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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54> 6500만년을 물 속에서 산 짐승 물고기 - 이건청 시집 『실라캔스를 찾아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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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10월07일 16시55분
  • 최종수정 2023년10월03일 16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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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구가들이

6천5백만 년 이전의 퇴적암에서

원시 물고기 화석을 찾았다

짐승의 이빨과 다리 흔적까지 지닌

물고기 화석이었다.

고생물고고학은 이 화석물고기가

3억 6천만 년부터

6천5백만 년 전까지 살았던

육지척추동물의 조상 물고기라고 적었다.

해와 달과 바람

눈 시린 파도 가고 오던

지구별에 너무 일찍 와

하염없었던,

진화의 대세를 따라

모든 동물들이 떠나갔는데도

육지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물속을 찾아 간

육지척추동물의 조상

진화를 거부하고

지질 속에 화석만 남긴 채 사라진

숨어버린

진화를 거부한,

짐승의 이빨과 네 다리, 폐(肺)의 흔적까지 지닌 채

6천5백만 년을 물속에서 숨어 견딘

살아서 그물 속에서 잡혀 올라온 물고기

숨어서 자신을 지킨

부정과 저항,

푸드기는 푸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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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라캔스를 찾아서 

 

시집 ‘실라캔스를 찾아서’의 기본 모티프가 ‘죽음’의 문제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은 내 나이 80에 접어들게 되면서 지니게 되는 어떤 한계의식 같은 것을 의식하면서 쓰게 된 시편들이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죽음이라는 걸 숙명으로 지니게 된다. 지근거리에서 세상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육신의 쇄락도 알게 모르게 겪게 된다.

3억6천만 년에서 6천5백만년 전, 퇴적암에서 발견된 화석 물고기 실라캔스는 육지 척추동물의 특징들을 거의 그대로 지닌 채 1938년 어부의 그물에 잡혀 올라왔다. 몇 억 년의 시간을 물속에 살았으면서도 물속 환경을 따라가 동화되기를 거부한 채, 애초의 자신을 지켜온 실라캔스의 자존의지 앞에 서서 나는,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되뇌어 보는 것이다.

지구에 표층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38억 년쯤 된다고 한다. 이후, 지구가 겪은 융기, 충돌, 분화를 포함한 모든 변화의 양상과 내용들은 켜켜이 지질로 쌓이고 시대별 암반 지층으로 굳어있다. 나는 내 삶이 이 지질 암반들이 품고 있는 무량수의 시간들과 충분히 화해되기를 바란다. 머지않은 때에 나 또한 2000년대 퇴적암 어딘가로 귀의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라캔스(coelacanths)는 3억6천만 년에서 6천5백만 년 전의 퇴적암에서 발견되는 물고기 화석이다. 이 물고기 화석은 육지척추동물처럼 네 다리의 흔적을 지니고 있으며, 이빨, 공기 호흡의 흔적인 허파의 흔적도 지니고 있다. 실라캔스는 일반 물고기와는 다르게 새끼를 출산한다. 실라캔스가 지닌 이런 흔적들은 이 물고기가 육지척추동물로 분화되어가던 시기의 조상물고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가 된다.

 

실라캔스는 2억5천만 년 전쯤에 지구위에서 크게 번창하다가 백악기가 끝나고 신생대가 시작될 무렵(6500백만 년 전) 공룡과 비슷한 시기에 멸종된 것으로 간주됐었다. 그러나, 1938년에 남아프리카 코모로 제도 근해에서 살아있는 실라캔스 한 마리가 어부의 그물에 잡혀 올라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6천5백만 년 전쯤 이미 지구상에서 멸종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화석물고기가 화석이 아닌 살아 있는 실체로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실라캔스의 등장은 여러 가지로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6천5백만 년 만에 살아 있는 실체로 모습을 드러낸 이 물고기는 그동안 화석으로 모습이 전해져 온 실라캔스와 같은 것인가? 6천5백만 년 동안 그 몸의 구조와 기능은 어떻게 달라져 있는가? 그런데, 6천5백만 년의 까마득한 시간을 뛰어넘어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 이 물고기는 화석으로 전해주고 있던 6천5백만 전 그것의 정보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빨을 지니고 있었으며, 다리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육지동물의 허파를 지니고 있었는데 물속에서 생활하는 동안 기름으로 차 있었다. 육지동물처럼 새끼를 출산하고 있는 것도 밝혀졌다.

