목소리 성형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닮은 꼴의 아바타로 특정 정치인인 체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정치인이 복수의 아바타를 만들고 이를 복수의 대리인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새로운 정치 풍경과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메타버스 정치공간에서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거나, 혹은 정치인 본인의 개성과 역량을 판단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차단될 수 있다.
메타버스 공간 자체도 민주주의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메타버스가 주는 무한한 자유로움은 일종의 도피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많은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제이기는 하나 현실공간의 패자가 메타버스에 보다 집착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경제적 양극화와 맞물린다면, 건강한 민주주의는 실종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러할 가능성이 더욱 크고, 아바타 대리 선거운동은 더욱 횡행하게 될 것이다.
버츄얼 인플루언서 정치인: 새로운 선거운동 vs. 딮페이크(Deepfake) 정치
위키윤과 명탐정 이재명을 만드는 기술은 버츄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를 만드는 기술과 동일하다. 이 기술은 또한 딮페이크 기술이기도 하다. 버츄얼 인플루언서 기술로 특정 정치인의 외모와 언행을 모방하여 시민에게 다가가는 것은 새로운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근본적 의문점을 제시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치인에게 투표를 하는 것일까?
세계관, 도덕성, 언행의 일관성, 지적 역량, 판단력, 지혜, 공감능력, 외부변화에 대한 기민성, 회복탄력성, 인지부하관리역량, 리더십, 협상과 타협역량, 소통과 경청 역량 등이 시민을 대의하는 정치인을 뽑는 기준이 될 것인다. 그렇다면 버츄얼 인플루언서 정치인은 세계관, 언행의 일관성, 지적 역량, 판단력 등을 디지털 기술과 다수의 전문가로 치장할 수 있다.
따라서 버츄얼 인플루언서는 새로운 선거운동이 아니라 딮페이크 정치의 기술적 배경이 될 것이다. 딮페이크란 버츄얼 인플루언서의 기반기술인 적대적생성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GAN)을 이용하여 동영상, 사진 및 목소리를 위변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술에 취하여 주정을 부리며 성추행을 하는 동영상을 만들거나, 욕설을 하는 가짜 녹취록을 만들어 배포한다면, 해당 정치인의 평판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반대로 딮페이크 기술은 특정 정치인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데도 이용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버츄얼 인플루언서 정치인의 위험성이 높다. 많이 양보하여 현재까지 선용되고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이는 딮페이크 정치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버츄얼 인플루언서 정치는 선거권자의 판단을 잘 못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기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우리 선거법이 다양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딮페이크 정치는 선거법이 디지털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점도 드러내게 되었다. 개인적인 판단에 따르면, 버추얼 인플루언서, 즉 딮페이크 정치는 선거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정치인: 정치 혐오증 vs. 입법분야의 증강지능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하는 말은 전문가의 시나리오를 따른다. 따라서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 그래서 버추얼 인플루언서 정치가 위험할 수 있다. 그러한 위험을 배제하려면 아예 인공지능에게 정치적 의사결정을 맡기는 것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러시아 기술 기업인 얀덱스(Yandex) 가 창조한 인공지능인 알리사(Alisa)가 입후보했다. 당시 알리사는 이 선거에서 25,000여 표를 받았다. 같은 해 일본의 도쿄도 다마시 시장 선거에 인공지능 미키히토 마츠다가 출마해서 수천 표를 받았다. 사람이 아닌 말 그대로 인공지능 정치인의 등장이다.
러시아 인공지능인 알리사의 개발자는 알리사에게 몇 가지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편향이 없고 부패하지 않으며, 데이터 기반의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며, 일주일 24시간 접속이 가능하며, 유권자 개개인의 요구를 경청할 수 있으며, 나이가 들지도 않고 아무리 일을 해도 지치지 않으며, 유권자 개개인을 모두 기억한다.
