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IT 사랑방>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언론보도 관성과 정치권 남용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6월04일 16시51분

작성자

  • 양창규
  •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 한국벤처창업학회 이사

메타정보

  • 4

본문

2019년 가학적인 영상과 같은 불법촬영물을 제작·배포하고,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착취 등의 범죄를 일으킨 소위 ′N번방′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가스라이팅을 통해 음란물을 상납 받고, 이 음란물을 돈을 받고 유포한 입에 담기도 거북했던 사건이었다. 더욱이 텔레그램을 통해 무려 6만 명이 디지털 성범죄 사진과 영상을 다운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더 큰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결국 이 사건의 주동자는 징역 40년의 무거운 실형을 받았고, 이 불법촬영물을 다운받은 사람들도 평균 600여 만원의 벌금형을 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이후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해졌고, 관련법도 개정되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딥페이크 기술을 접목해 더욱 더 교묘해지고 있다. 특히,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올려 진 사진을 이용하여 AI 음란물을 제작해 주는 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생태계를 통해 소통하는 지금 우리는 누구나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류에 따라 여당은 지난 5월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공개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발표를 촉발하게 한 ′여성판 N번방′과 ′서울대 N번방′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고,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판 N번방′ 사건은 일반적으로 성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라는 인식을 깨버렸다는 점이 과거 ′N번방′ 사건과 다른 점이다. 상대방의 신상을 동의 없이 공유하고, 성을 매개삼아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농락을 한 사건으로 개인정보유출·명예훼손 등의 처벌 대상이나 과거 ′N번방′ 사건과 같은 성착취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 ′서울대 N번방′ 사건 역시 성착취 범죄와는 거리가 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이용한 허위 음란물을 만들어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사건이다. 이렇듯 ′N번방′ 사건이라는 프레임을 제외하면 디지털 성범죄라는 분류만 같을 뿐 사건의 실체적 내용은 다름에도 같은 선상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들을 다루는 기사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댓글이 “조주빈이랑 똑같이 처벌해야 정의구현”이라고 한다. 즉, 다른 사건임에도 언론이 범죄행위 자체가 아닌 가해자의 성별이나 특정 집단을 비교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에 기사를 접하는 이들은 사건의 실체에 관심이 적다는 점이다. 또한, 이렇게 상업적으로 구성한 ′N번방′ 사건이라는 프레임을 정치권에서 여과 없이 언급했다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 여성정치인은 ′여성판 N번방′ 사건을 ′명백한 N번방′으로 규정하며 젠더갈등을 유발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어 범인을 잡기도 어렵고 누구라도 쉽게 범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특히, 딥페이크와 같은 이미지와 영상 합성 기술이 발달하면서 범죄의 수법도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기법의 고도화나 지속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때문에 앞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필요하고, 수사기관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접근방식이 중요하다. 앞선 사례와 같이 실체적 사실이 아닌 ′N번방′ 사건이라는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보도했던 언론이나 언론보도만을 근거로 젠더갈등만 가져오는 발언으로 혼란만 가중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당면한 심각한 문제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예방할지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이 디지털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담론을 전하는데 집중하고, 정치권에서는 디지털 성범죄에 맞서 우리 국민들의 안전이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정책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ifsPOST>​

4
  • 기사입력 2024년06월04일 16시51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