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촉발되고 있는 ‘전 국민 고용보험’ 유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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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고용보험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개최한 정책 세미나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 국민 건강보험처럼 전 국민 고용보험을 갖추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의 과제"라고 발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한국노총과의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고용보험 밖에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한국형 실업 부조, 국민취업제도, 특수고용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민주노총, 정의당 등이 "고용보험 미가입자가 1000만 명대"라며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요구해 왔는데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청와대와 거대 여당이 이에 공개적으로 화답한 것이다.
고용보험 가입 현황
‘고용보험’ 제도는 사회보험의 일종으로 근로자(보수의 0.80%)와 사업주(보수총액의 1.05~1.65%)가 공동으로 부담하여 조성한 기금으로 운용되며 실업의 예방, 고용의 촉진 및 근로자의 직업능력개발․향상, 실직근로자의 생활안정 및 재취업을 지원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8월 기준으로 2,056만 명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70.9%로 2004년 52.2%에 비해 18.7%p나 상승했다. 그러나 정규직 근로자가 61.5%에서 87.2%로 대폭 개선된 반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36.2%에서 44.9%로 소폭 증가에 그쳤다.
한편 무급가족 종사자 포함해 680만 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2012년부터 ‘자영업자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해 비자발적으로 폐업한 자영업자가 재취업·재창업활동을 하는 동안 실업급여 지급 및 직업훈련 지원을 통해 생활안정 및 재취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의무화된 고용보험과 달리 본인이 원하면 가입할 수 있는 임의가입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가입자는 2019년 12월 기준 15,549명으로 가입률이 0.38%에 불과하다. 이는 고용보험은 일반 근로자는 내야 할 보험료의 절반을 사업주가 나눠 부담하지만 자영업자는 보험료 전액을 내야하고, 실업급여를 받는 요건이 상대적으로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책추진 전망 및 쟁점
여대야소로 5월말 출범하는 제21대 국회에서 고용보험 가입자 확대 입법에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자영업자 고용보험 의무화와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을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20대 국회에 제출된 바 있는 특수고용직(특고)과 예술인을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 추가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다. 220만 명에 달하는 특고 중에서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트럭,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모집인, 대리기사 등 상대적으로 근로자 성격이 강한 산재보험 적용 대상 9개 직종(약 48만 명)의 종사자부터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될 것이다. 연간 3,000억 원 정도의 고용보험 수입과 지출 증가가 예상된다. 그러나 나머지 특고 170만 명은 자영업자 성격이 강해 자영업자 고용보험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가입이 부진한 자영업자 고용보험을 의무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영업자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지금도 보험료 부담 때문에 가입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의무화하면 제2의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국가재정의 지원이라는 당근책이 주어질 것이다. 400만 명이 넘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에 대해 정부가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한다면 수 조원에 달하는 국민세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자영업자를 고용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시키고 있는 선진국은 없다.
자영업자는 실업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만 보험료 부과를 위한 소득 파악도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폐업이 아니라 매출액 감소로 일시적으로 문을 닫을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하는데 그 기준을 정하기 어렵고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실업부조 제도가 도입될 것이다. 시행 중인 ‘청년구직촉진수당’을 확대하여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법제화를 위해 정부가 지난해 9월 제출한 ‘구직자 취업 촉진 및 생활 안정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제도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미취업 청년,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등의 실업자에 대해 국민세금으로 월 50만 원씩 최장 6개월 동안 수당을 지급하고 맞춤형 취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예산 사업이다. 연간 300만 명에 달하는 잠재적 대상 중에서 시급한 40만 명에 대해서만 수당을 지급해도 국민세금 1조 2,000억 원이 든다.
OECD 국가 중에서 13개 국가가 실업부조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는 실업보험 제도 없이 실업부조만 있고, 여타 국가들은 실업보험과 실업부조를 병행하고 있다. 실업부조 제도가 관대할수록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져 고용보험제도 자체가 부실화될 우려가 높아질 것이다. 고용보험 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실업부조 제도는 보완적인 역할만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고용보험의 하한선은 낮추고 상한선을 높여 일하지 않고 실업급여에 안주하거나 소득을 축소보고 하려는 유인 자체를 없애야 할 것이다.
