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에 대한 투자는 합리적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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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대 난제 중 하나는 사교육 문제다. 사교육이 번창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심대한 폐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은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방해하고, 아동과 청소년의 전인적 발달과 성장을 저해하며, 의존적 학습태도를 조장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또한 사교육은 계층 간 불평등 및 위화감을 심화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그간 숱한 사교육 억제책이 강구되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사교육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광범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막막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정책당국이 미봉적 대응만 되풀이하는 바람에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부작용만 유발해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사교육의 효과에 대한 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교육에 대한 지출을 줄이지 않고 있는 점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에 여기에서는 그간 이루어진 정책당국의 사교육 대책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사교육의 효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및 관련 연구동향을 간략하게 논의한 후에 사교육에 대한 투자의 합리성을 다각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사교육 문제에 대한 그릇된 대응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제한적 기회구조와 국민의 상승열망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회구조의 전반적 확대 또는 다양화를 도모하거나 사람들의 상승열망을 완화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들의 상승열망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대안은 오직 하나다. 사람들에게 실제로 좀 더 많은 삶의 기회를 제공하거나 자신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기대와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 이 같은 작업이 지난하고 오랜 시간을 요할지라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간 우리 교육당국은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주로 교육정책이나 입시제도의 변개를 통해 사교육 억제를 도모했었다. 물론 우리 사회 기회구조의 획기적 변화를 통해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은 교육당국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긴 하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그간 마치 사교육 문제는 자신들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런저런 대책들을 쏟아내며 그릇된 시그널을 보내온 측면이 있다.
사교육 문제를 교육정책이나 입시제도의 변화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심장기능의 이상 때문에 격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에게 머리에만 찜질을 하고 침도 놓는 처방을 통해 통증이 해소되길 기대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는 자신의 저서 ‘교육전쟁론’에서 이런 식의 잘못된 대응을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지우려는 시도에 비유한 바 있다. 벽에 비친 그림자는 그것을 만들어 내는 근원을 제거하지 않는 한 결코 지울 수 없음에도 우리 교육정책 중에는 그런 그림자와 씨름했던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간 숱하게 쏟아진 사교육비 경감 대책들은 대부분 이런 시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정작 사교육 수요를 잠재우는 데는 실패하면서 새로운 문제만 야기한 경우가 허다했다.
사교육 효과에 대한 강고한 믿음
실생활에서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탄탄하게 떠받치고 있는 것은 그 효과성에 대한 사람들의 강고한 믿음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제한적 기회구조가 초래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사교육이 상당히 효과적인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일례로 2004년에 KDI에서 발간한 사교육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90% 내외의 학생과 학부모가 사교육 투자비용 대비 기대한 만큼 효과가 달성된 것으로 응답했다. 아울러 90%가 넘는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입시에 사교육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응답을 보였다. 이를 통해 사교육의 실제 효과와는 별개로 투자대상으로서 사교육이 갖는 가치와 효용성에 대한 교육수요자들의 믿음이 상당히 확고함을 알 수 있다.
