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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덱스에서 시뮬라르크로 향하는 가상공간
인간의 지식과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으로는 소리를 통해서나 그림으로 그러다가 차츰 문자(텍스트)를 이용하면서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이들을 통합하여 순환적인 디지털 벡터로 전달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와 있다. 소리가 텍스트로 영상과 텍스트 그리고 소리가 한 덩어리의 디지털 신호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가상의 세계로 들어섰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소리로 소통하는 방법이 가장 원초적이었지만 차츰 인지가 발달하면서 시공간을 뛰어넘는 문자 기록으로 확장 되어왔다. 거기에다가 그림이나 도형을 이용하여 지식정보를 이미지화하거나 상징적인 축약으로 소리(sound), 글자(text), 그림영상(image)이 인류의 지식정보를 생산하고 또 상호 전달하거나 대량의 디지털 신호로 갈무리하면서 급속도의 문명 발전을 이끌어 왔다.
과학 발전에 따라 전달 매체나 방식이 금석에서 파피루스나 종이로 진화하면서 인쇄술의 보급은 인류 사회의 산업 발전을 추동하는 결정적 계기를 맞이하였다. 고려시대 금속활자의 발명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쏟아져 나오는 인쇄된 다량의 텍스트 정보들을 이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바로 인덱스(Index)라는 찾아보기의 기술이 낱말과 위치 정보 곧 쪽수와 연결하여 책의 뒷면에 싣는 전통이 생겨났다. 이와 함께 난해하고 어려운 낱말의 뜻이나 품사와 문법 정보를 더 보텐 사전(Dictionary)을 만들면서 지식정보의 관리가 더욱 고도화한다. 문명과 문화가 화려하게 발전된 나라일수록 사전이 발전되었다.
자, 여기서 세상의 온갖 존재에 대해 언어로 명명한 일대일의 대응 관계가 얼핏 보면 무척 견고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삼각형‘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가 매우 명쾌한 듯하지만 실로 전혀 그렇지 않다. 큰 삼각형, 작은 삼각형, 뒤집힌 삼각형 등등 삼각형의 변의 길이나 위치 정보에 따라 거의 무한한 대상 곧 철학적으로 존재(Sein)의 다양함을 플라톤은 이데아(Idea)라고 명명한다.2)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진리라고 믿고 있던 지식 개념의 체계가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 여기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컴퓨터의 기술은 거의 무한정에 달하는 지식정보를 기계적으로 인댁싱하고 코딩하여 재구성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본질에 대한 인간 하나하나가 인지하는 차이가 곧 본질 하나하나를 시뮬라르크라고 프랑스 미학자 보드리야르가 정의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만두’라는 음식에 대한 사전적 풀이는 허구에 가까운 것이다. 어떤 재료로 여하한 방식으로 만드는가? 간의 정도나 감미 정도에 따라 '만두‘라는 음식의 시뮬라르크는 천차만별로 다른 모습이므로 만두라는 본질의 재현은 펼칠수록 복잡하고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다. ‘만두'를 핵심으로 재료나 만드는 방식, 맛 등등의 정보를 집중시켜 정보의 태킹을 모으는 방식으로 또는 ’만두‘의 외적 정보 곧 맛깔을 중심으로 정보를 연계하거나 아니면 전자의 방식을 거물 망처럼 성층화된 분포망을 만드는 AI기술을 태동시킨 철학자가 들뢰즈이다. 무한히 미시적인 부분까지 인식이 달라지는 미분화된 지식정보의 차이를 얽어 냄으로서 사물의 존재의 심오한 깊이를 더욱 아름답고 넓고 깊은 생각의 가상적 매트릭스로 펼쳐내게 될 것이다. 드보르가 말한 차단된 세상의 출구가 아닌 세상 안쪽에 숨어 있는 유토피아를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유력한 한 언어 정보회사에서는 지리적인 방언 차이, 세대별 방언 차이 등의 다양한 방언 데이터를 사들이고 있다. 소위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들이 생산해 온 온갖 고급 정보에서부터 아무짝에서 쓸데없어 보이는 각종 데이터 곧 텍스트, 음성, 이미지 정보들을 대량으로 끌어모아 클라우드(cloud)로 구축하고 있다. 