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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열다섯 번 째 이야기 그래도 먹는 건 즐겁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9월30일 19시00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메타정보

  • 33

본문

 

  식사는 신성하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지만, 사람 사는 일에 그래도 먹는 일이 으뜸이다. 승과 속을 막론하고 그렇다. 수행처의 일상에서도 먹는 일은 가장 큰 일이다. 수행자들은 그래서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먹는 일을 놓치는 일이 없다. 

  식사는 신성하다. 식사는 그저 먹는 일이 아니라 수행의 한 부분이라는 말을 수 없이 듣지만 대개는 맛과 허기에 말려 훌쩍 먹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수행처에서 오랫동안 잘 견디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한 끼 한 끼를 소중하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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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들의 경우 나름대로 철저한 식사의 규율이 있다. 거르지 않고, 가리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 점심, 오후 4시 주스까지 철저히 챙긴다. 음식이 좋으면 과식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메뉴와 상관없이 양이 일정하다. 

  내 경우, 서서 기다리기 싫어서 설거지 줄이 길어지기 전 서둘러 식사를 끝내는데 이들은 개의치 않고 오래 오래 먹는다. 그리고 절대 끼적거리는 법이 없다. K거사와 히로 씨가 대표적 케이스이다. (양쥔은 예외다. 그는 자신이 휴대한 작은 양재기에 음식들을 가려서 넣고 끼적거리며 마지못해 먹는 것처럼 보인다. 양쥔은 1년 새 꼬쟁이처럼 말랐다.) 그들 고참들은 배식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식탁에 자리 잡고 하루 두 차례 신성한 이 의식을 치른다.

 

  공양을 받고 축원하되 참뜻을 알지 못하면

  시주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원효스님 발심수행장

 

 

  K거사의 마늘과 고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된 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서라지만 미각만큼은 적응이 무척 어렵다.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환경이 바뀌면 전혀 식사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 미각의 적응력은 아프리카에 가도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고 자부할 만큼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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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로 출발하는 날 지인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식사가 쉽지 않을 거라며 인정스레 싸 준 김 한 톳을 담고 와 식사 때마다 잘라 한국 사람끼리 나눠먹었다. 스프에 한 장씩 넣으면 거짓말처럼 한국의 맛이 배어들었다. 먹성 좋은 K거사도 알게 모르게 식사 고충이 있었던가 보다. 식사 때마다 숄더백을 메고 나타나는데 그 안에는 비장의 무기가 들어있다. 베트남쯤에서 만들었을 조악한 타퍼 용기가 그것이다. 내용물은 마늘과 고추 짱아지이다. 의성 육쪽마늘 못지않게 튼실한 통통한 마늘과 크기는 새끼손가락 두 마디 보다 작고 그보다 훨씬 슬림한 미얀마 고추가 간장 속에 질서 없이 뒤섞여 있다. K거사가 무단반입해서 손수 간장을 부어 만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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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나눠달라는 사람이 없었다는데,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식사가 시작되기 전 마늘과 고추 각각 2-3쪽을 얻어서 트레이에 담아놓으면 한국 맛이 음식물 전체에 스민다. 식사가 한결 쉽고 즐거워진다. 아직도 난 멀었다보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다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 오관게(五觀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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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보카도 숙성작전

  사과나 배처럼 깊은 맛은 없지만 열대의 나라 미얀마의 과일은 풍성하다. 바나나, 파파야 등은 흔해서 일상식이다. 가장 인상 깊은 과일은 아보카도이다. 아보카도는 우리나라에서처럼 미얀마에서도 고급과일이지만 가격은 댈 바 없이 싸다. 우리 수퍼에서 팔리는 것보다 크기는 2-3배인데 가격은 4에서 5분의 1이다. 한 개 우리 돈 6백 원 정도 한다.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라시 영업을 하는 툰툰 씨에게 부탁해 아보카도 10개를 구입했다. 하루 한 개 룸메와 나눠먹으면 오후 시간이 든든하리라. 귀국 일 주일 전 쯤 툰툰 씨가 아보카도를 배낭에 담아와 꺼내놓는데 작은 철제 테이블에 꽉 찬다. 흐뭇한 마음으로 하나를 골라 칼로 자르는데, 아뿔사 익지 않은 생퉁이라 칼이 안 들어간다. 낼 모레면 룸메 법진거사는 귀국 전 여행을 떠나는데 맛도 못보고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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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누군가 카톡으로 보내준 '생활 Tip' 메시지가 생각나 찾아보니 바나나 껍질이 아보카도 숙성에 최고란다. 아~ 아침공양 때 바나나가 나왔었지. 쓰레기통을 뒤져라! 수행자들이 바나나를 들고 와 숙소에서 까먹는 경우가 많다. 

  예상적중! 숙소 쓰레기통에서 바나나 껍질 3개 획득! 커다란 비닐 쇼핑백에 이것들과 함께 아도카도를 몽땅 쓸어 넣었다. 그리고 24시간 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아보카도를 꺼내 잘라보았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생퉁 아보카도가 하룻만에 푹 익어있었다. 법진거사는 아보카도 맛을 충분히 보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남은 나는 일주일이 든든했다.

 

  커피타임 

  수행처에서는 개인의 기호를 버려야 한다. 담배와 술에 대해서는 너무도 당연해서 아예 언급조차 없다. 게시판에 붙은 규정에는 차와 커피는 마시지 않도록 돼 있는데, 공양 때는 커피나 짜이(차 +우유)가 나올 때가 많으니 그 규정은 자가당착인 셈이다. 

  아무튼 나는 평소 즐기는 대로 커피빈 두 봉지와 함께 휴대용 그라인더와 드리퍼를 갖고 갔다. 그런데, 바로 그게 수행처에서 인기 최고였다. 아침공양 후 커피를 한 잔 씩 갈아마시던 게 자연스레 커피타임으로 이어졌다. 커피 애호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룸메와 나, 그리고 K거사, C교수, H법사 등이 커피타임에 많은 얘기를 나눴다. K거사의 세계 방랑기, 재미교포인 C교수의 미국 명상의 현주소, H법사의 초기불교에 대한 체계적 교학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왔다. 커피를 매개로 담마토크가 이뤄진 셈이다. 어떤 땐 한 시간을 넘어 두 시간 가량 이어져 좌선 시간 한 시간을 집단 땡땡이치기도 했다.

  보름 만에 빈 두 봉지가 바닥이 났다. 차로 커피를 대신했지만 모두들 허전해 했다. 그러다 툰툰 씨와 인연이 닿아 그에게 커피 한 봉지를 부탁했다. 미얀마 커피는 예상 외로 품질이 뛰어났다. 100% 유기농이라고 표시돼 있었고 ‘Pride of Myanma'라는 텍이 붙어있었다. 모두들 맛이 기대 이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격은 2백 그램 한 봉지에 우리 돈 3천 원을 넘지 않았다. 

 

함께 있을 때는 법을 이야기하고,

혼자 있을 때는 성스러운 침묵을 지켜라.

-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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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9월30일 19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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