그간 국내에서 사교육의 효과를 분석한 다수의 연구들도 이런 믿음을 일정 정도 뒷받침하고 있다. 즉 국내에서 수행된 연구들은 대체로 사교육이 학업성취도, 대학진학 및 대학성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일수록 사교육 참여에도 적극적이기 때문에 높은 학업성취도가 사교육의 효과인지 아니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가진 다른 특성의 효과인지 변별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이 같은 난점은 성적이 우수하고 교육적 동기도 높으며 가정배경도 좋은 학생들이 사교육 참여에도 적극적일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사교육 투자의 합리성에 대한 다각적 고찰
그런데 사람들이 사교육의 효과에 대해 강고한 믿음을 갖고 있고 다수의 연구가 그 효과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고 해서 사교육에 대한 투자가 합리적인 것으로 단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세심하고 신중한 분석과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균형감각을 갖고 사안을 바라보는 한편 사교육 투자가 가져다주는 보상과 그것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에 대한 적절한 비교형량을 통해 타당한 평가를 내릴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사교육에 대한 참여는 학습시간의 증가를 초래한다. 따라서 사교육에 대한 투자가 일정 정도 교육결과에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교육결과를 향상시키는 방법은 사교육에 대한 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서도 교육결과에서 바람직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사교육 투자의 합리성을 객관적이고 엄밀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교육과 자기주도적 학습의 효과를 비교하여 상대적 우월성을 가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0년에 KDI 김희삼 박사는 국내 가용자료를 광범하게 사용하여 사교육의 효과성을 실증적으로 검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사교육의 효과는 대개 단기적이고 학년이 높아지면서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학생 간 능력의 차이를 고려했을 때는 그 효과가 더욱 작아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비해 중・고교 시절의 자기주도적 학습은 수능점수, 대학 학점, 최종 학력, 취업 후 시간 당 임금 등과 같은 장기 성과지표에서 사교육에 비해 훨씬 우월한 효과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사교육의 효과는 대부분 단기적이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감소하는 반면, 자기주도적 학습은 그 효과가 훨씬 더 영속성이 있고 성인 이후 삶의 질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도 더 크다는 것이다.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사교육에 대한 투자의 합리성을 돌아보게 하는 연구결과도 있다. 학업성취의 경우 노력이나 투자를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제한적이며, 학령기에 일시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성인기가 되면 그 효과의 대부분이 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시간주립대의 잭 햄브릭 교수는 실증연구를 통해 학술 분야에서 노력이 성취도를 결정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함을 밝혀낸 바 있다. 조지메이슨대 브라이언 카플란 교수도 부모의 노력이나 투자를 통해 아동기 초기에는 성취도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자녀가 성인기에 진입한 이후에는 그 과실의 대부분이 사라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국민의 교육열을 추동하는 핵심요인 가운데 하나로 노력주의를 들 수 있다. 학업성취를 결정하는 것은 지능과 같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투입된 노력이라는 점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연구들은 이 노력주의의 근거가 상당히 희박하고 그것이 자칫 부모들을 독친(毒親)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부모들이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자녀를 사교육에 내몰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학령기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자녀가 심신이 피폐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같은 대가를 치르면서도 사교육에 ‘올인’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되기 어렵다. 그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녀가 독서를 통해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활발한 신체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인성과 공감능력을 함양하는 데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금 인성이라는 가치가 무척 희소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근자에는 취업에서도 세칭 명문대학이 갖는 프리미엄보다는 ‘반듯함’이 갖는 호소력이 훨씬 큰데도 많은 학부모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녀를 위해 아낌없이 사교육에 투자한 부모로선 자녀가 나중에 그 고마움을 잘 헤아려 은공을 갚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나 환상일 수도 있다. 숭실대 정재기 교수는 2007년에 국제비교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경우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대면접촉 가능성이 높아지는 반면, 부모의 소득수준이 낮으면 그들을 찾는 발길도 뜸해진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노후에 자식 얼굴이라도 자주 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세간의 속설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의 미래를 위한 일념에서 사교육에 과도한 지출을 하여 실버푸어 신세가 된다면 참으로 외롭고 참담한 노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그럼에도 노후 대비마저 포기하며 사교육에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남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혜안과 용기 필요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선택에는 어떤 형태로든 그에 따른 보상과 비용이 발생한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통해 얻는 보상에는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치러야 하는 대가에는 둔감한 경향이 있다. 사교육에 대한 투자도 마찬가지다.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대한 투자를 통해 얻게 되는 조그만 보상이나 효과는 실제보다 크게 받아들이면서도 그것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나 비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관심하다.
지금처럼 명문대 진학만이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믿음이 강고하게 남아 있는 한, 사교육에 대한 수요는 크게 감소하기 어렵다. 그런데 실제로는 명문대 졸업장의 프리미엄 자체가 이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기업에서도 이제는 학벌을 별로 따지지 않고 사원을 채용한다. 명문대 졸업장을 가진 사람들이 기업 성과에 기여를 하는 정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럼에도 많은 학부모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자녀가 장차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소진한 채 메마르고 유약한 심성의 소유자가 되고 있다는 점은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자녀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부정적 유산을 물려주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노후마저 망가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냉철한 현실인식, 혜안, 줏대를 갖고 과감히 남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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