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여덟 번째 이야기 탁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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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의 행렬
테라바다 부디즘에서 유난히 강조하는 전통이 있다. 탁발이다. 한자 뜻대로라면 “밥그릇을 들이댄다”는 뜻이고 영어로는 ‘alms round’, 보시의 행렬이라고 한다. 신도들의 보시로 연명해야 하는 출가승의 입장에서는 밥그릇을 내밀어야 하고, 공덕을 짓는 신도의 입장에서는 보시의 기회가 된다. 한자로는 승가의 입장에서 영어로는 신도의 입장에서 만든 단어인 셈이다.
아무튼 탁발은 부처님 당시 성립한 승가의 오랜 전통이다. 그래서인지 탁발의 행렬은 맨발의 전통을 지킨다. 아침 6시 반 목탁이 울리면 30여명의 스님들이 맨발로 센터 입구에 모인다. 모두 테라바다의 가사를 입고 한 줄로 선다. 외국에서 온 스님도 다시 계를 받고 테라바다 가사를 입어야 탁발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온 스님들 여럿도 탁발에 참여한다.
맨 앞에는 가장 고참 몽크가 서서 탁발행렬을 이끈다. 법랍 순으로 행렬의 서열이 주어지는데 행렬의 뒤로 갈수록 나이어린 동승들이 따른다. 신도들은 행렬의 스님들의 바루에 집에서 지어 들고 나온 흰 쌀밥을 나누어 담아준다. 행렬의 맨 끝에는 힘 좋아 보이는 중고참 스님이 선다.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나누다 남는 밥을 맨 마지막에 따라가는 스님의 바루에 모조리 쏟아 넣어주기 때문이다.
탁발의식은 센터 정문 바로 안에서 시작한다. 센터 안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보통 출가자의 가족들이다. 얼마 전 출가한 무비스타처럼 잘 생긴 미국인의 모친도 매일 참여한다. 그 몽크도 탁발 대열에 있다.
행렬이 절을 나가면서 의식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양푼에 혹은 광주리에 담아온 밥을 담아온 마을 주민들이 줄을 지어 있다. 숟가락으로 지어온 밥을 탁발대열의 스님들의 바루에 나누어 담아준다. 그리고는 함께 나온 가족들과 함께 모두 그 자리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 거의 유아에 가까운 어린아이에서부터 80줄 늙은이까지 연령층은 다양하다. 그들이 땅바닥에 엎디어 하는 절을 대열의 끝을 따라가는 우리 같은 속인이 받기엔 너무도 황송하다.
그렇게 정해진 코스를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 보통 한 시간 반쯤 걸린다. 커다란 밥통을 여러 개를 실은 손수레가 미리 탁발 행렬을 앞서가서 미리 정한 포인트에서 기다리다가 스님들 바루의 밥을 받아 싣는다. 나는 며칠 동안 자진해서 이 수레를 미는 일을 했는데, 맨발로 탁발행렬을 세세하게 지켜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재원이 비교적 풍부한 쉐우민 같은 사찰들의 탁발의식은 실제적 필요에서가 아니다. 대중이 2백이 넘는 센터에서 먹을 음식을 탁발로 조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80%쯤은 상징적인 의식이다. 하지만 미얀마의 가난한 작은 사찰의 탁발은 몽크들의 생존 자체이다. 나중에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그런 탁발행렬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테라바다의 몽크들은 무소유의 계를 비교적 철저히 지킨다. 부처님 당시에는 내일 먹을 것을 오늘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당시 계율로는 밥 먹는 바루와 옷 두벌이 각자 소유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약품과 소금, 돈, 금붙이 등의 소유에 대한 계율의 해석을 둘러싸고 교단이 분열하는데, 테라바다는 상대적으로 본래의 전통을 엄격히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탁발에 대한 작가적 감수성
유명 작가 선생 한 분을 이곳에서 만났다. 아주 유명하신 분이었다. 그를 처음 알아본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아침(정확히 표현하면 새벽) 공양을 위해 선 긴 줄에서 내가 그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꼭 작가 OOO 선생님과 이미지가 꼭 같으세요.”
그가 대답했다. “제가 OOO입니다.”
잠깐 당황하면서. 아님 황당했을까?
그가 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인간정신의 심연을 천착해 온 작품세계를 가진 작가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도를 닦는 일’을 작품의 소재로 많이 삼았고, 작가 자신도 실제로 그런 수련을 오랫동안 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수행센터에서 며칠 함께 생활하다보니 참 독특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빡빡 민 헤어스타일부터.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넨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치 않고. 장소 불문하고. 그가 내게 처음 인사를 건넸던 장소는 선방이었다. 새벽 4시 타임이 끝나고 청소가 시작될 즈음이었는데, 합장하며 내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서로가 서로를 상관하지 않고 자기에만 몰두하는 이곳 분위기와 걸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빡빡 깎아서인지 퍽 젊어보였는데, 70이 다 되신 분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 작가 선생님은 센터에 온 다음부터 매일 아침 탁발을 따라 나갔다. 탁발의식 자체가 감동이고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탁발을 따라 나가 울면서 다녔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작가 선생님의 행동거지가 파격이다. 탁발 시 작가 선생은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퍼주고 난 빈 그릇에 붙은 밥알을 한 두알 떼먹는다. 신도들은 잠시 당황하면서 멋쩍은 표정을 한다. 작가 선생은 합장하면서 이들에게 인사한다.
“밍글라바, 제쯔띰바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신도들은 이내 멋쩍은 얼굴 표정을 무너뜨리고 답례한다.
“밍글라바, 제쯔띰바디” 둘 사이에 환한 미소의 꽃이 활짝 피어난다.
작가 선생은 말한다.
“신도들은 자신들의 절실함과 정성으로 탁발을 올리지만, 스님들이 공양물을 먹는 모습을 못 보잖아요? 내가 보여주는 거죠. 누군가 자신이 올리는 음식물을 먹는 걸 지켜보는 것도 환희이지 않겠어요?”
이어 말한다.
“이런 축복이 어디 있겠어요? 아침부터 너무 행복합니다.”
지켜보는 나 자신도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광경에 하루의 시작이 싱그럽다. 그리고 그는 매일 아침 천 짯 짜리 다섯 장을 주머니에 넣고 나간다. 아주 어린 아이나 나이 많은 노인들을 만나면 천 짯 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준다. “밍글라바 제쯔띰바디”를 외치며. 그리곤 무척 행복해 한다.
천 짯이면 우리 돈 천 원이다. “천 원으로 이런 행복을 살 수 있는 곳은 미얀마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내가 봐도 그는 행복하다. 지켜보는 나도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참기로 한다. 파격은 혼자만으로 족하다. 파격을 따라하면 새로운 격식이 된다.
작가 선생은 일주일 만에 떠나갔다. 자신이 수행하던 수행법과 새로운 쉐우민 방법이 너무 이질적이었던가 보다. 삼마타 수행을 주로 하는 파옥센터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상적인 에피소드에 대한 짧은 기억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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