이 클라우드는 지식정보의 구름 덩어리이다.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끌어다가 사용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를 만들고 있다. 기계가 텍스트를 인식하고 소리를 듣기도 하고 또 재생하기도 하며 사물이나 이미지를 기계가 인식하며 또 텍스트와 소리 그리고 이미지를 연결하는 어휘 거물망을 짜내는 기술력이 이미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여태 동안 방치했던 토착 지식의 보고인 방언을 클라우드로 구축하면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늘 한양대 건축학부 한동수 교수실 콜로키움의 주제인 한국 전통적인 고건축의 용어는 이미 사전으로도 편찬된 바가 있으며 이름있는 도목수들 삶의 기록한 생활사 기록 조사자료와 함께 많은 보고서 자료들이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표준형에서 누락된 지역 방언 병이형들, 지역 도목수들의 구어에 남아 있는 방언들의 자료가 본격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건축학과와 인문학 분야와의 공동협력으로 고건축분야 방언 자료를 조사하고 또 이를 건축용어사전을 보강해 줄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한 민족의 공통 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해서 ’의(衣)식(食)주(住)‘라고 한다. 왜 식의주가 아니고 의식주인가? 한류문화의 근본 바탕은 이 의식주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의식주 중에 의(衣)는 의례나 예의범절을 위한 의복 문화라고 할 수 있고 식(食)은 음식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주(住)는 거주 문화를 말한다. 의를 우두머리에 놓은 것은 인간다움을 겸양과 겸손을 갖춘 인간의 미덕을 중시하는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추구한다. 이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평생 동안 가장 많은 경비가 들어가는 부분이 주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다소 편차는 있지만 거주 공간 마련에 소용되는 비용이 가장 크다는 말이다. 그만큼 인간의 욕망이 강하게 담겨있는 것이 거주 문화이자 거주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이 거주문화 가운데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들이 거주하는 집에 대한 주제로 옮겨가 보자. 한국 전통 예술의 미학은 고대 토템에서 불교나 기독교 등의 종교적 예찬과 찬미로 옮아가다가 인간의 예술로 옮아왔다. 한국의 전통 문화의 위대한 흐름을 이처럼 고건축을 통해 돌을 나무처럼 다루어온 장인들과 대목수들의 위대한 손길에 대해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조원창 교수가 쓴 『통일 신라 건축유적의 치석과 결구』(서경문화사, 2022)에서 무덤, 탑, 교량, 축대, 호안, 부사 등에서 돌의 결구 방식을 체계화하면서 화강암 돌을 마치 나무처럼 빚어내는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조형 미학의 기술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재조명해 보아야 일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사찰 장식 및 고건축 관련 어휘
허균이 쓴 『사찰 장식의 선과 미』(다미디어, 2008)에 구름 문양을 “점운(點雲), 비운(飛雲), 유운(流雲), 용운(龍雲: 입체상으로 생동감이 있게 솟아오르는 뭉게구름을 묘사한 것), 십자운(十字雲)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구름은 대체로 오금나선형(곱팽이)이 한데 엉킨 상태로 되어 있는데, 뭉친 부분을 운두(韻頭)라 하며 날개의 꼬리 부분을 운미(韻尾)라고 한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용운, 십자운, 운두, 운미’와 같은 어휘가 『표준』대사전의 올림말에 실려 있지 않다. 또 태극 문양의 종류로 “이태극, 삼태극, 사태극’ 문양이 있는데 이를 각각 이파문(二巴紋), 삼파문(三巴紋), 사파문(四巴紋)이라고도 한다.
