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열여덟 번째 이야기 색깔 있는 수행자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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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에 뭔 나이가 있나?!”
잠시 머리 아픈 얘기를 미뤄두고 사람 이야기를 이어갈까 한다. 수행자들 사이에서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는, 색깔 있는 수행자들의 이야기로.
그는 이민 40년의 성공한 재미교포이다. 세계에 패브릭 붐이 불기 시작할 무렵 뉴욕에 터를 잡고 세계의 오지를 누비며 의류 직물 무역을 시작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고, 재산을 모았고, 그리고 나이가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68세의 나이로 대학에 다시 입학해 불교학을 공부하고 수행을 시작했다.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C교수’라고 불렀다.
나이 80을 눈앞에 두었지만 선방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20대 청년 같다.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마음도 젊다. 자신의 주장보다는 묻고 듣기를 즐긴다. 그가 이따금 전해주는 미국의 수행처와 수행자들에 대한 얘기는 늘 들을만했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미국은 지금 명상 열풍이다. 동양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상류사회를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20년 전만해도 젓가락질 할 줄 아는 미국인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젓가락을 못 쓰고 스시와 김밥, 회를 먹지 않으면 상류층으로 인정받지 못한단다. 미국 상류사회에 명상 붐이 분 것은 꽤 오래지만 이제는 스시 먹고 김밥 먹는 것처럼 명상이 일상화되는 양상이라고 한다.
구글이 직원들의 명상수련을 위해 명상담당 부사장을 영입한 사실은 보도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다. 실리콘 벨리는 미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곳인데, 그곳의 명상열풍은 초등학교에까지 불고 있다고 한다. 잘 나가는 영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명상수련을 시키기 때문이다. 미국 곳곳에 수백 곳의 명상센터가 있고 수련자는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어쩜 우리 것을 미국사람들에게 배우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외교는 춤춘다.
독일은 유럽 여러 나라 가운데 가장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세계전쟁을 두 차례나 일으켰고, 홀로코스트를 저질렀고, 그리고 분단을 겪었다. 그 에너지 과잉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유럽 국가주의 형성시기의 한 인물과 만난다. 독일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프로이센의 뛰어난 외교관이자 정치인 비스마르크가 바로 그 사람이다.
독일의 에너지 과잉은 그의 철혈정치의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숱한 결정이 밤의 외교무대에서 이루어졌다. ‘외교는 춤춘다’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쉐우민의 정적과 엄숙함을 녹이는 한 인물이 있었다. 그의 사교술은 상상을 초월한다. 온 지 일주일도 안돼서 한국에서 온 수행자들의 면면을 쫙 꿰는가하면, 상당한 영어실력을 발휘해 외국인 수행자들의 이력까지 취재 완료. 쉐우민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통해 요기들의 면면을 상세하게 알게 됐다. 그런가 하면 요가선생이라는 젊은 여성과 어느새 친해져서 하루 한 시간 요가 실습까지 주선해 놓았다.
센터에서 주는 모포 2장만으로 추운 밤의 잠을 설치던 내게 귀국하면서 자신의 특A급 모포를 물려주었다. 우리가 주는 대로 받는 데에 비해 그는 보급품까지도 자신이 고르는 수완가였다. 쉐우민에서도 외교는 춤을 추었다.
쉐우민의 비스마르크 K교수는 금융기관에서 고위 임원을 지낸 경력을 갖고 있다. 대학교수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데, 제3의 삶을 준비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특히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이른바 ‘힐링’에.
그는 명상을 몸소 체험하고 미래의 꿈과 그 경험을 접목시키고 싶어 한다. 강원도 깊은 숲, 옥수가 흐르는 곳에 힐링을 전수할 자리를 잡아놓았다고 한다. 그의 수완과 외교력이라면 그 꿈은 머잖아 가시화될 것으로 믿는다. 좋은 명상의 공간이 기대된다.
올드스쿨 멜랑꼴리 맨
‘범생’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외국인 범생은 다소 생소하다. 그들에 대해서는 ‘자유분방’이 일반적 인상이기 때문일까? 상상해보라. 키가 1미터90은 족히 넘을 거구가 한 낮 더위에 늘 긴팔 흰 셔츠를 입고 가르쳐 준대로 시선을 내리깔고 경행대를 걷는 모습을.