재원조달 문제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에는 필연적으로 고용보험료, 세금 등 수 조원 규모의 국민부담 증가가 수반될 것이다.
고용보험기금은 고용보험법 제84조에 따라 연간지출액의 1.5~2.0배에 달하는 적립금을 보유해야 한다. 그러나 2018년 말 실업급여 계정 적립금은 5.5조원으로 지출액의 0.7배에 불과했다. 그 동안 흑자를 보이던 고용보험기금이 최저임금 인상과 실업자 급증으로 인해 2018년 0.8조원의 적자를 보였다.
2019년에도 지급수준 인상(평균임금의 50% → 60%) 및 지급기간 연장(3~8개월 → 4~9개월로 30일 이상) 등 보장성 강화로 인해 10월에 근로자·사용자 보험료율을 각각 0.65%에서 0.8%로 인상했음에도 적자규모가 2.1조원으로 늘어났다. 금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3월 구직급여 수혜자와 지급금액이 각각 전년 대비 26%와 40%나 증가해 적자 폭이 더욱 커지고 조만간 고용보험기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이처럼 기금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가운데 고용보험 대상을 확대하고 기금 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앞으로 큰 폭의 고용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지금도 정규직 사이에서는 일부 비정규직들이 ‘꼼수’로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는 불만이 높은데 앞으로 확대되는 가입자의 실업급여 수혜율이 기존 가입자에 비해 높고 보험료율도 인상된다면 이런 불공평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사회보험이라 할지라도 가입자 간의 차이가 크다면 최소한 이러한 차이를 보험료율 등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자영업자 고용보험의 경우에도 노란우산공제회처럼 유사한 직종을 묶어 차별화된 고용안전망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근로자와 사업주의 고용보험료 부담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고용보험 의무화에 따른 지원,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에 각각 국민세금이 수 조원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국가재정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금년도 재정적자가 GDP 대비 3.5%로 OECD 국가 중에서 3번째로 크고 국가채무도 39.8%에 달할 전망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악화 규모를 추산해 보니 47조원에 달한다. 총지출 규모가 2차례 추경과 논의 중인 3차 추경을 감안하면 31조원이 넘고 성장률 급락에 따른 국세수입 감소도 16조원을 초과할 것이다. 경상성장률을 –1%로만 잡더라도 명목 GDP가 줄어들어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가 6%를 초과해 역대 최대였던 1998년 IMF 위기 직후의 4.8%를 크게 초과할 것이다. 국가채무비율도 45%에 육박할 것이다. 2009년 30%에서 이후 2018년까지 9년간 불과 6%p 증가에 그쳐 국가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되었는데, 지난해 2%p, 금년 7%p 등 최근 우리나라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는 내년 이후 국가신용등급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이다.
섣부른 정치적 제안 '유감'
비정규직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실업자에게 자립과 자활을 위한 재기에 필요한 생활안정과 고용촉진을 위한 고용안전망 제공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당위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정책 설계와 재원조달 및 부작용에 대한 대책 등을 면밀하게 따지지 않은 섣부른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은 기대하는 효과는 실현되지 않고 대신 국민부담 만 늘리는 정책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감염병 확산 억제정책은 비록 다소 섣부르다 할지라도 국민생명 보호를 위해 과감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라는 매우 비정상적인 고용상황을 빌미로 과도한 고용안전망 확대를 정치적으로 밀어부칠 경우 향후 국가재정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가 감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또한 고용안전망 확대 문제는 우리 경제의 성장과 활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보다 큰 그림 속에서 같이 다루어져야 할 중요하고도 어려운 사안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여당 원내대표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설익은 정책을 과도하게 포장하여 불쑥 제기할만한 가벼운 사안이 아닌 것이다.
향후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매우 정치적 슬로건 하에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식 정책 추진이 아니라 노동, 복지, 경제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과 정책현장의 고민을 녹여 실제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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