태극문은 대개 소맷돌 앞쪽의 북 모양으로 생긴 부분에 선각된다. 이파문에는 좌우 대칭인 것이 있고, 상하 대칭인 것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를 용문사 계단에서, 후자의 경우는 희암사지 계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파문이지만 곡률이 심하여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것을 일명 곱팽이라고 한다.”라는 ‘이파문, 삼파문, 사파문’은 돌에 새겨진 구름의 겹친 모습의 가짓수를 뜻하는 어휘인데 이들 모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돌에 새긴 구름 모양 가운데 한 중심에 동심원처럼 휘감겨 소용돌이친 부분을 ‘곱팽이’라고 하는데 이것 또한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그뿐 아니라 ‘당사자(唐獅子), 삼태극, 소맷돌, 박지(剝地), 산예(狻猊), 가릉빈가, 연두문(연꽃 봉오리 문양), 연환문(연환문), 구품연지(九品蓮池), 길상화’과 같은 돌에 새겨진 조형물과 문양을 지칭하는 어휘인데 이들 모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절의 벽면에 보살과 불자들이 용선을 타고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을 그림 그림을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라고 하며, 돌로 만든 사자상을 보면 밑에 작은 공을 딛고 서 있는데 이 공 이름을 ‘곤수구’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어휘들을 전문 용어로 처리하여서인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고 건축물에서 기둥, 평방, 창방 등의 여러 부재를 얽어 짜놓은 부위를 공포(拱包)라고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으로 뜻풀이를 하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무엇을 가리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 공포는 ‘주두(柱頭), 소로, 첨차(삼포 이상의 집에 있는 꾸밈새. 초제공, 이제공 따위의 가운데에 어긋나게 맞추어 짠다), 살미(쇠서)’로 구성되는데 ‘주두(柱頭), 첨차, 삼미’는 올림말이 있지만 ‘소로’는 올림말로 실려 있지 않다. 또 ‘첨차’의 뜻풀이로 ‘초제공’은 올림말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살미’는 산미(山彌)와 ‘쇠서’와 동의어이다. 공포의 귀퉁이 부분을 뜻하는 ‘귀공포’라는 어휘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없다. 귀공포에는 통상적으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거나 또는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양이나 봉황이 많은데 이례적으로 부안 개암사 대웅전 귀공포에는 용과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이나 법주사 팔상전에는 인물상을 조각한 경우도 있다.
허균이 쓴 같은 책에 따르면 전통 건축물인 궁궐이나 성문, 왕릉의 정자각이나 비각 등 전통적인 건물 지붕에 가장 매력적인 물상을 ‘잡상(雜像)’이라고 한다. “각 잡상의 이름은 중국 건축물의 경우, 맨 앞에 봉황을 탄 도인상이 기봉선인(騎鳳仙人)이고, 그 뒤로 용봉(龍鳳), 사자, 해마, 산예(狻猊), 압어(押魚), 해치, 두우(斗牛), 행십(行什)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유몽인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는 잡상의 종류를, 선인(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미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산갑, 이귀박, 나토두 등 10가지 종류로 나열하고 있다.”(허균, 『사찰 장식의 선과 미』(다미디어, 2008)) 이 잡상의 종류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차이를 보여주지만 ‘도인상이, 압어(押魚), 행십(行什), 손행자, 사화상, 미화상, 이구룡, 이귀박, 나토두’와 같은 어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만일 이러한 어휘가 작위적으로 언중들의 사용도가 낮기 때문에 올림말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아무 할 이야기가 없지만 ‘선인, 저팔계, 삼살보살’과 간은 어휘는 실려 있는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 이처럼 사전의 올림말이 계열적인 불균형이 극심한 실정이다. 그리고 뜻풀이의 오류나 누락된 부분이 너무나 많다.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공공건물처럼 번듯한 건축물이 아닌 민초들이 기거하는 초라한 초가집이나 오두막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오두막집’의 다양한 변종을 고려하지 않은 『표준국어대사전』이나 『건축용어』 사전의 뜻풀이를 어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황석영 씨의 『폐허, 그리고 맨드라미』라는 작품에 보면 윗집 옛 상전의 그늘 밑에 사는 ‘홋집’의 소작인의 비애를 그리고 있는데 그 ‘홋집’은 ‘호지집’으로도 명명된다. 세월 따라 또 지역에 따라 그 용도와 이름이 바뀔 수 있으니 그 뜻풀이를 정확하게 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그리운 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랫말에 나오는 ‘오막살이’, 이 말은 ‘오두막집, 마가리, 하롯집, 마름집’ 등 다양한 방언으로 분화되어 있다. 의식주 가운데 가장 변화가 적은 사람들이 사는 집에 대한 이름, 그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조성기(2006:82)는 ‘오두막집’을 마루가 없는 3칸 형 이하 홑집으로 규정하고 있다. 야후Yahoo에서는 오두막집을 ‘비바람이나 막을 수 있게 간단하게 꾸린 집’으로 규정하고 있다. ‘오두막집’은 지역적인 구조 차이뿐만 아니라 용도상의 차이를 보여주며 또 역사적인 문화 전통에 따라 이름이 더욱 분화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비는 집안에 함께 기거하는 ‘솔거노비’와 멀리 다른 곳에서 사는 ‘외거노비’로 구분된다. 솔거노비도 다시 집 안에 함께 사는 노비와 주인집 담 바깥이나 중문이 있는 안쪽 곳간과 함께 이어진 행랑채에 기거하는 노비로 구분된다.(정연식, 2001:18-19)