내 짧은 영어 때문에 그와 대화를 틀 엄두를 내지는 않았지만 퍽 관심이 가는 사나이였다. 그에 대한 상보는 역시 언어가 자유로운 교포 C교수를 통해 전해졌다. 식사 후 식당 옆에 놓인 벤치에 함께 앉았다가 면을 텄는데, 범생의 첫마디는 “이곳이 마치 감옥 같다”였다. 불평이 이어지는데, 대충 내용이 이렇다.
자신은 규칙을 애써 지키려 노력하는데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너무 많이 눈에 띤다. 우선 복장에서부터 눈에 거슬린다. 모두가 규칙대로 론지(치마)를 입지만 상의는 제멋대로다. 자신처럼 긴 팔 하얀 셔츠를 입는 사람은 없다. 오후불식의 규칙도 옆방 동료들은 안 지킨다. 뭐든 몰래 들여다 먹는 거 같다. (사실 서양 요기들 중 통조림이며 소시지며 빵 따위를 들여오는 걸 나도 본 적이 있다.) 자율로 하는 수행인데 그럴 거면 뭐 하러 이곳에 오느냐? 감옥과 다를 게 뭐 있느냐?
이런 불평에 C교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럼 너도 긴팔 흰 셔츠 벗어버리고 무늬 든 짧은 팔 옷으로 갈아입어라. 오후에 배고프면 뭐든 살짝살짝 먹어라.” 범생은 완강하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올드스쿨(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그의 표정은 대체로 우울하다. 날마다 정도만 다를 뿐이다. 측정기가 있어서 그의 우울도를 잰다면 70에서 90을 왔다 갔다 하리라. 그래서 이후 나는 그에게 ‘올드스쿨 멜랑꼴리맨’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줬다.
수행처가 감옥 같다는 범생. 이럴 즈음, 중국의 선사들이라면 이렇게 대꾸하지 않았을까?
“누가 너를 가둬 놓았느냐?”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이런 禪氣 어린 말들을 보통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거 같다. C교수는 그에게 사야도를 개인면담해 보라고 권했다. 그런 다음 애프터 쳌까지 했는데, 과연 사야도를 만난 뒤 그의 우울도가 현저히 감소한 듯했다. 40에서 50 정도. 급기야 어느 날 식당에서 내게 미소까지 보냈다.
법진거사에게는 식사 때 외는 게송을 자신에게 가르쳐달라고까지 했다. 사야도는 도대체 그를 어떻게 다뤘을까?
여신의 강림
어느 날 센터에 미모의 서양여성이 나타났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모델처럼 날씬한 몸매, 금발에 푸른 눈. 외국 여성잡지 표지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용모의 여성이었다.
용모뿐이 아니었다. 패션도 여염의 여성이 아니었다. 해질 녘 경행을 즐기는 듯 했는데 수행처에 걸맞는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패션의 포인트는 예사롭지 않았다. 이를테면 파스텔 톤의 스카프를 목에 맨다든지 챙 넓은 모자를 써서 액센트를 주었다. 누가 봐도 그 방면 아마추어가 아님을 알 수 있을 정도?
일상을 살면서 이런 정황에 처했을 때의 느낌은 일종의 황홀감이다. 이를테면 톱 탈런트와 한 끼 식사를 함께 할 때의 그런 황홀함. (이런 경험은 우리 나이쯤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두 번쯤 있다.) 본인이 베이징에서 일하던 시절 대하사극의 타이틀롤 촬영차 온 남 녀 주인공들과의 저녁식사라든가, 지금도 여전히 톱인 소녀 아이돌의 인터뷰를 바로 옆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켜보던 경험 같은 것. 그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을 내내 지켜보던 그런 경험의 여운은 길다. 일상의 마음은 그렇게 반응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수행센터에서 마음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수행자들은 스위스 국적의 이 여성을 TV화면을 보듯 무심하게 대한다. 일행이 없는 듯 그녀는 늘 외톨이였다.
미얀마라는 나라가 그런가? 미얀마에서는 산업화된 나라들과는 달리 연예인을 모델로 하는 광고 입간판이 그다지 많지 않다. (휴대폰과 코크 등 몰려들어오는 서양문물 입간판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다.) 오히려 유명 스님들의 마루사진(동그란 증명사진형태의 사진)과 법회 안내 입간판은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도무지 해독 불가한 미얀마 알파벳으로 치장한 고승들의 마루사진보다는 센터에 강림한 여신의 경행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이럴 때 예상되는 사야도의 가르침은... “보기 좋은 건 보기 좋은 거고... 보기 좋아한다는 걸 알아라...”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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