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신년특집> (3)미로(迷路) 속에서 출구 찾아야 하는 한국경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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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계묘년(癸卯年) 세계 경제를 특징짓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기침체’일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견이 거의 없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경제전망이 많기는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지난 3년 동안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CORVID19)가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등 경제활동에 대한 제약이 완화되었고,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코로나 극복을 위해 풀렸던 천문학적인 규모의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면서 전 세계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다. 공급망 붕괴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유를 포함한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폭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었고, 미·중 패권분쟁과 ‘자국 우선주의’와 ‘경제안보’에 따른 동맹관계의 재편은 글로벌 통상환경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미국 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전 세계적인 금리인상 도미노를 불러왔고, 그로 인해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2022년 세계경제는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삼중고에 시달렸다. 작년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인 9.1%에 달했다. 뒤늦게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 연준은 작년 3월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려 '제로 금리 시대'를 끝냈고, 6월부터 4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인상)을 밟는 등 파격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하였다. 지난 12월 14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연준은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상한 4.25∼4.5%로 결정했다.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미국의 실업률(작년 11월 3.7%)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올해 초반 연준이 기준금리를 5% 초반으로 올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올해 미국경제가 역성장<스탠다드차티드(SC)그룹 –0.2% 전망>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제롬 파웰 연준 의장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진정되면서 경기침체가 본격화될 경우 하반기 금리인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상황은 더 심각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2월 21일 발표한 ‘2023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2023년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작년 6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제시했던 2.5%보다 0.9% 포인트나 낮은 1.6%로 전망했다.1)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그만큼 경제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한국경제가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고,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이 글로벌 경기침체와 반도체 업황 부진 때문에 3년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 4.5%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큰 폭(-6.4%)으로 줄면서 경상수지는 210억 달러 ‘불황형 흑자’를 낼 것으로 추산했다.
취업자 수는 작년 증가 폭(81만 명)보다 88% 줄어든 10만 명에 그치지만, 실업률은 작년(3.0%)보다 소폭 상승한 3.2%로 전망했다. 물가상승률은 원자재 가격 하락, 수요 둔화에 따라 작년 5.1%에서 올해 3.5%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의 둔화 폭은 완만하게 나타날 것으로 봤다.
한편, 한국은행도 12월 23일 '2023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보고서에서 "내년 기준금리는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로 수렴해 나갈 수 있도록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운용 기조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금리 격차가 1.25% 포인트로 22년 만에 최대치로 벌어진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한은으로서도 현재 3.25%인 기준금리를 소폭이라도 올리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2023년 물가상승률은 상당 폭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 대부분의 경제성장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세계경제성장률도 2%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수요위축이 클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이 증폭될 경우 환율 변동성이 다시 커질 수 있지만, 유독 달러화만 초강세를 보이던 킹달러 현상도 최근 완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2022년 6월 배럴당 120달러를 넘었던 원유(WTI) 가격도 8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이 12월 5일부터 러시아산 ‘원유가 상한제’(배럴당 60달러)를 시행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반발해 석유수출 통제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중국경제를 포함한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금리인상이 시차를 두고 소비와 물가상승률 하락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2022년의 급격한 금리인상 효과가 2023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금리인상과 물가상승률 하락은 수요위축과 투자부진을 초래하고, 그 결과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 정부의 기대와 달리 하반기에 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
2023년에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블랙스완(black swan)’식 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파급력도 크지만, 제대로 대비를 못하고 간과하는 위험인 ‘회색 코뿔소(gray rhino)’식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있다. 특히, 한국은 코로나 기간 동안 더 악화된 부채문제로 인한 신용리스크가 커질 경우 금융위기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 12월 22일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실물·금융 지표를 바탕으로 산출된 금융불안지수(FSI)가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자금·신용 경색까지 겹치면서 최근 '위기' 단계까지 치솟았다. 가계와 기업의 빚(신용)이 GDP의 224%(3593조원)로 급증했다. 187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도 큰 문제지만 최근 기업대출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계기업의 비중이 2021년 14.9%에서 2022년 18.6%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2) 올해는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한계기업 비중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위기 시 정부가 한계기업을 연명시켜주는 경우가 많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기업 부문의 잠재부실을 털어내고 기초체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면서 옥석을 가려 생존 가능한 기업에는 충분히 유동성을 지원하고 한계기업은 조속한 퇴출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수많은 한계기업이 도산하기는 했지만 2008년 9%였던 한계기업 비중이 2012년 15%로 오히려 증가하였다. 그 결과는 산업구조의 역동성 상실로 나타났다. 정부가 한계기업을 살리려다 세금만 축내고 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린 셈이다.