 

“모든 생물은 진화한다“는 것이 진화론의 절대명제이다. 그런데, 실라캔스는 이 진화론의 절대명제를 뛰어넘어 진화되지 않은 채 원래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고생물고고학은 하나의 종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대략 1000만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실라캔스는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진화되지 않고 원형을 거의 그대로 지니고 살아남아 그 모습을 들어 낸 것이다. 나는 6천5백만 년의 저 까마득한 시간을 홀로 견딘 실라캔스의 고집과 신념과 용기가 부럽다. 모든 동식물들이 환경에 따라 몸을 변화시키면서 진화의 길을 따랐다. 그런데, 실라캔스의 무엇이 진화의 큰 길을 벗어나 반대쪽 길을 선택하게 했으며 장구한 시간을 묵묵히 견디게 한 것인가?

 

실라캔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의 생존 방식을 따르지 않은 물고기이다. 찰스 다윈(1809~1882)이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탐험하기 위해 비글호에 승선한 것이 1831년이었다. 다윈은 파타고니아 섬 등 멀리 떨어진 섬들을 탐험하면서 수많은 화석들을 수집하였는데, 많은 화석들을 비교하면서 과거에 멸종한 생물이 현재 살아 있는 종과 유사한 모습과 특질을 지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에 서식하는 동식물이 기후 조건이 비슷한 남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하는 동식물과 크게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같은 종의 동식물도 처해 있는 생태 환경이 다르면 서로 다르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윈은 『자연선택에 관한 종의 기원에 대하여』 『인간의 유래와 성에 관한 선택』 등의 논문을 통하여 생물이 진화한다는 진화론을 발표하였고 이후, 진화론은 부동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일부 학자에게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종교계에 엄청난 파문을 던졌다. 다윈 자신은 신학과 사회학에 관한 언급을 극도로 꺼렸지만, 많은 학자가 자신들의 이론을 지지하는 수단으로 다윈의 이론을 이용하면서 과학계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상의 모든 생명이 신의 창조물이라는 중세 종교관으로 볼 때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신 중심의 우주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가치관의 대변혁이 비롯된 것이다. 찰스 다윈은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함으로써 그가 주창한 진화론의 논거를 만들어나갔다. 그런데, 장구한 시간동안 진화되지 않고 원형을 지켜 온 실라캔스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살아있는 모습으로 발견된 실라캔스를 보면서 이 물고기의 생태가 인간의 삶에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세에 따라 부화뇌동하듯 살아가는 사회는 점검되어야 하는 것이고 잘못된 흐름은 비판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지성인은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비판의 자리에 설 때, 참 지성일 수 있는 것이다. 시의 책무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천편일률적 편의주의, 보편주의, 대중추수주의(大衆追隨主義)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성의 책무가 막중한 것이다. 지성은 현실비판의 자리에 설 때만 제 몫을 할 수 있다. 지성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위기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고, 위기 극복의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인텔리켄치아로서의 책무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현실을 바르게 통찰하고, 그 한계가 무엇인가를 바로 볼 수 있을 때 극복의 비전까지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진화의 대세를 따르지 않고 6천5백만 년을 견뎌온 실라캔스가 참 인텔리겐치아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내게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6천5백만 년 칠흑의 시간 속을 살면서‘원초적 자기’로서의 이빨과 다리 흔적과 폐의 흔적을 지켜온 집념, 맹목의 대중추수적 안일을 거부한 물고기, 실라캔스를 시적으로 추적해보려는 시도는 나름의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시와 인간의 근원을 되밟아 성찰해보고 싶은데, 시적 긴장과의 응전은 힘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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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10월07일 16시55분
  • 최종수정 2023년10월03일 16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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