이 주장 중 편향이 없다는 데 대해서는 전적으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데이터 자체에 편향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외의 주장에는 수긍이 간다. 그런데 고도의 가치판단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까? 더구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판단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다. 데이터는 과거다. 미래에 대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미래예측이란 기껏해야 트렌드가 지속되는 경우 달성되는 미래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미래가 달성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시 말하자만 현재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고도의 가치판단을 인공지능이 할 수 없다. 다만 먼 미래에 새로운 알고리즘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가능할 수 있겠으나, 현재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알고리즘으로는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법률을 집행하는 사법부와 행정부의 업무 중 일부이다. 미래를 향해 고도의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입법부의 업무와 정치인의 역할을 인공지능에게 맡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이 현실의 인간 정치인보다 청렴하고 시민을 위하고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현실의 일부 인간 정치인의 사리사욕이 풍기는 냄새가 너무 구리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정치인에 대한 논의는 기존 정치에 대한 혐오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인공지능 정치인이 등장할 가능성은 당분간 높지 않을 것이나, 입법부와 시민이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입법활동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 미국의 Fiscal Note는 연방정부를 비롯하여 연방의회, 주 정부 등이 공개하는 공공정보를 수집해서 실시간으로 누적적,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특정 입법 사안에 대해 입법 가능성을 예측해주는 인공지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아대 이동규 교수가 연구소장으로하여 ‘법안통과 예측 시스템’ 개발되고 있다. 이들은 일종의 입법분야의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에 해당한다.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 새로운 가능성 vs. 디지털 중우 정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직접 민주주의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직접민주주의 요소로 국민투표, 소환투표 및 국민발안이 있다. 그런데 직접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 많이 들며 기민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민투표를 위한 순수비용에만 3,0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시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직접 민주주의는 필요하나 예외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일부의 실무전문가와 학자는 블록체인이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기반기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블록체인이 신뢰 시스템으로 위변조가 불가능하므로 투표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데 그 논거를 둔다. 블록체인이 가진 다양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방식의 블록체인은 투표 기록을 저장하기 위한 데이터 블록을 채굴하는데 상당히 많은 전기를 써서 지속가능성이 부족하며, 하나의 투표를 저장하기 위한 비용이 적지 않고, 대규모의 국민투표 등을 저장할 수 없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블록체인을 개발한다면 이러한 한계는 일부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경제성과 기민성을 만족시킨다 하더라도, 직접민주주의가 이상적이냐의 여부에 대해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 이면에는 아리스토크라시(Aristocracy)와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혼종이 인류사회와 한국사회의 정서적 밑바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백안시하는 것도 어렵다. 유럽의 경우 지난 1세기 동안 평균 지능지수가 14 포인트 하락했다. 영국은 코로나 판데믹 기간 동안 5G 무선통신 중계기 파괴 사건이 빈발했다. 5G 중계기가 설치된 곳에 코로나 판데믹 확진자가 많이 나타나서, 이를 인과관계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 결과다. 아이작 뉴턴의 고국인 영국의 평균 지적 역량이 낮아진 결과다. 비판적 사고 역량을 가진 시민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뉴턴의 영국이 중우정치의 영국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는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경로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민주주의의 일상화는 진영간 갈등의 일상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진영 간 협상과 타협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다수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세대가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세대에게 일방적 양보를 강요할 수 있는 문제도 생긴다. 간접민주주의에게 그러한 폐해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앞서 언급했듯 협상과 타협의 좁은 여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여유가 존재한다.
직접민주주의에 단점이 존재하나, 현재보다 확장해야 함은 틀림없다. 견제와 균형의 체계가 전방위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며,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옳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민주주의는 확장적으로 적용될 가치가 있다. 지역기반의 공동체의 경우 협상과 타협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정착하는 것은 타당하다. 특히 지자체 단위로 메타버스 아고라와 직접민주주의가 융합된다면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결론>
디지털 기술은 재화의 분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나, 민주주의에도 거대한 파도를 타게 할 것이다. 그 거대한 파도에 휩쓸릴 것인지, 그 파도 위에서 서핑(surfing)을 즐길 것인지는 한국사회와 정치권의 책임이다. 다른 기술과 같이 디지털 기술은 상당한 가능성과 위험을 모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에 맞추어 메타버스 선거운동, 챗봇, 버츄얼 인플루언서 등이 등장했다. 앞으로 정치질에 질린 시민은 인공지능 정치인을 호출할 수 있을 것이며, 선거운동에서 딮페이크가 일상화될 것이며, 직접 민주주의가 광범위하게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간 비싼 민주주의에 해당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일상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에 거대한 파도로 다가오고 있는 현재, 우리 한국사회의 시민이 유일하게 의지할 서핑보트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 건강한 비판적 사고, 협상과 타협역량 등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시민에게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디지털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시민의 한명으로서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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