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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미만과 군집행동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30일 19시5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08분

작성자

  • 김경근
  •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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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불안의 미만과 군집행동

 

 

 일찍이 심리학자 윤태림 선생은 한국인을 지배하는 성격적 특징 가운데 하나로 ‘불안의 미만(彌滿)’을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인이 일상적인 불안감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면면을 돌아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는 지적이다. 불안의 미만은 한국인의 삶 전반을 지배하지만 특히 자녀교육에서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아마 한국인에게 자녀의 미래만큼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문제는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의 미만을 야기하는 요인들     

한국인이 자녀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제한적 기회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변변한 부존자원도 없는 좁은 국토에 사람들이 세계 3위의 인구밀도를 유지하며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각박한 삶의 조건 때문에 사람들은 일찍부터 하나의 생존전략으로서 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왔다. 그런데 한민족은 우수한 두뇌와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뜨거운 상승열망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생존을 위한 교육경쟁은 매우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고,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노력과 투자가 이루어지더라도 경쟁에서의 승리는 쉽게 담보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주요 교육적, 사회적 선발에 상대평가가 적용되고 있는 점도 일조를 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패자부활이 쉽지 않아 단 한 번의 실패로 회복하기 어려운 내상을 입기도 하는 반면, 사회보장제도는 상당히 취약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환위기 이후에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가 지속되면서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은 끝 간 데 없이 증폭되고 있다.   

그런데 동일한 위험에 노출되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윤태림 선생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는 이기주의적 심성과 연관되어 나타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남보다 충분히 얻지 못하진 않았는지 의심을 하며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또한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거나 잃지 않을지 걱정한다. 즉 이기주의에 기인한 만족감과 안정감의 결여가 일상적인 불안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군집행동으로 표출되기 쉬운 불안감  

 

불안감은 군집행동(herding behavior)으로 표출되기 쉽다. 군집행동은 동물의 세계에서 흔히 목도되는데, 동물들이 평소에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위험에 직면하면 떼를 지어 도망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행동은 일정 정도 합리성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굶주린 맹수에게 쫓기는 상황에 봉착했을 경우 무리의 중심에 자리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에게 다가올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에 노출되거나 불안을 느낄 때 집단에 묻어가려는 군집행동을 한다는 점에서는 사람도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불안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거나 주위 의견을 귀담아듣는 것은 일상에서 흔히 목도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집행동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의 군집행동에 대해서는 다소 유별나다는 평가가 있는데, 이는 우리 국민이 경험하고 있는 불안의 미만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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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에서의 군집행동 

우리 국민의 군집행동은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좀 더 극명하게 발현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녀교육에서의 군집행동 가운데 일부는 합리적 행동과는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다. 사교육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학부모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4년 사교육비․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교과 수강 목적으로 ‘학교수업 보충(36.7%)’, ‘선행학습(25.0%)’, ‘진학준비(18.3%)’에 이어 ‘불안심리(14.1%)’가 등장한다. 특별히 공부가 뒤처져 그것을 보충할 필요가 있거나 자녀가 남보다 앞서 가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없더라도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시키면 불안하기 때문에’ 자녀가 사교육에 참여하도록 하는 사례가 꽤 있는 것이다. 

한때 중산층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었던 조기유학 바람도 불안감에 기인한 군집행동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조기유학은 2000년 3월에 처음 허용되었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서 영어 하나라도 제대로 구사하게 된다면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조기유학 열풍을 가져왔다. 조기유학을 떠난 학생은 2000년 4,397명에서 매년 급속히 증가하여 2006년에는 29,511명으로 정점에 도달했다가 점차 감소하여 2012년에는 10,430명까지 줄어든 상태이다. 조기유학 열풍이 식게 된 것은 영어를 잘하거나 외국대학을 나와도 취업 등에서 이점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어린 나이에 자녀를 외국에 보내는 조기유학이 대단히 위험한 실험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광범하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기유학이 꼭 필요한 아동도 있을 것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데도 국내에서 그 재능을 제대로 계발하기 어렵다면 외국에 나가 좀 더 나은 교육기회를 얻도록 하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음악가가 탄생하고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등장하게 된다면 조기유학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영어 습득에서의 이점을 기대하며 어린 자녀를 외국에 보내는 것은 위험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모두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면 영어 능력은 희소성을 갖기 어려운 반면, 그런 능력을 구비하게 되는 과정에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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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행동에서 자유롭기 위해 요구되는 덕목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불안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을 견지하면서 자녀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자녀가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살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자녀교육 때문에 자신의 노후를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군집행동에 휩쓸리는 것을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기실 우리 사회에서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비범한 결기, 용기, 줏대가 필요하고,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자녀교육에 적용할 줄 아는 안목과 지혜도 요구된다. 아울러 주변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비교성향에서 한 발짝 비켜설 줄도 알아야 한다. 비교성향의 노예가 되면 내면의 이기주의적 심성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고 군집행동의 유혹에서 헤어나기도 난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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