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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Insight 게시판 내 결과

  • 한국 방위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현황과 과제 새창

    Ⅰ. 서론 지난 7월 27일 우리나라가 폴란드와 10조원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방산수출 기본계약(framework agreement)을 체결하면서 방위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1)  2021년 72.5억 달러의 사상 최고치 방산수출(수주 기준)을 기록하면서 새 정부의 ‘미래먹거리 6대 신산업’2)으로 당당히 자리매한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그동안 다져온 탄탄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방산수출 Big 4’ 진입을 위해 진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 고에서는 최근 우리나라 방산수출 급증의 주요 요인들을 살펴보…

    장원준(JWJ) 2022-08-17 17:10:00
  • 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18 : 작은 아버지의 유업을 못지킨 남연의 모용초(P) 새창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신세돈(seshin) 2022-08-12 16:50:00
  • 오태광의 바이오 산책 <32> “더 사느냐, 바로 죽느냐, 그것이 장수의 문제로다” 새창

    기대수명(期待壽命)은 지역, 국가 등의 특정 지역에서 태어난 인구의 예상되는 수명을 말한다. 연대별 세계인의 기대수명은 1800년에는 유아 사망이 많아서 평균이 26세였고, 1900년에는 31세, 1950년에는 49세, 2000년에 들어서면서 66세로 되었다.19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의학의 획기적 발전으로 기대수명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였고, 그 후, 2005년은 67세, 2010년 69세, 2015년 71세로 완만하게 증가하였다. 같은 지역이지만, 2010년 우리나라가 기대수명이 80세일 때 북한은 68세로 큰 차이가 있었고…

    오태광(tae123) 2022-08-09 17:00:00
  • 금리 인상기에 취약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법정최고금리 운용방안 새창

    기준금리가 인상되며 2금융권의 조달금리 역시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법정최고금리가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조달금리가 상승하면,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로 대출을 받던 가구들이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다. 주로 취약계층이 법정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의 금리로 대출시장에 참여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다중채무자임을 고려할 때, 법정최고금리를 시장금리와 연동함으로써 금리 인상기에도 취약계층의 롤오버(roll-over)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높은 부채상환 부담으로 생활고를 겪는 취약계층을 …

    김미루(kimmeeroo) 2022-08-07 17:0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31>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⑩안숭선[安崇善(1392-1452), 시호 文肅公] 새창

    V.10 안숭선[安崇善(1392-1452), 시호 文肅公] 안숭선은 고려 때 찬성사를 지낸 안축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의정부찬성사를 지낸 안순이다. 문음으로 관직에 출사했지만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으로 세종 2년 3월 문과에 장원급제해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안숭선은 초기에는 주로 사헌부에서 근무했다. 세종 10년 10월 사헌부는 모친의 상중에도 음탕한 일을 일삼는 황상이라는 자를 고발하였다. 이 자는 첩 문제로 다른 사람과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 첩은 옛날 태종이 총애하여 옹주로 봉했던 여자였다. 따라서 황상의 첩을 비판하는 것…

    신세돈(seshin) 2022-08-05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30>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⑨정초[鄭招(?-1434), 시호 文景公] 새창

    V.9 정초[鄭招(?-1434), 시호 文景公] 정초는 세종의 전반기(세종 즉위년-세종 16년)사람이다. 세종 전반기 치적으로는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은 공적을 남긴 신하였다. 의 개정에서부터 의 편찬과 의 개정과 왕실의 작곡 및 의 발문작성과 혼천의 발명과 병서의 일종인 라는 책을 펴내는 등 법, 악, 농, 병, 예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신하였다. [충신과 간신] 정초는 고려시대 사헌집의를 지낸 정희의 아들로 경상도 선산에서 태어났다. 태종 5년 4월 문과복시에 2등으로 급제하여 내자직장으로 관문에 들어섰으며,…

    신세돈(seshin) 2022-07-29 17:10:00
  •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22> 도도한 풍자의 언어와 현실 응전 -전영경 시인의 시 읽기 새창

    I전영경은 1930년 함경남도 북청군 거산면 성천리 880번지에서 부 전성우(全性遇)와 모 안형순(安亨順)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중 월남하여 연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1954. 2)하였다. 동명여고(1954. 4 ~ 1956. 3) 교사, 수도여자사범대학(1956. 4 ~ 1962. 2) 교수, 동아일보 문화부장, 조사부장(1962. 4 ~ 1968. 2)을 역임하였으며 국제대학(1969. 6 ~ 1973. 2) 교수, 동덕여대 대우전임 및 교수(1970. 3 ~ 1995. 12)로 정년퇴임 후 2001년 작고하였다. 비교…

    이건청(lgc) 2022-07-23 16:4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29>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이천 [李蕆(1376-1451), 시호 翼襄公](下) 새창

    [제 2차 파저강 전투] 이천의 가장 잘 알려진 공적은 제2차 파저강 전투일 것이다. 끊임없이 출몰하는 올량합 야인을 방어하기 위해 평안도 도관찰사 박안신은 압록강 연변 적의 은신처를 없애자고 했지만(세종 19년 1월 2일), 평안도 도절제사 이천은 더 강력한 응징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략질을 일삼는 야인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 자원자가 매우 많을 것이고 적의 숫자도 많아야 수 백 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문제는 숲속에 숨어 사는 적의 동태와 소굴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도절제사 이천은 꾸준히 정탐꾼을 들여보냈다. …

    신세돈(seshin) 2022-07-22 17:10:00
  • 윤 대통령 지지율 30%가 주는 의미 새창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취임 두 달 만에 30%대로 곤두박질했다. 레임덕이 아닌 '취임덕'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몇 가지 특이할 만한 사항이 발견된다.  첫째, 지지율이 너무 빠르고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한국갤럽 7월 2주 조사(12-14일)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32%, 부정 평가는 53%였다. 한 달 전 조사(6월 2주) 대비 긍정 평가는 21%p 급락한 반면 부정 평가는 20%p 급등했다. 전국지표조사(NBS)(7월11일-13일)에서도 윤 대통령의 긍정평가는 33%, 부정평가는 53%…

    김형준(db827) 2022-07-18 17:10:00
  • 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27>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⑦종서[金宗瑞(1383-1453), 시호 忠翼公](下) 새창

    [읍성이냐 장성이냐]  은퇴로 빠진 영의정 황희를 제외한 대신 여섯 명을 모아 놓고 세종은 장성(長城)과 읍성(邑城) 중 어느 것을 먼저 지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대신들의 의견이 갈렸다. 좌의정 하연과 좌찬성 박종우와 좌참찬 정분과 우찬성 종서는 읍성을 먼저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큰 도적들이 몰려오면 작은 둑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읍성으로 급히 피해야 하므로 당연히 돌로써 크게 쌓아 사람들로 의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읍성을 쌓자고 했다. 우참찬 정갑손이 반대하고 나섰다. 장성공사가 거의 끝나 가니 중도…

    신세돈(seshin) 2022-07-08 17: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