상전 집에서 인접해 있는 곳에 지은 별채의 오두막집이 있다. 이런 집은 대개 방 한 칸이 전부이고 주인이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도록 주인집을 바라보게 지었다. 경주 양동마을에 가면 무첨당, 양졸당, 향단 종가집 입구에 초가집으로 지은 단칸집이 있다.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거주하는 송국주(가양주) 제조 기능 보유자인 이지휴 씨는 이런 집을 경주 방언으로는 ‘가랍집’, ‘가람집’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집을 일컬어 ‘가랍집’, ‘하릿집’, ‘하롯집’, ‘호지집’, ‘마가리’, ‘마가리집’이라 부르듯이 방언 분화형이 매우 다양한데 이들 방언형은 『표준』사전은 물론이고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다. 소위 ‘가랍집’이라는 집은 “노비가 사는 오막살이”로 뜻풀이를 할 수 있겠지만 그 집의 용도에 따라 의미가 조금 다르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작품에 ‘오막살이’의 방언형인 ‘마가리’라는 시어가 실려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인 백석은 어느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사랑의 공동체인 ‘마가리(오막살이)’에서 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살기를 기원하는 애틋하고 애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표준어 규정 제23항에 ‘마바리집’을 ‘마방집’의 잘못 또는 방언형으로 처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마바리’는 ‘마가리’의 ‘ㅂ/ㄱ’ 교체형으로 ‘오막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마바리집’을 ‘말이 자는 집’으로 이해하여 ‘마방(馬房)집’의 방언형으로 규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대갓집인 큰 기와집 입구에 살림집으로 만들어진 초가집은 그 대갓집에 종살이를 하는 하인들이 사는 집이지만, 일시적으로 멀리서 찾아온 귀한 손님을 모시고 온 하인들이 하루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만든 집은 홑집으로 부엌이 딸리지 않은 집이다. 이렇게 생긴 단칸 홑집은 “하인이 사는 오막살이”가 아니라 “하인이 잠시 대기하도록 만든 집, 또는 임시로 거처하기 위해 만든 집”이라고 풀이해야 옳은 것이다.
단 하루 머물다가 가는 집이랄까, 요사이 같으면 기사가 따라와서 대기하면서 잘 수 있는 집인 셈이다. 경북 안동 지방에 가면 부엌이 가운데에 있고 양옆에 온돌방과 외양간이 딸린 집을 가리키는 ‘도투말이집’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부분의 국어대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오두막집’의 다양한 변종을 고려하지 않은 뜻풀이를 어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황석영 씨의 『폐허, 그리고 맨드라미』라는 작품에 보면 윗집 옛 상전의 그늘 밑에 사는 ‘홋집’의 소작인의 비애를 그리고 있는데 그 ‘홋집’은 ‘호지집’으로도 명명된다. 세월 따라 또 지역에 따라 그 용도와 이름이 바뀔 수 있으니 그 뜻풀이를 정확하게 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옛날 시골집에서 밤이 되면 불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조명기구가 사용되었다. 필자의 경험만으로도 ‘호롱불’, ‘남포등불’, ‘촛불’에서 ‘전구’, ‘현광등’ 등의 방식으로 변화되었는데 옛날 선조들의 조명기구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명칭은 어떠했을까?
한옥의 조명과 보온 도구 코쿨
옛날 시골집에서 밤이 되면 불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조명기구가 사용되었다. 필자의 경험만으로도 ‘호롱불’, ‘남포등불’, ‘촛불’에서 ‘전구’, ‘현광등’ 등의 방식으로 변화되었는데 옛날 선조들의 조명기구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깊은 산골의 시골에는 흙집에 조명 겸 벽난로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 있다. 태백 준령의 동쪽지역으로 분포되어 있는 ‘코쿨’이라는 시설이다. 벽에다가 외벽으로 통하는 굴뚝을 세워 소나무 괭이나 겨릎에다가 등겨가루를 묻혀 말린 겨릎대를 올려 불을 밝히면서 그 불에서 나오는 열기를 방의 온도를 높이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그날 밤/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갓주지 이야기와/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노랑 고양이 울어울어/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나의 동무는/도토리의 꿈을 키웠다.//<중략>그가 아홉 살 되던 해/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던 겨울/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더러는 오랑캐령쪽으로 갔으리라고/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이웃 늙은이들은/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탐스럽게 열던 살구//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 울안에/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이용악, 「낡은집」에서.