올해도 비슷한 정책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 신생기업의 시장진입과 한계기업의 퇴출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건강한 산업·기업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현재 부동산업과 건설업 분야의 한계기업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판단이다. 자영업자 대출규모도 1014조원을 넘어섰다. 구조조정과 회생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일단 대규모 연쇄도산은 막고 보자는 식의 ‘면피성’ 정책집행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덮어버리고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 등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이미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적절한 거시정책조합(policy mix)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민생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현재의 여소야대 국면과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일관성’ 있는 정책집행이 이루어지기 어려워 보인다.
현 상황은 곳곳이 지뢰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위기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위기관리는 달라져야 한다. 대증적인 임시방편으로 포퓰리즘에 편승해서 위기를 넘기는 것은 시효를 다했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문재인정부의 27번이 넘는 부동산정책의 참담한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올해 불황은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초(超)저성장’ 국면으로의 진입을 경고하는 신호로 봐야 한다. 수성(守城)에만 급급하게 되면 소멸(消滅)될 수밖에 없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출구(出口)를 찾아야 한다.
지금과 같이 위기를 동반한 대변혁의 시기가 구조조정과 경제체질 개선의 적기다. 코로나 시대의 최대 화두가 연명(延命)이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전환(轉換)이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훨씬 앞당겨진 디지털 전환(DX)과 녹색전환(GX)이라는 대전환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과 지속성을 결정짓는 핵심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닌 속자생존(速者生存)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치열한 경제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경제단체장들의 최근 발언들을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지난달 열린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및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탄소중립 같은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이것을 더 이상 비용화시키지 말고 시장화시키는 해법이 필요하다. 탄소중립 관련 기술을 하려면 대한민국에 와야 한다는 포지션을 만들어내는 게 미래 먹거리를 위해 중요하다.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시장화할까 생각해 보면 투자 활성화가 잘 이뤄질 것"이라고 발언하고, 신년사에서도 손자병법의 ‘이환위리(以患爲利·고난을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를 언급한 것은 올해와 같은 대전환시대에 기업이 미로(迷路)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경련 허창수 회장이 신년사에서 “환부작신(換腐作新·썩은 것을 도려내어 새것으로 바꾼다)의 자세로 전방위적 구조개혁을 추진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 것도 기업인들이 느끼는 절박함과 각오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23년 경기침체가 불가피해 보이기는 하지만 출구는 있다. 대전환의 흐름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것이다.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민간중심 활력제고가 말잔치에 그쳐서는 안된다. 정부가 투자 방향을 정하고 민간 금융이 따라가는 과거와 별반 다름이 없는 정부주도 방식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한 것처럼 정부가 시장의 효율성을 높게 만들고 공정하고 경쟁력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선수가 되어서 직접 운동장을 뛰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경제주체들이 능동적으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역동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해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기업들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디지털 전환, 녹색 전환)에 능동적인 대처해야 하고, 경기가 침체기일수록 혁신과 전환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핵심사업에 집중해 나가야 한다. 어려운 한 해가 되겠지만, 재도약의 발판이 마련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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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11월 말 기준 9개 주요 외국계 IB(바클레이즈·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씨티·크레디트스위스·골드만삭스·JP모건·HSBC·노무라증권·UBS)의 2023년 한국 성장률 평균은 1.1%로 정부 전망치보다 0.5% 포인트 낮다. 일반적으로 외국계 IB는 소비 등 내수 경제와 관련 지표보다 수출과 관련 깊은 설비투자 같은 대외 변수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작년 3분기 이후 설비투자를 결정하는 기계류 수주가 급감했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올해 설비투자의 위축이 불가피하다.
2) 한계기업이란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비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기업으로, 영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대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계속된 기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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