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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 고소를 좋아하는 이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2월12일 17시00분

작성자

  • 나승철
  • 법률사무소 리만 대표변호사, 前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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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다. 2016년 서울신문은 ‘고소·고발에 지친 대한민국’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했는데, 이에 따르면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 수는 많이 잡아야 연간 1만 5천 건 미만인데 비해 2014년 우리나라의 고소, 고발 사건수는 49만 5,436건이었다. 일본의 50배에 육박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눈 여겨 볼 부분이 있다. 2014년 기준 전체 고소·고발 사건 중 42%인 21만 7,266건이 사기죄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기 고소·고발 사건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명확하다. 전적으로 잘못된 사법제도 때문이다. 갚아야 할 돈을 갚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사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민사소송을 통해 돈을 받아내기가 매우 힘들다. 일단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데에는 인지대와 송달료가 필요하다. 물론 그 비용이 크지는 않지만 어쨌든 이것도 1차적인 진입장벽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민사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민사소송제도는 증거를 확보하기가 매우 힘든 구조이다. 미국은 디스커버리(discovery)가 있어서 원·피고가 서로 요구하는 문서, 데이터 등을 전면적으로 제출하는 것이 의무화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민사소송에서 승소를 해도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하지 못하면 돈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재산명시절차라는 것이 있지만, 이는 승소가 확정되어야 활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1심에서 승소하고 항소가 되어 2심 진행 중에는 재산명시절차를 활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민사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채무자는 재산을 빼돌리기 때문에 변호사들에게는 사실상 무용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채무자가 재판 진행 도중에 재산을 빼돌리면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되지만, 채권자로서는 채무자의 재산 변동내역을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채무자는 강제집행면탈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형사절차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소인에게 유리하다. 먼저 민사소송과 달리 형사고소에는 인지대나 송달료 같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고소를 당하게 되면 피고소인으로서는 고소장을 입수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요새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피고소인의 고소장 열람신청을 거부하는 검사가 꽤 있다. 피고소인으로서는 고소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수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시작부터 고소인에게 너무나 유리하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사기죄의 인정범위가 상당히 넓다.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렸다가 제 때 못 갚게 되면 사기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돈을 빌린 것인데, 거꾸로 돈을 빌릴 때 돈이 없었다는 이유로 사기죄가 되는 것이다. 또한 고소를 하게 되면 그 이후는 수사기관이 알아서 증거를 수집한다. 심지어 압수수색까지 한다. 채권자로서는 민사소송과 함께 형사고소를 한 뒤 수사결과를 보고 있다가 민사소송에서 ‘문서송부촉탁’이라는 제도를 활용 하면 수사기관이 수집해 놓은 증거를 고스란히 받아볼 수 있다. 민사소송에서 채권자가 직접 해야 할 증거 수집을 수사기관이 대신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무죄율은 5% 정도에 불과하다. 한번 기소가 되면 무죄를 받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게다가 구속이라도 되면 단기간 내에 석방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피고소인은 기소와 구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없는 돈을 끌어 모아서라도, 고소인과 합의를 하게 된다. 채권자가 굳이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인 사기 고소·고발의 남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민형사 절차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법원과 검찰도 위와 같은 개선방안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법원은 법원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문제개선에 소극적이다. 법원은 고소·고발 남발을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검찰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그다지 강하지 않다. 검찰로서는 수사절차 전반을 개혁해야 하는데, 이는 검찰의 권한을 상당 부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시 소극적이다. 사기 사건 고소·고발 남발 문제가 논의된 지는 이미 수십 년이 되었다. 이제는 개혁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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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2월12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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