이용악의 시 「낡은집」에서 “그날밤/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드러 가고/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저릎등’이 바로 시골에서 사용하던 조명 도구이다. ‘저릎등’의 재료인 ‘저릎’은 겨릅 곧 삼의 껍질을 벗겨낸 하얀 속대를 말한다. 옛날에는 이 겨릅으로 벽을 바르기 전에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것을 결러서 벽을 치고 그 위에 흙을 발랐다. 뜨물을 가라앉힌 앙금에다가 겨를 섞어 반죽한 것을 겨릅대에 얇게 발라 말린 다음, 불을 붙여 밤에 조명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겨릅등’이다.
경북 북부지역이나 강원도와 함경도 산간 지역에서는 벽에다 받침대를 만들거나 혹은 벽에다가 ‘코쿨, 코쿤’이라고 하는 벽난로와 같은 구덕을 만들어서 그곳에 이 겨릅대를 세워 태우기도 한다. 연기가 많이 나는 것이 흠이지만 촛불과 같은 정도의 밝기를 가지며 하룻저녁에 대개 서너 개를 쓴다고 한다. 이 ‘코쿨’이라는 방열 및 조명 시설에 대한 이름이 방언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고꼬리불, 고꾸리불, 고끌불, 고루채기불, 고코리불, 고쿠리불, 고쿨불, 꼭두라지불, 관솔등불, 관솔불, 관술불, 광술불, 괵코리불, 꾕이불, 동디불, 둥지불, 소깨이불, 소깽불, 소캐불, 솔, 솔강불, 솔까이불, 솔깡불, 솔깡이불, 솔깽불, 솔깨이불/솔깽이불, 솔관불, 솔광불, 솔 꾕이불, 오코리불, 오둠불, 오둥불, 우둥불, 입성나불, 코꾸리불, 코꿀불, 코콜불, 코쿠리불, 코쿨불, 회릿불, 햇불’ 등이 있다. 이들 어휘를 모두 사전의 올림말로 싣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 분화형 가운데 역사적 변천 과정과 사용 빈도를 고려하여 그 대표형을 가려내어서 사전의 올림마로 삼아야 한다.(이상규, 『경북방언사전』, 태학사. 2001.) 한국 전통의 한옥의 조명기구인 코쿨을 한 번 상상해 보자 얼마나 멋있는 장치인가? 은은히 흘러나는 코쿨 빛, 수많은 종족과 언어도 자연계의 숱한 유기체들이 겪는 운명과 마찬가지로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3)
이용악의 시에는 함경도 방언이 가로 세로로 직조되어 추억 어린 전경이 펼쳐진다. 이용악의 「낡은집」과 「동면하는 곤충의 노래」에서의 ‘둥굴소’(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낡은집」)는 ‘황소’를 의미한다. 함경도에서는 암퇘지는 ‘피게’ 또는 ‘구래미’, ‘구람때지’라 하고 수퇘지는 ‘수리’, ‘수렁때지’라 하며 ‘황소’는 ‘둥구리, 둥굴소’라 한다. 「낡은집」의 ‘저릎’(그날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드러 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낡은집」)은 겨릅 곧 삼의 껍질을 벗겨 낸 하얀 속대를 말한다. 옛날 초가집을 지을 때, 벽을 바르기 전에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 겨릅을 얽어서 벽을 치고 그 위에 흙을 발랐다고 한다. 뜨물을 가라앉힌 앙금에다가 겨를 섞어 반죽한 것을 겨릅대에 얇게 발라 말린 다음, 불을 붙여 밤에 조명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겨릅등’이다. 경북 북부 지역이나 강원도와 함경도 산간 지역에서는 벽에다 받침대를 만들거나 벽에다가 ‘코쿨, 코쿤’이라고 하는 벽난로와 같은 구덕을 만들어서 그곳에 이 겨릅대나 관솔을 태워 불을 밝히기도 한다. 연기가 많이 나는 것이 흠이지만 촛불과 같은 정도의 밝기를 가지며 하룻저녁에 대개 서너 개를 쓴다고 한다.
수많은 종족과 언어도 자연계의 숱한 유기체들이 겪는 운명과 마찬가지로 절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종족과 언어가 절멸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생태 공간의 파괴에서 비롯된다. 웨일스의 격언 “언어가 없는 민족은 심장이 없는 민족이다.(Cenedl heb iaith, cenedl heb galon)”를 새삼 되뇌어 본다.4)
- 기사입력 2025년03월12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10일 16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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